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마켓컬리, SSG, 오아시스마켓 물류센터에 산업재해 '급증'[새벽배송, 안녕하신가요①]

조해람 기자 2022. 8. 1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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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리함’을 위해 일하다 누군가의 뼈가 부러졌다면?

신선식품을 새벽·당일 배송해주는 서비스가 인기다. 쿠팡부터 마켓컬리, SSG닷컴, 오아시스마켓 등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시장이 성장하면서 특수를 맞았다. 어느새 한국인은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간편히 상품을 주문하면 당일 또는 다음날 집 문 앞에 택배박스가 도착하는 ‘신속배송 대한민국’에 익숙해졌다.

편리함을 위해 다치고 앓는 이들이 있다. 택배박스가 도착하기 전에 분류하고 포장하고 배송하는 물류센터 노동자들이다. 덮개 없는 컨베이어와 언제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릴지 모르는 상품들 사이에서 두려움을 꾹 참고 일한다.

이커머스 업체들은 코로나19로 호황을 맞으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그리고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는 부쩍 늘었다. 소화·화재경보 설비엔 ‘불량’ 딱지가 수두룩하고, 불합리한 취업규칙과 임금체납도 만연하다.

이커머스 물류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는 업계 선두주자인 쿠팡을 중심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업체들도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최근 5년간 ‘새벽배송 3사(마켓컬리·SSG닷컴·오아시스마켓)의 산업재해 현황’부터 살펴봤다.
마켓컬리 ‘샛별배송’ 서비스 홍보 포스터. 마켓컬리 제공

물류창고의 좁은 통로에서는 등 뒤로 지게차가 지나다녔다. 지게차의 지게 발을 피하면서 마켓컬리 생활물류센터 계약직 직원 A씨는 ‘이러다 한 번 다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길과 지게차의 길이 선으로 구분돼 있지만, 상자와 장비가 빽빽이 들어찬 좁은 공간에서 동선은 자주 위태로워졌다. 지게 발에 다리가 걸려 다쳤다는 다른 직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A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수도권 고객들이 앱으로 주문한 신선식품이 당일 새벽 문 앞에 도착하도록 돕는 게 A씨의 일이다. 식품을 신선하게 보관해주는 냉동고 입구 바닥엔 여름철에도 습기가 얼어붙어 있다. A씨는 “안전화를 신어도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람이 많다”며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 있어서 걱정된다”고 했다.

정신없이 분류하고 포장하고, 내려보내고 올려보내다 보면 늦은 밤이나 새벽에 퇴근하기 일쑤다. 직원마다 맡은 업무가 각자 다르지만 일이 몰리면 “결국 만능으로 다 해야 한다”. A씨는 주문이 폭증하는 추석이 벌써 두렵다. 같은 시간에 훨씬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류센터에서는 일이 손에 익을 만하면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아 정작 숙련된 직원은 부족하다. “어느 순간 못 버티고 다 사라지고…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빡세요.” 언젠가부터 A씨는 컨디션 조절이 잘 안 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시장이 커지면서 이커머스 새벽배송 업체들도 급성장했다. 소비자들은 매일 신선한 식품 등을 간편하게 배송받을 수 있는 서비스에 열광했다. 그러나 편리함의 뒷면에는 ‘현대판 막장’이라며 자조하는 노동자들의 한숨이 있다. 이들 업체가 운영하는 생활물류센터 노동자들의 곁엔 과로, 열악한 근무환경 등 사고 위험이 도사린다. 선두주자인 쿠팡에서 사고가 잦다 보니 다른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지만 관련 통계 자료들은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새벽배송 3사(마켓컬리·SSG닷컴·오아시스마켓)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이들 업체들의 산재는 2020년 이후 크게 증가했다. 코로나19로 대목을 맞은 업체들이 사업 확장을 위해 창고를 새로 세우고 인력을 늘린 시기와 맞물린다.

마켓컬리의 산재 신청은 2020년 9건에서 2021년 72건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는 5월까지만 69건의 산재 신청이 접수됐다. 연 1~2건을 제외하면 대부분 산재로 인정됐다. 마켓컬리는 2021년 주문량 급증으로 김포 대형 물류센터를 추가로 열고 인력을 늘렸는데 이를 기점으로 산재도 함께 늘어났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인력 증가와 함께)2020년 10월부터 도급 형태로 운영하던 물류창고를 직접 운영으로 바꾸고, (타사와 달리)도급으로 쓰던 인력도 회사 직고용으로 대거 전환하면서 기존에는 도급사에 반영되던 산재가 당사에 반영된 영향도 크다”고 했다.

SSG닷컴에서도 산재 신청은 2019년과 2020년 각각 12건씩이던 산재 발생이 2021년 약 2배 가까이(23건)로 뛰었다. SSG닷컴은 대형 물류센터가 아니라 ‘PP센터’에서 일어난 산재가 대부분이다. PP센터는 각지의 이마트에서 온라인 주문 당일배송을 처리하는 곳이다. ‘새벽배송 업체 중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기업’으로 잘 알려진 오아시스마켓에서는 2018~2020년 1~2건씩의 산재 신청만 있다가 2021년에는 15건으로 증가했다. 같은 해 오아시스마켓은 물류센터 직원을 40여 명에서 400여 명으로 늘렸다.

물류센터 특성상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입는 부상이 산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3사의 연간 산재 신고가 가장 많았던 2021년을 기준으로 마켓컬리는 72건 중 69건이 사고였고 질병은 3건 뿐이었다. 사고로 신고된 산재 중 68건이 승인을 받았다. 같은 기간 SSG닷컴의 23건(22건 승인)과 오아시스마켓의 15건(15건 승인)은 모두 사고였다.

