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스페셜리스트'의 귀환..당 타이 손 "어린시절 피에 흐른 음악, 쇼팽은 내게 운명" 

선명수 기자 입력 2022. 8. 15. 15:00 수정 2022. 8. 1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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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동양인 첫 쇼팽콩쿠르 우승자
16일 춘천·19일 통영·21일 서울서 리사이틀
"팬데믹 후 첫 투어 기뻐"
동양인 최초로 1980년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이 한국 무대를 찾는다. 베트남 출신 피아니스트인 당 타이 손은 섬세하고 감성적인 연주로 정평이 나 있는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꼽힌다. ⓒHirotoshi Sato

1980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콩쿠르에서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이 콩쿠르에서 동양인으로선 처음으로, 그것도 클래식 음악의 불모지나 다름없다고 여겨지던 베트남에서 온 스물두 살의 청년이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베트남전쟁의 포화 속에 ‘종이 피아노’로 피아노를 배웠고, 연주복조차 없어 옷을 빌려 입고 참여한 청년은 자신의 첫 콩쿠르에서 오케스트라와 생애 처음으로 협연해 우승자가 됐다. 마우리치오 폴리니(1960), 마르타 아르헤리치(1965), 크리스티안 지메르만(1975) 등 명연주자들을 배출한 쇼팽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64)의 우승은 스타 피아니스트의 탄생을 넘어 ‘사건’이었다.

당 타이 손은 드라마틱한 데뷔뿐 아니라 역대 쇼팽콩쿠르 우승자 가운데 가장 섬세하고 감성적인 연주를 하는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가장 쇼팽다운 연주자’라는 평을 듣는 그가 3년 만에 한국 무대를 찾는다. 16일 춘천문화예술회관, 19일 통영국제음악당, 2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당 타이 손은 내한을 앞두고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대중 앞의 무대에 설 수 없었던 지난 2년 반의 시간 때문에 지금 내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도 무대를 갈망하고 준비된 마음”이라며 “기쁨과 기대에 찬 마음으로 그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이번 내한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다시 시작한 첫 투어 무대다. 캐나다를 시작으로 폴란드에서 열리는 쇼팽 페스티벌 무대를 거쳐 한국, 일본 관객과 차례로 만난다. 캐나다 몬트리올 음대에서 2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주 활동을 해온 그는 “지난 2년이 넘는 시간 학교에서 가르치고 격리기간엔 집에 머물며 관객 앞에서 공연하지 않았다”며 “온라인 공연이나 온라인 생중계 공연을 여러 차례 제안받았지만, 나에게는 관객과 직접 만나지 않는 공연은 영 내키지 않았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오랜 만에 관객을 만나는 것은 무척이나 흥분되고 즐거운 기대감에 부푸는 일”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 ⓒHirotoshi Sato
“클래식 음악계 동·서양 문화적 장벽 사라져…아시아 음악인에겐 큰 기회”

당 타이 손은 후학 양성과 함께 자신이 하나의 ‘전설’을 만들었던 쇼팽콩쿠르에서 20년 가까이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5년마다 열리는 이 콩쿠르에서 2005년 첫 심사를 맡은 후 2010년, 조성진이 우승했던 2015년, 팬데믹으로 한 해 미뤄진 2021년 콩쿠르에서도 심사위원을 맡았다. 2021년엔 그의 제자이기도 한 중국계 캐나다 피아니스트 브루스 리우가 우승을 차지했다. 당 타이 손은 최근 클래식 음악계의 가장 큰 변화로 “동양과 서양 사이 문화적 장벽이 사라진 것”을 꼽았다. 그는 “유튜브 클릭 한 번으로 넘쳐나는 음악과 자료를 찾을 수 있는 세상 아닌가”라며 “내가 늘 배울 기회가 적었던 것에 비하면 굉장한 변화다. 아시아 음악인에게는 큰 기회”라고 말했다.

조성진, 임윤찬 등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과거 서양인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클래식 음악계에서 두각을 보이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한국은 이미 국제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낼 뿐 아니라 대부분 젊은 음악가들이 한국 내에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음악적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고무적”이라며 “아시아의 나라들은 종종 우리가 서양음악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음악 교육에서 성공적인 발전을 이루려면 서양권에 나가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지만 이제 그러한 시간은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반클라이번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을 언급하며 “임윤찬은 (유학 없이) 한국에서만 공부한 경우 아닌가. 한국은 양적인 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초·중·고 수준의 교육을 넘어 대학 수준까지도 커버할 수 있을 만큼 음악과 예술 교육이 단단하다”고 했다.

