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김대중-오부치 2.0' 공식화한 尹..北엔 '담대한 구상'
'실질적 北비핵화' 전제 식량·인프라·금융 지원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김효정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를 고리로 한 대일·대북 메시지를 공개했다.
일본을 세계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함께 맞설 '이웃'으로 평가하며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강조했다. 북한에 대해선 실질적 비핵화를 전제로 '담대한 계획'의 세부 내용을 제시했다.
'김대중-오부치 2.0' 공식화…한일 안보협력 필요성도 언급
이번 경축사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한일관계의 조속한 복원 의지에 초점을 맞췄다.
윤 대통령은 일본을 "세계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으로 규정하며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지 77년이 지난 현재의 일본이 이제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세계 평화·번영을 위해 협력해야 할 이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날 "자유를 찾기 위해 시작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중략) 이제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해 세계 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대하는 것으로 계승·발전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인식과 맞닿아 있다.
과거사에 얽매여 역사적 정의 실현만 내세우기보다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한일관계 협력의 당위성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윤석열 정부는 미·중 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국제사회의 진영 대결이 뚜렷해지면서 일본이 전략적 이해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로서 중요한 협력 대상이라는 인식을 보여왔다.
윤 대통령은 특히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계승을 공식 천명하면서 이를 토대로 한일관계의 빠른 회복과 발전을 도모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1998년 10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담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부각해왔다.
대선 외교안보 공약에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 시대 실현'을 포함했고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4월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을 통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전한 친서에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 발전시키자"고 제안했다.
다만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등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경축사에 등장하지 않았다.
강제징용 가해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가 목전에 다가온 상황에서 정부는 민관협의회를 통해 국내 전문가 의견을 수렴 중이며 협의회에 불참한 피해자 측과의 의사소통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해법 마련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현시점에서는 정부 안이 구체화하지 않은 만큼 윤 대통령이 이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한일관계에 대한 큰 틀의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경제, 안보, 사회, 문화에 걸친 폭넓은 협력"을 강조하며 양국 관계에서 민감할 수 있는 안보 협력도 언급했다.
다만 윤 대통령의 이러한 협력 메시지에도, 일본 측은 현금화 문제 등과 관련해 한국이 먼저 구체적인 해법을 내놓으라며 냉랭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양국 관계가 돌파구를 곧바로 찾을 수 있을지는 다소 미지수로 보인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는 오부치 총리가 과거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고 언급한 내용이 중요하게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선언이 발표될 당시보다 일본은 사회 전반적으로 우경화 흐름이 강해졌고 '반성'과 '사죄'를 무색하게 만드는 극우 정치인들의 언행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단계별 경제적 반대급부 제시한 '담대한 구상' 로드맵…北 반응 주목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북한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계획'의 세부 내용을 처음 제시한 부분이다. 이날 얼개를 드러낸 로드앱은 북한의 도발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사에서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하면 북한 경제와 북한 주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약 100일 만에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개된 '담대한 계획'에는 ▲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 ▲ 발전·송배전 인프라 지원 ▲ 국제 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 현대화 프로젝트 ▲ 농업 기술 지원 프로그램 ▲ 의료 인프라 현대화 지원 ▲ 국제투자·금융 지원 프로그램이 포함됐다.
북한 비핵화 조치의 반대급부로 단계별로 경제적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최근 '담대한 계획'과 관련해 "북한의 안보우려 사항도 같이 해소하는 방안을 담을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는데 이날 경축사에는 이와 관련해 명시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러한 구상은 일종의 경제적 보상을 제시해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끌겠다고 했던 이명박(MB) 정부의 '비핵·개방·3000' 기조와 큰 틀에서는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개방·3000' 기조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인당 주민 소득을 3천 달러까지 올려주겠다는 구상이었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된 '담대한 계획'에 대해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지난 대외용 주간지 통일신보는 지난 7일 '담대한 계획'에 대해 "10여 년 전 실현 불가능한 흡수통일문서로 지탄받고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졌던 이명박 역도의 비핵·개방 3000을 적당히 손질한 것"이라고 폄훼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한반도·동북아 평화는 세계 자유를 지키고 확대하는 기초"라면서 그러한 맥락에서 북한 비핵화가 필요불가결한 것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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