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경제학자 이지웅 교수 "그린플레이션? 비용 감당 없는 탄소 중립 달성은 불가능"

세종=이민아 기자 2022. 8. 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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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 파워 이코노미스트]
"탄소세 도입됐다면 기름 값 2000원이었을 것
지구 평균 온도 2도 올라가면 GDP 감소"

친환경 사회로 변모하기 위해 노력할 수록 치러야 하는 전반적인 비용이 오르고, 이로 인해 물가 상승을 유발한다는 ‘그린플레이션’의 역습에 대한 우려가 최근 제기되고 있다. 급격한 물가 상승에 직면한 각국이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에 속도조절을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하지만 기후 변화 경제학자인 이지웅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는 “친환경 전환으로 인한 물가 상승은 아무도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아무런 비용, 희생 없이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라며 “운동도 안 하고 맛있는 것은 잔뜩 먹으면서 살을 뺄 수 있다고 하는 말과 같다”고 강조했다.

이지웅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가 지난 8월 4일 서울 강남구 위드온 수서센터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갖고 있다./장련성 기자

기후 변화 경제학은 이산화탄소(CO2)의 배출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문이다. 쉽게 말해, 탄소 배출에 따른 사회적 피해, 비용이 얼마나 될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국내에는 아직 기후변화 경제학을 주력으로 연구하는 경제학자가 많지 않다. 사실상 국내에서 이 교수가 개척을 하고 있는 학문이다. 그는 한국기후변화학회로부터 2017년 신진연구자상, 2015년 하반기학술대회 최우수발표논문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환경학자, 미래학자 같기도 하다’는 말에 “스스로 환경주의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며 “미래학자 보다는 ‘현재학자’가 더 낫겠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는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우리는 지금까지 화석 연료에 기반한 경제 성장을 해왔다”며 “전세계에서 쏟아진 폭우로 인한 피해, 폭염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는 것은 현재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범지구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저탄소 사회로 넘어가야 하지만, 전환 과정은 쉽지 않고 비용과 시간을 많이 들여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 교수와 일문일답.

-그린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있다. 친환경 전환 정책이 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환경 전환 정책은 물가를 자극할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감당해야 한다. 치를 비용 없이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있었다면 벌써 한참 전에 성공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탄소세를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실현됐다면 기름값은 현재 리터당 2000원 이상을 웃돌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없었어도 그 정도 가격 수준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비용 없이 저탄소 사회 달성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다.”

-스스로 환경학자, 미래학자라고 생각하나.

“환경주의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미래학자보다는 ‘현재학자’가 더 낫겠다(웃음). 기후 변화는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전세계에서 쏟아진 폭우로 인한 피해, 폭염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는 것은 현재의 일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화석 연료에 기반한 경제 성장을 해왔다. 저탄소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고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소득이 낮은 계층이 더 큰 부담을 질 수 있다. 가령 만약 탄소세를 부과해 휘발유 가격이 오른다고 가정할 경우, 돈 많은 사람들은 전기차로 차를 바꿀 것이다. 그러나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높은 휘발유 가격을 감당하며 계속 타던 차를 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손실은 어느 정도로 발생할까.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구의 평균 온도가 2도 올라가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 아시아’ 국가들의 GDP는 2019년 대비 2050년에 9.5%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성장을 하기는 커녕 경제 규모가 위축된다는 의미다. 전쟁과 같은 돌발 변수 없이 오직 기후 변화로 인한 GDP 감소다.

파리 협정의 목표가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하로 하자는 것이다. 같은 기간 2도 이하로 올라가 파리 협정을 준수할 수 있는 경우, 선진 아시아 국가의 GDP는 3.3% 줄어드는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은행에서도 비슷한 보고서를 냈다. 2021년 대비 2050년 지구의 온도가 2도 상승하도록 한다면 기후변화 영향에 따른 연평균 성장률은 △0.08%를 나타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같은 기간에 1.5도만 올라갈 수 있도록 탄소세 등 각종 조치를 도입하면 연평균 GDP 성장률은 △0.32%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온도가 덜 올라가는데 왜 GDP가 더 많이 감소하나.

“지구 온도 상승을 신경쓰지 않으면, 경제가 생각보다 덜 위축되긴 하겠지만, 사람이 GDP로만 먹고사는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것도 기후변화에 따른 사회적인 비용으로 볼 수 있을까.

