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담대한 구상'.. 대북 경제지원 초점
통일부 업무보고 때 거론된 '북한의 안전보장' 빠져
(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북한을 향한 '담대한 구상'의 세부 내용을 공개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내놓은 '담대한 구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다양한 경제적 지원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개발을 명분으로 내세운 체제 안전보장에 관한 사항은 빠져 있어 북한의 즉각적인 호응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 비핵화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의 지속 가능한 평화에 필수적인 것"이라며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담대한 계획' 구상의 세부 내용으로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공급과 △발전·송배전 인프라 지원 △항만·공항 현대화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지원 △병원·의료 인프라 현대화 지원, 그리고 △국제투자·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열거 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로드맵이기도 한 '담대한 구상'은 지난 5월 윤 대통령 취임사에서 처음 언급됐다.
이후 통일부는 지난달 윤 대통령에 대한 업무추진계획 보고에서 '담대한 구상'(또는 계획)의 일환으로 대북 경제적 지원과 함께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군사적 신뢰 구축 △군비통제 등을 통해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조치도 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핵개발의 이유로 안보와 자위적 방어를 주장하고 있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나 이날 윤 대통령의 이날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제'와 함께 '담대한 구상'의 다른 한 축인 '안보' 관련 사항에 빠진 건 남북관계 여전히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북한은 올 들어 지난달 11일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각종 미사일 발사와 방사포(다연장로켓포) 사격 등 20여차례의 무력시위를 벌였다. 이는 역대 같은 기간 대비 최다 횟수다. 게다가 북한은 현재 제7차 핵실험 준비까지 마무리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오는 22일 시작될 예정인 올 후반기 한미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을 포함한 일련의 한미 군사훈련에 대해 "한미 양측이 북침전쟁 연습으로 정세 긴장을 불러일으키려 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의 이날 공개한 대북 '담대한 구상'에서 북한의 안전보장에 관한 부분이 빠진 데 대해 "북한이 한미훈련과 미군 전략자산 전개 영구 중단을 대북 적대시 정책, 즉 자신들의 안전보장의 출발점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고려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특히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지난달 27일 '전승절'(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일) 기념연설에서 직접 '대남 강경책'을 거론한 점을 들어 "윤석열 정부로선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안전보장'을 언급하는 게 부담이 됐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의 대남 비난는 김 총비서가 지난 6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대적 투쟁'을 천명한 이후 계속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대외 선전매체 등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계획·구상'을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제시했던 '비핵·개방·3000 구상(북한이 비핵화·개방에 나서면 대북투자 확대 등을 통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10년 내 3000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의 복사판'이라고 주장하며 사실상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혀온 상황이다.
이 때문에 대북 전문가들은 안보 관련 사항이 제외된 경제협력 위주의 '담대한 구상'만으로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교수는 "북한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비핵화와 경제적 유인책에 대해 강력히 반발해왔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고, 핵이 오히려 경제적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경제적 보상을 북한 체제를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도 "만약 대통령실에서 북한 지도부가 북한 경제의 대남 종속을 가져올 수도 있는 대규모 경제 지원을 받고자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북한이 비핵화에 동의할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동의하더라도 그 과정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과 북한의 주요 우방국인 중국·러시아 간 관계가 악화된 국제정세도 우리 정부가 '대담한 구상·계획'을 추진해나가는 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이른바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면서 북한 비핵화를 한반도 평화 협상을 진행하기엔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오는 17일 '취임 100일' 맞이 기자회견을 예정하고 있단 점에서 이 자리에서 이날 공개되지 않은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과 관련한 '담대한 구상'이 발표될 수 있단 관측도 나온다.
양 교수는 "'안보 대(對) 경제' 프레임만으론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할 수 없다.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안보 대 안보'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며 "대북 경제발전 계획 구상과 함께 군사적 문제, 평화협상 문제, 그리고 북미 수교까지 염두에 둔 포괄적인 교환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yellowapoll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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