부상의 유형은 골절·파열·삐임 등이 많았다. 2021년 산재 승인을 받은 마켓컬리 사고 68건 가운데 골절이 26건(38.2%)으로 비중이 가장 높았다. 삐임 19건, 타박상·진탕 10건, 파열·열상 7건 순이었다. SSG닷컴에서는 22건이 산재로 인정됐다. 골절과 파열·열상이 각각 7건(31.8%)이고 삐임이 6건, 타박상·진탕이 2건이었다. 오아시스마켓은 15건 가운데 골절과 파열·열상이 각각 5건(33.3%), 삐임이 2건, 타박상·진탕이 2건 승인됐다.

산재 속도 못 따라온 안전조치···불시점검에 위반 ‘수두룩’

사고는 계속 늘어났지만 방지 대책 수립 속도는 더뎠다. 고용노동부가 2020년 벌인 산업안전보건근로감독에서 이커머스 업체들의 법 위반사항이 수두룩하게 적발됐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코로나19로 인한 배송업무 급증으로 장시간 노동 등 과로와 안전이 우려된다”며 쿠팡 물류센터 5곳과 배송캠프 5곳, 마켓컬리 물류센터 1곳, SSG닷컴 물류센터 1곳에 대한 수시감독을 벌였다.

당시 마켓컬리의 장지물류센터 1곳에서만 위반사항 15건이 발견됐다. 기본적인 안전 관련 조치들이 미흡했고, 그중에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요소도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컨베이어 회전축 덮개 미설치, 지게차와 근로자 혼재 작업 때 유도자 미배치, 낙하물 방지조치 미실시 등 7건에 대해 사법 조치했다. SSG닷컴의 김포 물류센터 1곳에 대한 감독에서는 동력문 안전조치와 컨베이어·양중기·감전 방호조치, 추락방지조치 미시행으로 총 19건이 사법처리됐다.

SSG닷컴의 새벽배송 상품이 배송된 모습. SSG닷컴 제공

만성적인 과로도 건강을 위협했다. 감독 당시 고용노동부가 물류센터 종사자(포장·출고) 43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성수기에 하루 8시간 이상 근무한다는 응답은 83.7%에 달했다. 이 중 ‘10~12시간 근무’도 11.1%로 적지 않았다. 성수기에 연장근로를 한다는 응답은 78.1%로 나타났다. 주 5일 연장근로를 한다는 응답이 20.0%로 가장 많았다.

주문량이 폭증하는 명절에는 극심한 과로에 시달린다. 배송시간을 맞춰야 하는 특성상 많은 물량을 ‘빨리빨리’ 쳐내야 하는 상황이 업무강도를 가중한다. 류호정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노동자 B씨의 업무상 질병판정서를 보면, 마켓컬리의 한 물류센터에서 2020년 추석 명절선물세트 배송을 담당한 B씨는 쓰러지기 직전 4주간 주당 69시간을 일했다. 근로복지공단이 뇌혈관·심장 질병과 과로의 관련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주 64시간’이다. B씨의 당시 업무량은 평소보다 30% 많았다. 공단은 주·야간 교대업무와 냉장창고 상주 근무도 발병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공단은 “업무상 과로와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돼 업무와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B씨의 산재를 인정했다.

새벽배송 업체들은 안전사고 방지 대책을 꾸준히 마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켓컬리는 “2020년 고용노동부 감독 결과는 모두 개선했고, 최고안전책임자를 영입하고 전문기관의 컨설팅을 받는 등 개선을 진행했다”고 했다. SSG닷컴은 “안전보건관리 전담 조직을 강화하고 건강관리 프로그램 마련, 안전 관련 매뉴얼과 작업장 시설물 안전조치를 강화했다”며 “업계 최초로 국제표준규격 충족 인증을 받는 등 개선을 했고 매년 안전보건에 관한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아시스마켓은 “노동자를 직접 채용해 산재 보고를 매우 투명하게 진행하고 있고, 중상해가 1건도 발생하지 않는 등 안전에 신경쓰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인권의 관점에서 업계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비대면 열풍 속에 ‘신산업’으로 주목받으며 빠르게 성장한 만큼 그에 걸맞은 책임의식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빠른 배송과 온라인 시장은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했다는 이유로 상찬받았지만, 이게 오히려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쥐어짜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했다”며 “팽창하는 신산업의 특성상 경쟁사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가 이뤄졌지만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쪽의 투자는 부족했다”고 했다.

대다수가 계약직·일용직인 고용구조도 안전에 악영향을 미친다. 전 연구원은 “계약직 일용직 노동자들은 산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고, 자신이 산재를 신청하면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하기도 한다”며 “특히 일용직이나 도급노동자는 다쳐서 쉬면 생계의 위험이 있어서 일을 계속하기 위해 아파도 참는다. 위험이 드러나지 않는 구조”라고 했다. 통계에 드러나지 않은 안전사고도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연구원은 또 “물류센터가 전반적으로 대형화되고 기계화되며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다. 단지 물건을 쌓아두는 창고가 아니라 포장과 입출고까지 종합적으로 하는데, 당일배송과 새벽배송이 강조되면서 기계장치들 사이에서 빠르게 일하려다 보니 부딪힘이나 끼임 등 사고가 많다”며 “노동안전은 안전사고를 가장 잘 아는 노동자들의 피드백이 가장 중요하다. 한번 개선하는 게 끝이 아니라,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단체협약 등으로 노동자들의 의견을 계속 들을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류 의원은 “산재 증가와 노동관계법 위반 다수 적발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문제로, 전국의 물류센터가 노동인권 사각지대”라며 “정부가 노동안전보건 관점에서의 지속적인 관리·감독과 물류센터 화재 예방을 위한 정확한 원인 진단과 실효성 있는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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