“튀니지 재스민 혁명의 원인 중 하나로 옥스팜이라는 국제구호개발기구는 기후변화로 인한 러시아의 밀 흉작을 꼽았다. 러시아 내에서 먹을 밀도 부족했기 때문에 튀니지 내 밀의 가격이 당시 60~70% 올랐다. 튀니지는 빵을 먹고 사는 국가다. 국민들의 불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식료품 가격의 상승은 이민을 유발하기도 하고, 국제 정치적인 대형 사건 발생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그 외 기후 변화가 주는 사회적인 영향은.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 기후변화로 인해 다음 세대가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지구의 기후 변화를 막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인식도 있다고 한다. 기후변화가 가족계획에 영향을 준다는 게 소수 의견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지웅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가 지난 8월 4일 서울 강남구 위드온 수서센터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갖고 있다./장련성 기자

-기후 변화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게임이론 논문을 쓰던 박사 과정 때, 기차에서 조그마한 공용 테이블 쪽 자리에 앉아 수학 책을 보고 있었다. 맞은편 노신사가 나의 책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보고 있던 수학 책이 자신에게도 익숙하다며 스스로를 네덜란드 정부에서 일 하다가 은퇴한 토목공학과 박사라고 소개했다.

그가 ‘박사 끝나면 뭐 할 것인가’ 물었고, 나는 ‘네덜란드는 언제 물에 잠길지 모르니, 다른 나라로 갈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그의 표정이 약간 진지해지면서 ‘해수면이 상승하면 어느 나라가 제일 잘 살아남을 것 같은가, 네덜란드다’라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바닷물이 넘쳐 해안 도시들이 잠기는 상황에 대비해 100년 이상 준비를 해왔고, 대비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라라는 설명이었다. 당시에 그 얘기를 듣고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기후 변화를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는 건가, 하며 관련해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실제로 미국에 카트리나 같은 태풍이 불어 피해를 복구할 때 네덜란드 건축회사의 기술자들이 파견돼 일했다고 한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는 이런 기후 변화가 먹거리다.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 기후변화 경제학 교재가 사실상 없다. 그래서 일반적인 환경 경제학 책의 한 분야로 소개되고 있다. 교재를 써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유럽은 기후 변화 경제학 연구가 활발한가.

“당시 2011년이었는데, 유럽 대학들에 관련한 수업이 많았다. 몰랐던 세계를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지도 교수한테 기후 변화 경제를 공부한다고 하면 딴 짓 한다고 혼날 것 같아 몰래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 분야를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국내 연구 기관을 찾다보니 에너지경제연구원의 기후변화실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다. 인사팀에 메일을 보내 관심이 있고 일하고 싶다고 했고 이 곳에서 2012년 12월부터 4년 정도 근무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는 무슨 일을 했나.

“2015년부터 국내에서 시행한 배출권 거래제 도입 준비를 했다.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배출권 거래제를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조금씩 다듬어가는 과정을 담당했다고 보면 된다.

-한국은행 근무 경력이 있다.

“군대 가기 전에 다녔다. 경제통계국에서 우리나라 전체 금융 기관의 금리 조사를 했다. 금융기관에 조사하고 전화해서 확인하는 ‘로우 데이터(raw data)’를 만드는 일이었다. 데이터를 만드는 과정을 한번쯤은 보는 것이 연구를 하는 데에 있어 도움이 많이 된다. 생각보다 데이터 만드는 과정에서 에러도 많다는 점도 알게 됐다. 사실 그 때는 그 일을 하는 게 되게 싫었지만, 돌이켜보면 당시 경험이 연구자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최근 신문에서 한국은행 젊은 직원들이 회사를 많이 나간다고 하던데,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한번 더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최근 진행하는 연구는.

“배출권 거래제 하에서 배출권이 부족한데도 온실가스를 배출한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과징금을 매긴다. 한국은 해당 연도의 온실가스 배출권 평균 가격을 산출하고 그의 3배 가량 되는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한다. 유럽연합(EU)은 정액제로 미리 정해진 과징금을 부과한다. 한국과 EU의 차이는, 기업 입장에서 사전에 과징금이 얼마나 부과될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과징금의 예측 가능성이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한국연구재단 선정 연구로 채택돼 현재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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