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지금 왜 도농상생협력인가

2022. 8. 15.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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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 위기에 식량안보 위협
사회구성원 함께 해결책 찾아야
생산자·소비자 상호신뢰 구축을
새로운 민관 협치방식 전환 필요
농민·도시민간 역할도 인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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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상생협력(相生協力)은 특정 국가나 경제체제를 넘어 전세계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부문·지역·계층간 격차가 지나치게 확대되고 양극화가 진행되는 등 사회적 갈등이 심화하는 데 따른 반성으로 상생협력이 대두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계는 선진국의 ‘카지노 자본주의’뿐 아니라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에 이르기까지 ‘각자 먼저 부자 되기’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었고 그 결과는 경제적 양극화 심화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지난 세기 후반 이래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초고속 압축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수출 주도 성장의 과실을 맛본 도시부문과 상대적으로 소외된 농촌부문간에 지속적인 성장 격차가 누적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런 도농간의 지나친 불균형은 국가균형발전을 저해하는 핵심 이슈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우리 농촌을 둘러싼 여건 변화 가운데 먼저 꼽아야 할 것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총인구 감소와 함께 수도권 인구 집중 심화에 따른 농촌지역 인구 급감, 초고령화가 가져올 지역소멸 우려다. 농촌지역은 지속적인 인구 유출로 마을 공동화(空洞化)를 겪고 있다. 또 인적자원 부족으로 활력이 저하되고 지속가능성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도시지역은 집값 급등과 혼잡비용 증가 등 과밀화에 따른 문제가 심각하고 청년실업, 저출산, 높은 자살률, 노인빈곤 등으로 삶의 질 수준이 경제적 성과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최근 고조되는 미국·중국간 경제 갈등, 코로나19를 계기로 한 글로벌 공급망 교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에 따른 농자재·농산물 수급 상황 악화가 우리나라 식량안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재검토해야 한다.

한편 코로나19 확산 이후 비대면 분산 거주 사회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정보통신기술(ICT) 등 신기술 발전으로 전국 어디에 거주하든 다양한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서 도시민의 농촌지역에 대한 새로운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연간 50만명 규모의 농촌·농업 이주가 지속되고 그 가운데 절반을 20∼30대 청년층이 차지하며, 다지역 거주 원격근무 등 사회 트렌드 변화로 농촌의 잠재력이 재평가되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매우 불리한 부존자원 조건과 대외지향적 성장 전략 아래 우리 농업·농촌은 지속적인 청년층 인구 유출과 초고령화의 급진전을 겪으며 거의 자생력을 상실했다. 이는 농민이나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국민의 식량안보와 국토 환경 보전을 통한 삶의 질 향상 차원에서 모든 사회구성원이 함께 참여하는 ‘도농상생협력’의 틀을 만들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도농상생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호신뢰관계 구축이다. 농민은 우리농산물이 차별화한 먹거리라는 확신을 소비자에게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통경로가 복잡하고 원거리·장기간 수송·저장·가공 과정을 통해 식탁에 오르는 수입 농산물에 비해 정직한 영농을 통해 생산되는 우리농산물이 더 안전하고 건강을 보장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한편 소비자는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생명을 좌우하는 먹거리에 더 높은 관심을 둬야 한다. 자신이 소비하는 먹거리의 생산·유통·가공 과정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노력만이 ‘100세 시대’의 건강을 보장받는 첩경임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이와 같은 지각을 바탕으로 할 때 산지 직거래, 친환경농산물 소비, 공공급식에서 로컬푸드 운동 확산이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얼굴 있는 농산물’로 대표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관계다.

도농상생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두번째 조건은 농업·농촌 영역에서 민간주체가 주도하는 자율성 확보와 새로운 민관 협력시스템의 구축이다. 종래 방식의 정부 주도 시책이나 캠페인은 자칫 추진 주체의 사정에 따라 동력을 상실하거나 중단될 우려가 높으며 가시적인 숫자 목표에 집착함으로써 내실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 지원사업 추진에서도 개발연대부터 익숙해진 민관간 갑을관계의 통치(Government) 방식에서 벗어나 대등한 입장에서 협력과 역할 분담이라는 협치(Governance) 방식을 정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민간 역량을 최대한 활용한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지속가능한 도농상생협력사업은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새로운 민관 협치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전환하는 노력이 병행될 때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도농상생협력의 성공을 위한 세번째 조건은 다양한 조직과 매체를 활용한 교육·훈련의 내실화를 통해 도농 관련 주체들의 인식 수준을 향상하는 일이다. 각종 사업이나 운동 성과가 지속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사업 참여자들의 자발성을 토대로 한 학습과정을 정착시켜야 한다. 교육·훈련 과정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참여가 필수적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해당사자들의 활발한 토론을 통한 주체적인 문제 해결 노력이다.

도농상생협력이 소비자와 생산자 양쪽에 모두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올바르게 인식하려면 소비자는 지구촌의 공급 능력 한계로 인한 식량안보의 중요성과 국내 농업 기반 유지를 위한 사회적 노력의 필요성을 자각해야 한다. 생산자는 고품질 안전 농산물의 공급이라는 사회적 기여에 대한 반대급부로 국민 세금 부담을 통한 직불제 재원이 조성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또 농업활동의 사적 이익과 공익 목적간의 조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납세자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전면 개방 시대에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시장 기능에 대한 보완장치로서 소비자 지불, 즉 직불제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이런 방식은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세계 농정의 핵심 정책수단으로 운용되고 있다. 정책당국은 출구 없는 가격 지지 정책 논란을 넘어 직불제 중심의 새로운 농정 틀 확립을 이뤄내야 한다. 이를 통해 농가경영 안정과 환경·안전성 확보를 위한 정책 전환을 획기적으로 추진해가야 할 것이다.

정영일 (도농상생국민운동본부 대표·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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