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리더] 한승만 베르티스 대표 "인간 단백질로 췌장암⋅난소암 조기 진단.. 내년 진단 솔루션 출시"

김명지 기자 2022. 8.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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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오믹스, 인간 몸 속 단백질로 질병 진단
"인간 단백질 정보, 코끼리 뒷다리 만지는 기분"
"K바이오, 방대한 정보 처리 기술 경쟁력 있어"
한승만 베르티스 대표. /김명지 기자

지난 2003년 인간 유전체(DNA)를 분석한 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됐다. 게놈 지도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이 지도만 완성되면 인간의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인간 게놈의 갯수가 2만여개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확인되면서 DNA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 질병의 근원을 찾는 인류의 노력은 다시 시작됐다. 학계는 게놈과는 정반대, 즉 인간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을 연구하는 프로테오믹스(Proteomics)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간 몸 속의 단백질에는 유전체 즉 게놈보다 1000배가량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프로테오믹스가 유전체보다 훨씬 정밀하게 암 등 인간의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는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고 봤다.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2020년 1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한 해 동안에만 8개의 프로테오믹스 기업이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프로테오믹스 분석 장비와 진단 솔루션을 개발하는 시어(Seer)는 2020년 12월 상장할 때 1조5000억원(12억달러) 이 넘는 자금을 끌어 모았고 오링크, 소마로직 등 프로테오믹스 기업들도 지난해 수조원대의 상장에 성공했다. 프로테오믹스를 기반으로 암 및 각종 질병에 대한 진단 및 분석 솔루션을 제공한다.

다만 올해 들어 미국 바이오주에 대한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이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80%가량 증발한 상태다. 국내 프로테오믹스 바이오 벤처인 베르티스의 한승만 대표는 “미국 바이오 기업의 주가가 급락한 것은 맞지만, 비즈니스 전망은 긍정적이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글로벌 분석회사인 리포트앤데이터는 오는 2028년이면 전 세계 프로테오믹스 시장이 659억1000만달러(약 86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베르티스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프로테오믹스 기반의 유방암 진단보조 솔루션인 ‘마스토체크’를 개발해 상용화했다. 1㎖의 혈액에서 채취한 혈장 단백질을 분석해 ‘내가 유방암에 걸렸는지’를 조기(0~2기)에 진단하게 된다. 마스토체크는 지난 2019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판매허가를 받았다.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한 대표는 SK케미칼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한 후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로 자리를 옮겼다.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제약·바이오 부문을 이끌던 2014년 ‘베르티스’를 창업했다. 바이오 분야 전문 컨설턴트가 프로테오믹스의 가능성을 보고 창업을 한 것이다.

‘가능성’으로 시작한 베르티스는 벌써 창업 9년째를 맞았다. 2021년 프리IPO(pre-IPO)에서 SK텔레콤과 SK플래닛으로부터 15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유방암 진단 솔루션 개발에 성공한 베르티스는 현재 췌장암, 난소암 조기 진단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한 대표는 “내년이면 이 제품들에 대한 허가와 출시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 대표를 지난달 서울 삼성동 본사에서 대면으로, 지난 11일 비대면으로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一 베인앤컴퍼니에서 근무하다가 베르티스를 창업한 것으로 안다. 계기가 있었나.

“사실은 컨설팅회사에서 투자회사로 한번 옮겼고, 이후에 직접 창업을 했다. 컨설팅 회사에서 사모펀드들이 제약사나 바이오 쪽에 투자를 할 때 실사 등을 하는 업무를 주로 했다. 아무래도 백그라운드(바이오쪽)가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이오쪽을 많이 보게 됐고, 많이 보다 보니 스스로 관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른바 ‘K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관찰하기 시작했고, 프로테오믹스라는 분야를 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지노믹스, 즉 DNA의 세상이었다.”

一 그런데 지금도 DNA의 세상 아닌가. 코로나19 백신을 계기로 RNA(리보핵산)가 뜨긴 했지만.

“지금도 DNA의 세상이긴 하다. 하지만 결국 DNA가 RNA로 가고, RNA가 프로틴, 즉 인간 단백질 분석으로 갈 것이라고 봤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인류는 질병의 근원을 찾아보자고 DNA를 분석했다. DNA가 인간 몸의 단백질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2003년 인간 게놈 지도가 끝났지만, 인간 질병은 완벽히 정복되지 않았다. DNA의 지도를 완성했으니, 이제는 마지막 끝단에 있는 인간 몸의 단백체 분석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一 그래서 왜 ‘프로테오믹스’라는 건가.

“인간 몸에 있는 단백체가 100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100만개의 단백체에 담긴 정보가 몇만개가 된다고 한다. 눈 앞에 거대한 코끼리가 있는데, 사람이 서로 마구 만지고 있는 꼴이라고 봤다. 그래서 프로테오믹스가 국내 바이오 기업에 가능성 있는 분야라고 판단했다.프로테오믹스는 인간의 단백체를 분석하는 사업이다. 엄청난 양의 생명 과학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은 의료 체계가 우수하고, 임상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 여기에 데이터 분석과 소프트웨어 설계 등 한국의 정보기술(IT) 수준이 높다는 것도 강점이라고 판단했다. 의료와 소프트웨어와 인포매틱스 모두 한국 사람이 잘하는 분야 아닌가.”

一 하지만 베르티스를 창업한 2014년만 해도 프로테오믹스가 주목을 받지 않았다.

