[필동정담] 현대사박물관

장박원 2022. 8. 1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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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역사의 집'은 가장 모범적인 현대사박물관으로 꼽힌다. 하지만 1994년 개관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현대사박물관을 처음 추진했던 사람은 동서독 통일을 이끌었던 헬무트 콜 총리다. 그는 1982년 서독 연립내각 총리가 되자마자 현대사박물관 건립을 발표했다. 서독 '라인강의 기적'을 알릴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발이 거셌다. 서독 역사만을 다루는 박물관은 국가 권력을 홍보하는 전시관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고 독일 현대사의 치부인 '나치'를 배제하는 건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독일 역사학자인 위르겐 코카는 "서독을 낳은 상황과 배경이 없는 서독 역사는 인정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그 후 독일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10년 넘게 논쟁이 이어졌다. 이는 역설적으로 독일 역사의 집이 현대사박물관의 표본이 되는 밑거름이 됐다. 동시대 역사인 현대사는 한 사건을 놓고도 정반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독일 역사의 집은 이를 인정하고 '열린 전시'를 원칙으로 삼았다. 예컨대 1960년대 역사를 다룰 때 '라인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경제 발전사와 권위주의적이었던 정치 체제를 동시에 보여주는 식이다. 독립성과 중립성 유지를 위해 연방의회 법률에 근거한 독립재단이 운영하고 자문기구에 보수와 좌파 학자들이 고루 참여하고 있다. 기업가 연합 등 각계각층이 수시로 자문하며 편향성을 막는 역할을 한다. 독일 역사의 집 개관 이후 많은 나라가 벤치마킹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2012년 근현대사박물관을 지향하며 광화문 바로 앞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개관했다. 하지만 모호한 명칭과 독립기념관·임시정부기념관 등과 비슷한 전시 내용,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역사관 차이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광복 77주년이 됐는데도 제대로 된 현대사박물관이 없다는 것은 문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름부터 '한국 현대사박물관'으로 바꾸고 우리 현대사의 자랑스러운 점과 부끄러운 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으로 거듭나야 한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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