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日 정부는 외면했지만 주민이 기록 보존.."너무 가혹"

윤진 2022. 8. 15.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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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제 강제동원 현장인 사도 광산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기간을 뺀 채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역사 왜곡 논란이 일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와 달리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수십년 간 직접 조사하고 추모해 온 현지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사도섬에서 윤 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조선인 강제동원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사도섬, 캐낸 광물을 선별하던 선광장은 일본 유명 만화 영화의 배경이 될 만큼 유명한 곳입니다.

하지만 강제동원 시기 운영된 시설이라,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대상에서 빠져 있습니다.

사도광산에 동원된 조선인은 1,200에서 1,500명 가량,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 이들의 흔적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곳은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117명이 머문 것으로 알려진 기숙사 터입니다.

이처럼 수풀만 무성하게 우거진 채 방치돼 있습니다.

공동 취사장 역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정확한 위치라도 알려진 건 섬 주민들의 조사 덕분입니다.

["(제2 기숙사까지는 꽤 머네요.) 네, 저쪽 앞까지는 그렇죠."]

30여 년 전 조선인 명부가 발견되자, 주민들은 사비를 들여 한국까지 피해자를 찾아다녔습니다.

[코스기 쿠니오/사도 주민 : "담배 배급 명부에서 한국에서 온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노동 여건이 힘들었다는 걸 사람들에게 듣고 나서, 이건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야시 미치오/사도 주민 : "우리가 실제 일했던 (조선인) 광산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그들의 사연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고, 아무도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1940년부터 2년 동안 사도광산에서 일했던 조선인 천여 명 가운데 10명이 숨졌고, 148명은 섬을 탈출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 140여 명 중 절반이 폐질환 등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주민들은 지난 4월 '사도 조선인 노동자를 기억하는 모임'을 만들었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공유했습니다.

[아라이 마리/사도시의회 의원 : "(피해자) 증언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9월 열릴 시의회에서라도 '증언에 귀를 기울이자'라고 다시 강조할 생각입니다."]

일본 정부는 내년 세계문화유산 심사에 다시 도전한다는 계획이지만, 강제동원 역사를 포함시킬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사도섬에서 KBS 뉴스 윤진입니다.

촬영기자:정현석 김경민

윤진 기자 (j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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