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년 전 신라금관 처음 나온 금관총..'첨단 돔' 전시관 탈바꿈

노형석 2022. 8. 15. 11: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6세기 신라 황금문화 알린 금관총 전모
무덤 축조과정 보여줄 전시관 16일 일반공개
리모델링 된 금관총 유적 전시장. 밤에 촬영한 내부 모습이다. 2015년 재발굴 조사에서 노출된 돌무지 한쪽 위에 공사용 비계틀 구실을 했던 거대한 나무 가구를 실물 크기로 올리거나 기둥 자리를 표시했고, 돌무지 한가운데는 관 자리와 이중 목곽을 재현해 놓았다. 경주시 제공

오늘날 신라문화의 우뚝한 대명사가 된 금관은 1921년 처음 세상에 나왔다. 출토된 곳은 경북 경주읍 노서리 한 주막집 뒤편 언덕 땅속이었다. 주인이 집을 넓히려고 파헤친 것이 대발굴의 서막이 됐다. 5~6세기 신라 황금문화의 실체를 처음 알린 금관총 고분의 발견이었다. 이 무덤은 발굴 90년이 지난 2013년 놀랍게도 출토품 일부인 고리자루큰칼 표면에서 ‘이사지왕’(爾斯智王)이란 새김 명문까지 드러나면서 다시금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지금도 무덤 주인이 왕인지 귀족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등을 놓고 고고학자들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금관총(국가사적)이 발굴 101년 만에 돔으로 덮인 첨단 유적 전시관으로 탈바꿈한다.

경주시는 일제강점기에 봉분 대부분이 허물어진 금관총 유적을 현장 전시장으로 단장한 리모델링 공사를 4년 만에 마무리하고 16일부터 일반 공개한다. 4~6세기 고신라 특유의 돌무지 덧널무덤(적석목곽분)을 쌓았던 고대 토목공사 실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역사적 무대로 변신시킨 것이 리모델링의 뼈대다. 2015년 국립중앙박물관 재발굴 조사로 드러난 575㎡(173평)의 무덤 내 돌무지 잔존 유적 위에 전면 창을 내 높이 8m, 최대 직경 48m의 황동 지붕 돔 구조물을 씌웠다. 동원건축사사무소와 아이앤건축사사무소가 공동 설계한 나선형 지붕의 돔 구조물은 돌무지 덧널무덤의 모양새를 본 떠 만들었다고 한다.

나선형 지붕 모양의 돔 구조물을 덧씌운 전시관 모양으로 정비된 경주 노서동 금관총 유적. 오른쪽에 내년 3월 개관 예정으로 짓고 있는 고분정보센터 건축물이 보인다. 경주시 제공

돔이 감싼 무덤 안 돌무지 유적 위에는 신라인들이 돌무지 덧널무덤을 쌓을 때 설치한 큰 나무 가구 구조물이 처음 실물로 재현됐다. 당대 신라 무덤 내부 얼개를 만드는 양상을 생생하게 살필 수 있게 된 셈이다. 소나무 원목을 쓴 구조물은 높이 4.7m, 평균 굵기 20㎝에 달한다. 발굴 당시 돌무지에 남은 나무 기둥 자국의 크기에 맞춰 만들었다. 앞서 지난 2015년 재발굴을 벌인 박물관 조사단은 바둑판 모양의 대형 나무 구조물(목조가구)들을 틀처럼 짜서 무덤 중심부 덧널 주위를 촘촘히 둘러쌌던 흔적인 나무 구조물 기둥의 구멍들을 돌무지 곳곳에서 찾아낸 바 있다. 나무 가구들로 짠 구획 안에 정연하게 강돌을 채워 넣고 돌무지를 쌓은 자취를 확인했던 성과를 이번에 되살린 것이다.

리모델링 된 금관총 유적 전시장. 2015년 재발굴 당시 노출된 돌무지 한쪽 위에 구획틀 구실을 했던 거대한 나무 가구(왼쪽)를 실물 크기로 올렸고, 한가운데 관 자리와 이중 목곽을 재현해놓았다. 경주시 제공

무덤 바닥 가운데는 관 자리와 이를 두 겹으로 둘러싼 길이 6.4m, 폭 4.2m의 장대한 목곽(덧널)을 고증해 설치했다. 재발굴 조사에서 덧널 범위가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이 추정한 것보다 훨씬 크며 덧널도 한개짜리 단곽식이 아니라 외부에 하나 더 있는 이중 곽임이 드러난 데 따른 것이다. 경주시 쪽은 “고고학, 문헌사 등 학계 전문가들과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위원들의 자문과 고증을 여러 차례 받으며 콘텐츠를 구성했다. 유적 내부는 오랜 기간 경화 처리 작업을 벌여 구조 안정성도 보강했다”고 설명했다.

밤에 본 금관총 유적 전시장의 외관. 돌무지 유적 위에 전면 창이 난 돔 형태 구조물을 덧씌운 모습이다. 경주시 제공
금관총 축조 과정을 담은 디지털 복원 영상. 금관총 유적 전시장의 증강현실 모니터를 통해 상영된다. 나무 가구 구조물로 구획틀을 짜서 강돌을 집어넣으며 정연하게 내부의 돌무지를 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경주시 제공

또 다른 볼거리는 돔의 전면 창과 유적 사이 회랑 복도에 설치된 모니터 영상들이다. 두대가 비치된 43인치 화면의 증강현실(AR) 모니터가 우선 눈길을 끈다. 잠망경처럼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 전면의 돌무지 곳곳을 비추면 목가구 구획틀 안에 돌들을 넣어 무덤 내부를 쌓는 신라인들의 축조 과정을 디지털 그래픽 동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두대의 65인치 대형 엘이디 화면 모니터는 1921년 금관총의 첫 발굴부터 재발굴을 거쳐 돔 전시관으로 탈바꿈하기까지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3대의 터치스크린에서는 이사지왕 명문 등 무덤 주인 정체를 둘러싼 여러 논쟁을 요약한 다큐 영상들을 선택해 볼 수 있게 해놓았다.

리모델링된 금관총 유적 전시 공간을 주낙영 경주 시장이 살펴보고 있다. 경주시 제공

경주시 쪽은 금관총 유적 전시장과 연결된 시립 고분정보센터도 내년 3월께 내부 시설 설치를 끝내고 문을 열 예정이다.

금관총 출토품의 고갱이인 금관과 금제 허리띠 같은 주요 금 공예품들은 국립경주박물관 상설관에서 볼 수 있다. 이사지왕 명문이 온전하게 새겨진 큰 칼 한점은 현재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명문이 일부 남은 칼 두점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2015년 금관총 재발굴 현장. 무덤 중심 둘레에 정연하게 쌓은 돌무지가 보인다. 노형석 기자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