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후원가가 세웠다고? 종로 한복판에 교보문고가 있는 이유[브랜드의 탄생]

류선우 기자 2022. 8. 1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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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쓸 것. 둘째, 한곳에 오래 서서 책을 읽는 것을 절대 제지하지 말고 그냥 둘 것. 셋째, 책을 이것저것 빼보기만 하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을 주지 말 것. 넷째, 앉아서 노트에 책을 베끼더라도 제지하지 말고 그냥 둘 것. 다섯째, 간혹 책을 훔쳐 가더라도 도둑 취급을 하여 절대 망신을 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인도하여 좋은 말로 타이를 것.

교보문고의 다섯 가지 운영 지침입니다. 공익사업도 아니고, 민간 서점을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게 됐을까요? 이는 창립자가 교보문고를 세운 이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이육사 통해 독립운동 자금 지원

교보문고 창립자인 대산 신용호 선생은 1917년 8월, 뼈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아버지 신예범은 일본의 농민 수탈에 항거하는 소작쟁의를 주도해 7년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큰형 신용국도 3.1만세운동과 농민 항일운동으로 수차례 옥살이를 했고, 셋째 형 신용원도 항일 음악가로 활동하며 일본의 핍박을 받았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 폐병으로 학업 시기까지 놓친 대산은 천 일 동안 열흘에 책 한 권을 읽는, 이른바 '천일 독서'를 통해 크게 성장합니다. 독학으로 중학교 과정까지 공부를 마친 그는 약관이 되던 해, 큰 뜻을 품고 중국으로 떠나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이때 대산은 집안 어른인 신갑범 선생의 소개로 독립운동가 이육사 시인과 인연을 맺습니다.

대산은 이육사 시인을 스승처럼 여겼는데, 그를 만나면서 '민족 자본가'로서의 의지를 다지게 됩니다. 해방 전 중국에서 쌀장사로 큰돈을 벌었는데, 이 돈으로 지속해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그런 대산에게 이육사 시인은 "광복군 열 명, 스무 명의 몫을 혼자 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라며 고마움을 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서울 종로 1번지, 금싸라기 땅에
국내 최대 규모 서점 탄생

1981년 6월 1일, 서울 종로1가 1번지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단일 층 규모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서점의 탄생이었습니다. 교보문고가 자리 잡은 교보생명빌딩 지하 1층은 지금도 좋은 위치지만, 세종로 사거리에 횡단보도가 없던 당시엔 더더욱 최상의 입지 조건이었습니다. 엄청난 수익이 예상되는 만큼 건물이 다 지어지기도 전부터 임대 문의와 청탁이 줄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교보생명을 창립한 대산은 이곳에 나라를 대표할만한 큰 서점을 짓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교보문고 앞에 적힌 글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대산의 말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나라가 발전하려면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치원 아이들부터 대학교수까지 자기가 원하는 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도서관 같은 책방을 만들어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였습니다.

완전한 개가식에 각종 시설까지
서점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교보문고는 대산의 뜻에 따라 기존 서점들과 달리 어떤 책이든 마음대로 뽑아 볼 수 있는 완전한 개가식으로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책 파는 곳 옆엔 카페와 음식점 등 각종 부대시설을 마련했고 문구와 음반까지 팔면서 서점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사실상 오늘날 북카페의 조상 격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의 탄생에 시장은 뜨겁게 반응했습니다. 교보문고는 개업 후 2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 창립 4년 만에 업계 1위로 우뚝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교보문고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대대적인 리모델링도 수차례 진행합니다. 지난 2015년에도 광화문점을 리모델링 하면서 다양한 가구를 들였는데요. 이때 들인 것 중 하나가 뉴질랜드 땅에 묻혀 있던 나무로 만든 테이블입니다. 무려 5만 년 된 나무로 만들었다는데, 한 번에 무려 100명이 앉을 수 있는 거대한 크기입니다.
 

이 테이블은 교보문고 명물 중 하나로 자리 잡아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데요. 매장에 두 개가 비치돼있는데 아쉽게도 현재는 코로나19 때문에 운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적자의 늪
온라인 시장서 예스24·알라딘에 밀려

20년간 업계 선두를 굳건히 지켜오던 교보문고에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 서점 시장이 급성장하면서부터인데요. 국내 최초 인터넷 서점 '예스24'는 시대 기류를 타고 등장과 함께 온라인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시대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교보문고는 온라인 시장에서 3위까지 밀려나게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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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식 속에 교보문고도 디지털 전환에 발 벗고 나섰습니다. 대표적인 게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면 1시간 안에 전국 모든 지점에서 받아 갈 수 있는 '바로드림' 서비스입니다. 2009년에 나온 서비스인데, 오프라인보다 할인된 가격에 책을 사서 바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 노력 속에 지난 2020년 상반기를 기점으로 교보문고 온라인 매출은 처음으로 오프라인을 넘어서게 됐습니다.
 

하지만 실적은 계속해서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수익성의 지표인 영업이익률이 원래도 1% 안팎에 불과했는데 이젠 아예 0%로 주저앉았습니다. 또 '효자'에서 '아픈 손가락'으로 전환한 핫트랙스 얘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2005년 교보문고의 100% 자회사로 출범한 핫트랙스는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고 음반도 디지털화되면서 수년째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국내 서점시장에서 업계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교보문고. 현재 눈앞의 최대 과제는 디지털 혁신을 통한 왕좌 사수일 텐데요. 뒤처지지 않고 앞으로도 국내 도서 문화를 이끌어 가는 맏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을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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