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노예계약 아니면 뭐냐".. 이직 자유가 없는 공인중개사들

이학준 기자 2022. 8. 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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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사각지대 악용해 공인중개사 퇴사 막아
퇴직신고 안해주면 이직도 불가능
"퇴직신고 중요치 않다는데, 현실과 괴리"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 여성 A씨는 2019년부터 서울 중구 소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일했다. 중요한 계약을 수차례 따낼 정도로 활약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다. 신입이라는 명분 아래 계약 수수료 약 70%를 팀장이 가져갔기 때문이다. A씨는 다른 중개사무소로 이직하기로 결심하고, 지난 5월 퇴직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중개사무소 대표 B씨가 퇴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A씨의 악몽은 시작됐다. 현행법상 개업공인중개사인 B씨는 A씨와의 고용 관계가 종료되면 이 사실을 관할 구청에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 B씨가 A씨의 이직 결정 사실을 알게 된 후, 일부러 구청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서 A씨는 현재까지 이직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종료가 신고되지 않은 채 다른 회사에서 중개업을 하면 형사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A씨는 “평생 노예도 아니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토로했다.
서울 강남의 한 상가 건물에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줄지어 들어서 있다. 기사와 직접적 연관 없음. /조선DB

공인중개사법의 허점을 이용해 다른 회사로의 이직을 막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A씨와 같은 소속공인중개사가 사직원을 제출하는 등 퇴직 의사를 밝혀도 개업공인중개사인 B씨가 구청에 신고하지 않으면 퇴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공인중개사법 15조 1항에 따르면 개업공인중개사는 소속공인중개사를 고용하거나 고용관계가 종료되면 등록관청에 신고해야 한다. 고용관계 종료를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을 개업공인중개사로 한정한 것이다. 개업공인중개사란 공인중개사무소를 개업한 사람이고, 소속공인중개사는 해당 사무소에 소속된 공인중개사를 뜻한다.

고용관계 종료가 신고되지 않았는데 다른 회사에서 중개업을 하면 ‘이중등록’이 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사실상 개업공인중개사가 퇴직을 허락하지 않으면 소속공인중개사는 그곳에서 계속 일해야 하거나 아예 중개업 자체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소속공인중개사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나 일반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적용도 받지 못한다.

물론 악의적 목적으로 고용관계 종료를 신고하지 않을 경우 관할 구청은 해당 중개사무소에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지만, 피해자들은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호소한다. B씨 중개사무소 관할인 중구청 관계자는 “관련 논점들에 대해 국토교통부에 질의를 한 상황”이라며 “질의 내용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일러스트=이은현

법조계는 고용종료 신고가 되지 않더라도 퇴직 의사를 밝혔으면 사실상 퇴직이 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중개사무소에 취직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2011년 국토해양부(現 국토교통부)가 법제처에 관련 질의를 한 결과를 보면 법제처는 “(고용관계 종료) 신고는 ‘보고적 의미’의 신고”라며 “신고 행위가 있어야만 비로소 해고의 법적 효과가 발생하는 창설적 효력은 없다. 해고의 효력은 해고일부터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현실에서는 이러한 법률 해석이 전혀 통용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한다.

A씨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중구청·서초구청 등에 문의해 보니 이러한 경우 개업이든 이직이든 모두 안 된다고 했다”며 “구청은 강제력을 발휘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률 해석과 실무는 다른 것 같다”며 “구청은 소송을 하거나 서로 잘 협의를 해야 한다고만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관련 법을 개정하거나 관할 구청 등이 직권으로 고용 관계를 종료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고용 종료 신고를 안 해주는 것 자체가 위법 행위”라며 “행정청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해 소속공인중개사가 고용 종료를 원하면 직권으로 해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주무부처인 국토부 관계자는 “고용종료 신고는 현행법상 개업공인중개사만 가능함에 따라 소속공인중개사는 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며 “고의에 의한 피고용인의 피해 방지를 위해 특별한 경우에는 피고용인도 고용종료 신고를 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개정 추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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