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아프간 장악 1년.."여성 인권 존중" 약속은 어디로
취업 기회도 광범위하게 제한
초기 "교육·취업 허용" 약속과 배치
빈곤 겹쳐 일부 여성 삶 나락으로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 사는 여성 사키나는 5년 전 남편을 잃은 뒤 거리에서 음식을 팔아 아이들을 부양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이후 여성 취업이 제한되며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탈레반은 사키나와 같은 처지의 이들에게 석달에 한번 약간의 밀가루와 식용유 3ℓ, 현금 1천아프가니(약 1만4천원)를 받을 수 있는 카드를 주지만,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키나는 남편을 잃은 다른 여성 3명과 그들의 아이들과 같이 산다. 사키나는 “일할 수 없다면 결국 굶주릴 것”이라 말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아프간 여성 언론인이 만든 뉴스 사이트 <루흐샤나 미디어>를 인용해 전했다.
15일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입성해 아프간을 재장악한 지 1년이 지났다. 탈레반은 재집권 초기 여성 인권을 존중하고 교육과 취업도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카불을 점령한 이틀 뒤인 지난해 8월17일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슬람 틀 안에서 여성들이 일하고 공부하는 걸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교육 및 취업을 대부분 금지하는 극단적인 통치로 국제적 비난을 받았던 1996~2001년 1차 집권 시기와 달라진 ‘탈레반 2.0’을 예고하는 듯했다.
기대는 곧 깨졌다. 탈레반은 한달 뒤인 지난해 9월 여성 공무원 출근을 중단시켰고, 이후 보건·교육 종사자 등 일부 분야 종사자만 출근을 허용했다. 대학에선 여학생 히잡 착용과 남녀 분리교육을 의무화했다. 12월에는 여성이 남성 가족을 동반하지 않은 채 혼자 72㎞ 이상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없다는 명령까지 내렸다.
올해 3월21일엔 한국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7학년 이상 여학생 등교를 허용한다고 했으나, 이틀 뒤인 23일 개교일이 되자 “이슬람법 원칙과 아프간 문화”에 따른 교육이 준비되지 않았다며 중단시켰다. 탈레반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최고 지도자 하이바툴라 아훈자다의 명령 때문이었다고 <가디언>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탈레반 고위 간부 상당수는 국외 생활 중 딸들을 카타르·파키스탄 등에서 교육을 받게 했고, 재집권 뒤에도 이들의 국외 교육은 계속되고 있다고 신문은 꼬집었다.
탈레반의 과거 회귀 움직임은 노골화되고 있다. 5월에는 탈레반이 설치한 권선징악부가 여성은 집 밖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려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남성 보호자가 수감될 수 있다는 명령을 내렸다. 이들은 온몸을 가리고 눈만 내놓는 부르카를 “최상의 히잡”이라고 했다. 재집권 초기 수하일 샤힌 대변인이 부르카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것과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여성들의 사회적 고립은 심화되고 있다. 유엔이 아프간 전체 인구 97%가 빈곤선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할 만큼 아프간 경제 상황은 나빠지는 중이다. 경제적 곤궁까지 겹친 일부 여성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전직 여성 경찰관 마리암은 탈레반 집권 뒤 직업을 잃고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고 <루흐샤나 미디어>에 말했다. 남편이 없는 그는 눈만 빼고 온몸을 덮는 부르카를 입고 거리에서 온종일 앉아 구걸을 했다. 마리암은 “하루는 소년 2명이 나에게 동전 몇 닢을 던졌다. 그중 한명이 나를 ‘매춘부’라고 불렀다. 나는 아이들에게 줄 빵 두 덩이를 사서 집에 돌아갈 수 있었고, 그날 밤 내내 울었다”고 말했다.
탈레반 집권 1주년을 이틀 앞둔 여성들은 13일 카불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례적인 시위를 벌였다. 여성 40여명이 교육부 청사 앞에서 “빵, 일자리, 자유” 라는 구호를 외쳤다. 탈레반 대원들은 공중에 총을 쏘며 이들을 흩었고, 일부는 도망가는 시위 참가자를 붙잡아 개머리판으로 내리쳤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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