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 묘지 지킨 사연은?

김용희 2022. 8. 1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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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 교과서에서 배운 민족 영웅이 잠들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신기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부터 들었습니다."

15일 <한겨레> 와 만난 장원창(63) 전 교육부 사할린한국교육원 원장은 1993년 10월께 카자흐스탄 옛 수도 크즐오르다에서 홍범도(1868~1943) 장군 묘역을 처음 봤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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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유해 봉환 놓고 남북 외교전 치열
장원창 전 원장, 묘역 돌보며 인식 개선
15일 장원창 전 교육부 사할린한국교육원 원장이 1994년 카자흐스탄에서 홍 장군 묘역을 관리하던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낯선 땅에 교과서에서 배운 민족 영웅이 잠들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신기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부터 들었습니다.”

15일 <한겨레>와 만난 장원창(63) 전 교육부 사할린한국교육원 원장은 1993년 10월께 카자흐스탄 옛 수도 크즐오르다에서 홍범도(1868~1943) 장군 묘역을 처음 봤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장 전 원장은 “해방도 못 보고 홀로 쓸쓸히 돌아가신 뒤 고국에도 돌아가지 못한 모습에 슬펐다. 고려인들은 홍 장군의 정신을 잊지 않으려 매년 제사를 지내는데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는 생각에 빚진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장 전 원장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으로 해직된 뒤 프랑스 파리에서 정치사회학을 공부했다. 그러던 중 1992년 4월 광주·전남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설립한 민간 한글학교의 교사를 하겠다며 손을 들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홍 장군이 강제이주를 당해 카자흐스탄에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2년 뒤인 1994년 3월 교사로 복직돼 귀국한 그는 그해 10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소속으로 카자흐스탄 국립대학 한국어문학과로 파견 가라는 인사발령이 났다. 당시 독립국가연합(CIS)과 수교를 시작한 우리 정부가 장 전 원장의 경험을 높이 산 것이다. 그는 “1년도 안 돼 다시 알마티로 가 부임 신고를 하는데 김창근 초대 대사가 ‘자네가 수고 좀 해줄 게 있다’고 했다. 홍범도 장군 묘지를 관리하라는 것”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때는 한국과 북한이 옛소련 붕괴 뒤 서로 홍 장군 유해를 봉환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던 시기다.

1994년 10월25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김창근 대사 등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이 홍 장군 제사를 지내는 모습. 장원창씨 제공

김 대사의 주문은 북한이 은밀히 홍 장군 유해를 가져갈 수 있으니 묘지를 지키라는 게 속뜻이었다. 장 전 원장은 홍 장군의 기일이었던 그해 10월25일부터 1996년 5월까지 크즐오르다대학에서 근무하며 홍 장군 묘역 청소나 참배 안내를 도맡았다. 장 전 원장은 “혹시나 북에 해코지를 당할까 봐 겁이 나 학교 학생기숙사에서 지내기도 했다”며 “다행히 북한 사람과 직접 맞닥뜨리진 않았다”고 기억했다. 홍 장군 이장을 놓고 벌어진 남한과 북한의 외교전은 “홍 장군은 옛소련의 영웅이기도 하다”며 카자흐스탄 정부가 이장을 불허하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고려인들의 도움도 그는 기억해냈다. 크즐오르다에는 고려인 지식인층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정권에 대한 비판의식과 함께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한 우리나라에 대한 호감이 싹트던 때였다. 지난해 8월 홍 장군 유해가 우리나라로 봉환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1990년대 초부터 장 전 원장 등의 활동을 지켜보며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가진 고려인들의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광주 광산구청은 이날 열린 홍 장군 흉상 제막식에서 장씨에게 명예구민증을 수여하며 그동안의 노력을 높이 샀다. 장 전 원장은 “30년 전 이국에서 봤던 홍 장군이 지난해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벅차올랐다”며 “홍 장군은 고려인들에게 정신적 지주였고 자긍심을 주는 자랑거리였다.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원창 전 교육부 사할린한국교육원 원장(오른쪽)이 1993년 카자흐스탄 민간 한글학교 교사 재직 시절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찍은 사진. 장원창씨 제공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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