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 위 한지 조각으로 평안을 비는 성연화 작가

서울문화사 2022. 8. 1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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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서예를 회화 작업에 응용하는 성연화 작가는 붓글씨를 쓴 한지 조각들을 모아 작품을 완성한다. 향으로 그을린 화폭 위 한지 조각에는 매일의 평안을 비는 마음이 담겨 있다.



성연화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기분 좋은 향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곳곳에 놓인 서예 도구들, 겹겹이 쌓인 한지들과 향 냄새가 어우러진 공간은 마치 고요한 산사에 들어선 듯 고요함과 차분함을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을 풍긴다. 가구와 기물들까지 그녀의 작품을 닮아 따뜻하고 단아한 색을 띠고 각자의 자리에 놓여 있다. 성연화 작가는 한지와 먹, 동양화 물감, 아크릴 물감과 파라핀 등 동서양을 넘나드는 재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했지만 ‘글자’를 통해 작품의 의미를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표현법이 싫어져 직접 쓴 글자를 여러 조각으로 자르기 시작했다. 작품의 의미를 글자로 전달하기보다는 보는 이들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작품의 주제를 한지에 쓰고 조각조각 자른 뒤 파라핀을 바르고, 향으로 가장자리를 태운 다음 화폭 위에 붙이고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아크릴 물감으로 여러 번 덧칠하면 작품이 완성된다. 긴 과정 중에서 가장 궁금증을 유발하는 작업은 향으로 가장자리를 태우는 일. 스스로 가장 평화로웠다고 여기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다 고안해낸 그녀만의 의식이다. 그녀가 이토록 평안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는 이유는 아픔을 이겨내야 했던 시간들 때문이었다. 경제적인 사정으로 유학을 중도에 포기했던 일, 생계를 목적으로 한 캘리그래피 작업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들었던 상황들은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었던 그녀에겐 너무 버거운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다시 행복해지고 싶었고,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그토록 찾아 헤맸던 평안과 평온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하루는 어릴 때처럼 엄마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는데 깨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순 없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그림 속에 담아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의 손길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아무런 걱정없이 안심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 친구에게 손편지를 쓰려고 종이의 가장자리를 태워 편지지를 만들던 천진난만한 날들의 기억, 그녀는 그 시간들을 떠올리며 마음의 조각들을 모아가고 있다. 성연화 작가의 작품을 구성하는 여러 개의 한지 조각은 그녀 자신과 그림을 보는 모든 이들의 안녕과 평온을 기원하는 마음의 창이자 소중한 시절의 편린들이다.

“한지에 스며들어 퍼져나가는 먹물을 볼 때 마음이 가장 편안해요.”

작가 성연화의 순간들


#작업의 영감을 얻는 순간

그 어떤 특별한 순간보다 자연스러운 순간에 많은 영감을 얻어요. 자기 전이나 음악을 들을 때, 계절이 변하는 것을 느낄 때나 가족과 여행을 떠나 평화로운 시간을 즐길 때 같은 보통의 순간들을 통해서요. 평온함, 즐거움, 슬픔 그 모든 감정을 고이 담아 두었다가 작업에 녹여내려 노력해요.

#작업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작품 뒷면에는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작품명과 작품의 의미를 붓글씨로 남겨요. 저만의 흔적 혹은 시그니처를 남기는 순간이죠. 이를 통해 제가 작품을 만들 때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해진다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붓을 잡아요.

#가장 큰 평온을 느끼는 순간

어릴 땐 엄마 무릎에 누워 머리카락을 빗어 넘겨주시는 손길을 느끼는 게 가장 큰 위로였는데, 지금은 집에서 반려견인 루이, 비똥이를 쓰다듬으며 보내는 시간이 가장 큰 위로이자 평온을 느끼는 순간이에요. 작업실에선 한지에 먹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져요.

향으로 한지를 태우는 과정.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절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 앉는다.

작가 성연화의 삶 그리고 작업 Q 요즘 각종 전시 준비로 정말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신 것 같아요.

맞아요. 7월엔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준비로 바빴고, 올해에만 파리, 스페인, 싱가포르에서의 전시를 앞두고 있어요. 또 얼마전엔 뉴욕의 아고라 갤러리(Agora Gallery)와 계약을 맺었고요. 제 작업 방식이 대중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놀라워요.

Q 평소엔 어떤 일상을 보내세요? 매일의 일상이 반복되는 편이신가요?

최근 감사하게도 많은 기회들이 생긴 덕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요. 눈 뜨자마자 작업실에 나가 작업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해외 전시 담당자들과 이메일 등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고요.

Q 작품의 어떤 매력이 관객들의 마음을 이끌었을까요?

아마 먹과 한지라는 재료가 주는 동양적인 매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LA에서 열린 아트 쇼에서 첫 해외 전시를 한 적이 있는데, 먹이 만들어내는 선을 신비롭고 독특하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Q 서예를 하다 지금은 회화 작업에 더 몰두하고 계시잖아요. 그러면서도 먹과 한지라는 재료는 놓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서예를 했지만 한지에 먹이 퍼질 때 느끼는 신비로움은 지금도 여전해요. 현대식 종이에선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있어요. 한지와 먹은 정말 솔직한 재료거든요. 한번 스며든 먹은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고, 어떤 재료로도 덮을 수가 없어요. 서예를 할 때 작은 획 하나하나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이기도 해요. 그 엄청난 매력을 더 많은 분들께 알리고 싶어요.

Q 먹과 동양화 물감을 사용하면서도 서양 재료인 아크릴 물감도 사용하시는 이유는요?

동양의 재료와 서양의 재료를 함께 사용해보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어요. 다양한 시도 끝에 아크릴 물감과 한지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느낌을 발견했죠. 아크릴 물감의 일반적인 사용법보다 물을 더 많이 섞어 사용하면 특유의 번짐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밑바탕에 사용한 동양화 물감의 색감을 은은하게 보여줘요. 그 과정을 반복하면 단단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색감이 완성돼요.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어떤 작업을 해나가실 계획인지도요. 관객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편안한 작업을 많이 하고 싶어요. 한지와 먹이라는 재료가 갖는 고유의 정서를 해외 전시를 통해 더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저만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한국적인 작품들을 더 많은 나라에 알리고 싶다는 큰 꿈도 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작업 방식은 아마도 여러 방향으로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앞으로 해나가고 싶은 작업들이 더 많거든요. 작품을 통해 다양한 도전을 이어가고 싶어요.

“작품의 의미를 문자로 설명하는 건 쉬는 날에도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관객들의 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요. 작품을 보는 순간만큼이라도 평온함만이 머물길 바라요.”

늘 차분한 공기가 감도는 성연화 작가의 작업실.

에디터 : 장세현  |   포토그래퍼 :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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