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의 아바타에게 '갑옷' 입힙니다"..시프트바이오의 기술 혁신

신현규 2022. 8. 1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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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 기술출자 스타트업
세포간 대화수단 '엑소좀' 활용
치료물질 '로켓배송' 기술 개발
세계적 제약사에 기술이전 준비
"난치성 질환 극복 기술 여정서
환자들에게 두 번째 기회 제공"

우리 몸 속의 세포들은 서로 대화를 한다. 간에 있는 세포가 폐에 있는 세포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신장에 있는 세포가 대장에 있는 세포의 말을 듣기도 한다. 학계에서는 1998년부터 세포에서 뿜어내는 50~200나노미터 지름의 작은 물질이 이런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밝혀냈다. 그 물질의 이름은 '엑소좀(Exosome).' 세포와 세포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세포가 내뿜는 나노크기의 입자 들이다. 그래서 생물학계에서는 이 엑소좀을 '세포의 아바타'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간에 있는 세포가 폐 세포에게 이야기를 전해야 할 경우, 간 세포의 '아바타'인 엑소좀이 혈관을 타고 폐로 이동하여 간이 해야 할 말을 전하는 것이다.

엑소좀이 주목받는 이유는 치료목적으로 활용될 잠재력이 크다는 것이다. 가장 큰 장점은 도착해야 하는 세포로 배달되는 것을 사명으로 하기 때문에 엑소좀에 치료물질을 싣게 되면 정확한 '로켓배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런 여러 장점 때문에 최근 의약계에서는 엑소좀을 기반으로 하는 신약개발 스타트업들(코디악, 에복스, 퓨어테크헬스 등)이 다수 등장하고 있으며, 대형 제약회사들도 이를 주의 깊게 지켜 보고 있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우리나라에도 엑소좀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독창적인 플랫폼 기술로 일약 주목을 받고 있는 스타트업이 있다. 엑소좀 연구자들과 의사 출신 CEO가 공동창업한 '시프트바이오'가 그 주인공. 김인산 공동창업자(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는 "세포의 아바타라 할 수 있는 엑소좀에게 아이언맨과 같은 갑옷을 입혀서 엄청난 기능들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을 만드는 회사가 시프트바이오"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말 서울시 중구 필동에 위치한 남산골 한옥마을을 찾은 시프트바이오 공동창업자들. 좌로부터 이원용 CEO, 김인산 KIST 책임연구원, 남기훈 COO. [신현규 기자]
'시프트바이오'는 엑소좀의 표면에 치료를 위한 단백질을 다량 표출시켜 병의 치료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플랫폼 기술(Maxisome,맥시좀)을 개발했다. 일반적인 엑소좀이 아니라, 치료물질을 대량 표출한 '슈퍼' 엑소좀을 만들어 암, 동맥경화, 급성간부전 등의 치료에 활용하는 것이다. 타 제약회사들 역시 이 플랫폼 기술을 활용해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치료제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다. 시프트바이오는 '맥시좀'의 우수함을 입증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줄기세포에서 나온 엑소좀을 이 기술로 효능을 증폭시켜 희귀난치성질환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하는 약물 임상 준비작업 중이다.

남기훈 수석부대표는 "일단 발병하고 나면 사망 이외에는 선택할 방법이 없는 병들이 무려 7000개에 달한다"라며 "엑소좀은 이런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말했다. 의사 출신인 이원용 대표는 "이처럼 선택지가 없는 환자에게 두 번째 기회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 회사의 비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다 보면 환자들을 치료(cure)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care)밖에 할 수 없는 경우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엑소좀은 치료제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이단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프트바이오는 단순히 세포에서 내뿜는 엑소좀을 활용하는 것을 넘어 엑소좀만이 가지는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엑소좀을 무장시켜 이를 치료제로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시프트바이오는 엑소좀을 활용해 신약을 보다 쉽게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다양한 신호를 조율할 수 있는 '전사인자'를 엑소좀 내에 탑재하고, 이를 표적 세포 내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InProDel,인프로델임프로델) 역시 특허를 취득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전사인자'가 뛰어난 치료효과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체내에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이를 상용화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시프트바이오는 전사인자를 엑소좀 안에 담는 기술을 개발,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제약회사들과의 협업으로 '인프로델'을 통해 치료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일명 '복잡성을 지닌 질병'들을 극복할 수 있는 혁신적인 치료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시프트바이오는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는 과정을 엑소좀에 적용시켜, 특정 세포막과 융합할 수 있는 '퓨소좀 (Fusosome)' 플랫폼 기술을 개발했다. KIST 김인산 박사 팀은 2017년 전세계 최초로 '퓨소좀' 컨셉을 발표하였고, 이를 발전시킨 3세대 '퓨소좀' 플랫폼 기술이 현재 KIST의 기술출자회사인 '시프트바이오'의 지적재산권으로 편입된 것이다. '퓨소좀'을 통해 표적 세포막에 원하는 단백질을 코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포질 내에 치료 목적의 유전자 및 단백질 등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 적용 범위가 크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치료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막단백질 결손 질환 환자들에게 두번째 기회를 제공하고 세포 내 인자를 표적하는 유전자 치료제의 효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이 시프트바이오의 생각이다.

7월말 서울시 중구 필동에 위치한 남산골 한옥마을을 찾은 시프트바이오 공동창업자들. 좌로부터 남기훈 COO, 이원용 CEO, 김인산 KIST 책임연구원. [신현규 기자]
시프트바이오는 이처럼 '엑소좀'이라는 '세포의 아바타'를 치료목적으로 증강시키는 여러 플랫폼 기술을 가진 회사다. 기술 하나하나가 마치 IT회사의 운영체제(OS)처럼 다른 제약회사들이 돈을 지불하고 활용해서 자신들만의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의 기능을 할 가능성이 높다. 2020년에 설립된 스타트업이지만, 이미 검증 받은 독보적인 기술을 통해 이런 플랫폼 사업이 가능하다는 것이 회사 측의 믿음이자 자신감이다. 특히 이런 기술 플랫폼 사업이 유망한 이유는 앞으로 제약산업이 몇몇 대형사 위주의 시장에서 더 작은 제약회사들이 신약들을 만들어 내는 경쟁의 장으로 재편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컨설팅회사 '맥킨지'가 지난해 2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18년 사이에 신약을 처음으로 내놓은 제약사는 27개사로, 10년 전인 2006-2010년 7개사였던 것에 비해 그 숫자가 3배나 증가했다. 맥킨지는 또 2021~2025년 사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39개의 블록버스터 신약 중에서 22개(56%)는 신약을 처음 개발하는 곳에서 내놓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5년(2016~2020) 동안 신진제약사의 비율이 20%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다.

남기훈 수석부대표는 "신약개발 회사들이 늘어나는 만큼, 과거와 달리 신약개발 단계별로 필요한 전문성을 제공하는 업체 및 컨설턴트들도 많이 증가하고 있다. 분명 신약개발 과정은 험난하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많은 재료들이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대형 제약회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바이오벤처 회사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이언스, 과학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프트바이오가 보유한 우수한 과학을 바탕으로 도출된 엑소좀 플랫폼 기술은 결국 하나의 치료제가 아닌 수백개의 치료제를 만들 잠재력이 및 시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자신한다"라고 말했다.

[신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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