“어린 시절 피에 흐른 쇼팽의 음악…그의 음악은 감정으로 완성된다”

당 타이 손은 이번 내한에서 드뷔시와 라벨 등 프랑스 작곡가의 음악과 쇼팽의 춤곡들을 연주한다. 그는 “내가 어떤 피아니스트인지 드러내기에 가장 좋은 프로그램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2부에 연주하는 쇼팽 춤곡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까지 포함해 선정했는데, 며칠 전 쇼팽 패스티벌 무대에서 폴란드인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있어서 좋았다. 새로운 감각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그는 쇼팽을 “나와 매우 운명적인 연결이 있는” 작곡가라고 말한다. 그는 그 시작을 “최초의 피아노 스승이었던 어머니” 타이 티 리엔에게서 찾았다. 타이 티 리엔은 인도차이나 전쟁의 여파 속 프랑스인들이 버리고 간 피아노로 하노이 음악원을 공동 설립한 베트남의 1세대 피아니스트다. 1965년 베트남전쟁이 본격화되자 비 내리듯 폭탄이 떨어지는 하노이를 떠나 음악원 학생들과 깊숙한 산골마을로 피란을 떠났다. 물소가 끄는 수레로 공수해온 낡은 피아노로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열던 어머니의 피아노 연주회, 종이에 건반을 그려놓고 피아노를 공부했던 당 타이 손의 어린 시절은 잘 알려진 일화다.

당 타이 손은 “하노이 음악원 교수였던 어머니가 1970년 쇼팽콩쿠르 현장에 초대를 받았고, 어머니는 그곳에서 경험한 음악에 크게 자극을 받아 모든 쇼팽 레퍼토리의 음반과 악보를 구해오셨다”며 “전쟁 중이던 그 시절 베트남에서는 음악을 배울 수 있는 자료들이 충분치 않다 못해 거의 없었지만, 쇼팽에 관해서만큼은 나는 모든 걸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우연한 계기로 나는 내 피에 흐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쇼팽을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쇼팽은 내 유년시절을 가득 채우고 내 음악적인 성장을 도왔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모스크바 음악원에 유학하면서 피아노 테크닉과 외면적인 틀을 다시 세우는 것을 배웠지만, 내 내면적인 부분은 이런 기적을 통해 이미 채워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차지했던 전쟁이 끝난 뒤, 당 타이 손은 하노이 음악원을 방문한 러시아 피아니스트 아이작 카츠에게 발탁돼 1977년 러시아 유학을 떠난다. 1980년, 쇼팽콩쿠르 참가 당시 이력서에 ‘모스크바 음악원 재학 중’이라는 단 한 줄 밖에 쓸 수 없을 만큼 무대 경험이 없었다고 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시작된 그의 음악 여정은 동양인 최초의 쇼팽콩쿠르 우승이란 기적으로 이어졌다.

그는 인터뷰에서 “쇼팽의 음악이 왜 이렇게까지 나에게 중요하고 가깝게 다가오는 걸까”라고 자문했다. “쇼팽이 살아생전 겪었던 고난과 역경, 조국에 대한 향수, 민족주의에 사로잡힘…, 우리 둘 다 조국이 어려움을 겪는 시기를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음악적인 아름다움과 감각이 나에게 무척 개인적으로 다가왔으며 너무나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쇼팽의 음악은 머리와 의도로만 연주할 수 없다. 쇼팽의 음악은 감정과 감성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 ⓒHirotoshi Sato
※ 정정합니다
기사 원문에 당 타이 손이 ‘임윤찬을 부산 마스터클래스에 만난 적이 있다’고 언급한 부분은 오류가 있어 정정합니다. 당 타이 손이 부산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난 피아니스트는 조성진입니다. 기획사 측이 인터뷰 녹취를 번역·정리하는 과정에서 두 피아니스트를 언급한 부분에 혼동이 있어, 관련 사실관계를 바로잡습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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