“내가 일찍 뛰어든 것은 맞다. 하지만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미국에서 프로테오믹스 기업 7개가 상장에 성공했다. 그래서 내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프로테오믹스가 ‘차세대 바이오 기술’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DNA가 대세이던 2000년 초반 상황이 이랬다. 그 당시 10개도 안되던 지노믹스 기업이 2010년에는 30개로 늘어났다.”

一 SK플래닛과 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SK플래닛은 베르티스의 국내 및 해외 진출 등을 도와주고 있다. 베르티스는 지난해 10월 미국 자회사인 베르티스 바이오사이언스를 설립하고 샌디에이고에 연구소를 마련했는데, 여기에는 SK플래닛이 보유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됐다.”

한승만 베르티스 대표. /김명지 기자

一 빅데이터와 딥러닝(심층학습) 등을 활용한 연구 개발도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프로테오믹스 기업인 시어(Seer)와 IT회사인 구글 출신의 전문가들을 영입해 팀을 구성했다. 프로테오믹스에서 사용되는 MRM(다중반응탐색)기기의 데이터 분석을 머신러닝(기계학습)으로 자동화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지난 6월 미국 미네소타에서 열린 미국질량분석학회(ASMS) 등 학술대회에서 연구 데이터를 발표했고, 기존 MRM 데이터 분석과 비교해서 분석 시간을 600분의 1 수준으로 단축시킬 수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一 하지만 미국 프로테오믹스 기업의 주가 상황은 좋지 않다. 2021년 1월 79달러까지 올랐던 시어(Seer) 주가는 10달러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은 회복될 수 있을까.

“투자자에 따라 움직이는 주식 시장 상황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시어의 최근 실적 발표를 보면, 이 회사의 2분기 매출이 360만달러(약 47억원)로 지난해보다 약 2.7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대차대조표상 자산도 4억5600만달러(약 5944억원)로 집계됐다. 산업계가 내놓은 보고서들이 프로테오믹스 기술에 대해 장기적으로 긍정적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점도 참고가 될 것 같다.”

一 프로테오믹스에 대한 미국 현지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정부도 바이오헬스 투자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올해 2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앞으로 25년 동안 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50% 이상 낮추겠다며 암 정복을 위한 ‘캔서문샷(Cancer Moonshot)’ 프로젝트의 재점화를 천명했다. 미국 정부는 캔서문샷 추진에 2017년부터 7년간 18억달러(약 2조3500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一 캔서문샷과 프로테오믹스가 무슨 관계가 있나.

“프로테오믹스와 지노믹스의 대가인 헨리 로드리게스 국제 암유전단백체 컨소시엄 교수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캔서문샷을 담당하고 있다. 캔서문샷에서 프로테오믹스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 가이드라인에 환자를 치료할 때 프로테오믹스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고 추가했을 정도로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一 프로테오믹스 기업으로 베르티스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설명해 달라.

“바이오마커 개발부터 분석 기술 서비스, 임상 솔루션을 개발해 수익을 창출하게 된다. 분석 기술 서비스와 조기진단 검사는 수익이 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팬오믹스 통합 분석 솔루션 ‘PASS’ 서비스다. PASS는 런칭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국내 국책기관, 정부출연연구소, 민간기업 등 30여곳에 서비스하고 있다. 미국의 프로테오믹스 기업들은 분석 기술 서비스로 연 1000억원 수준의 매출을 거두고 있다. 우리가 개발한 프로테오믹스 기반의 유방암 혈액검사 솔루션 마스토체크는 2019년부터 상용화됐다. 마스토체크는 최근 한국보건의료연구원으로부터 선진입의료기술로 지정돼 7월부터 병원 처방이 가능해졌다.”

一 해외 진출 계획도 있나. 마스토체크를 수출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지난해 미국 법인 베르티스 바이오사이언스 설립했고, 이를 계기로 미국 현지와 글로벌 무대에서 영향력 있는 파트너들과 임상 및 연구개발 협력 등을 추진하고 있다. 마스토체크의 경우에도 국내 검진 기관 및 병원 도입을 넘어 아시아 국가 등 글로벌 진출을 앞두고 있다. 아마 아시아 지역에서 신속하게 성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一 베르티스가 현재 집중하는 현안은 무엇인가.

“유방암 외에 췌장암, 난소암 등에 대한 진단 솔루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에는 췌장암, 난소암 두 제품의 허가와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출시 전까지는 학회 행사나 논문 게재 등을 통해 임상연구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공유할 계획이다.”

베르티스 제공

一 새 정부가 K바이오 육성을 내걸었다. K바이오펀드도 올해만 5000억원 규모로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긴 호흡이 필요한 바이오 산업의 특성상 우수한 기술을 가진 기업은 인내를 갖고 꽃을 피울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글로벌 기업과 격차가 크지 않거나 기술적으로 우위가 있는 기업에 정책적 지원을 한다면 충분히 국내를 넘어 글로벌 리더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혁신 의료기술을 개발한 기업에 시장 진출의 길을 터 주는 것도 정부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 국민이 바이오 신기술의 혜택을 빠르게 누릴 수 있는 결과도 낼 수 있을 것이다.”

一 코스닥시장 상장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나. 올해 안에 기술특례제도를 통한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베르티스는 프로테오믹스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이고, 기업공개는 성장과 혁신을 견인할 매우 중요한 다음 단계다. 현재 IPO 주관사인 미래에셋대우와 논의하면서 시기와 전략을 계속해서 조율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 산업으로 투자가 활발해지고 내실과 가능성을 가진 기업들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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