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나훈아 '사랑은 눈물의 씨앗', 세간의 수군거림은 더 큰 소문으로

2022. 8. 1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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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바람 잘 날이 있을까.

당시 경찰이 사건개요를 발표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고 '정인숙을 죽인 범인이 누구누구다'라는 소문이 나훈아 노래 '사랑은 눈물의 씨앗'에 빗대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된 이야기다.

앞자리엔 그의 오빠 정종욱이 허벅지에 총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 가사에 이 사건을 곁들여 개사해 부르면서 소문은 더욱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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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바람 잘 날이 있을까. 어김없이 요즘도 이런저런 풍문으로 소란하다. 정가에 풍문이 도는 이유는 무언가를 은폐하려고 했기 때문일 터. 이럴 땐 과거에 일어난 비슷한 역사를 들여다보며 미래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는 것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한국 현대사 속에 정치·소문·가요와 관련된 상징적인 사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정인숙 피살사건’이다. 당시 경찰이 사건개요를 발표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고 ‘정인숙을 죽인 범인이 누구누구다’라는 소문이 나훈아 노래 ‘사랑은 눈물의 씨앗’에 빗대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된 이야기다.

정인숙은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요정 ‘선운각’에 들락거린 여인이다. 1960∼1970년대엔 정·재계 인사가 고급 술집인 요정에 모여 암암리에 정책을 결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정씨는 이름난 접대부로 유명 인사들과 교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1970년 3월17일 저녁, 서울 마포구 절두산 부근에 주차된 승용차 뒷자리에서 총에 맞은 채 발견됐다. 앞자리엔 그의 오빠 정종욱이 허벅지에 총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경찰은 정실하지 못한 동생을 오빠가 보다 못해 총으로 쏘고 자신도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어느 일간지 기자가 정씨의 수첩에 박정희 대통령과 정일권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재계 33인 명단이 있다고 폭로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기에 더해 더 큰 소문이 돌았다. 정씨에겐 세살배기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박정희 아들이냐 정일권 아들이냐를 두고 세간의 수군거림이 시작된 것이다. 사람들은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 가사에 이 사건을 곁들여 개사해 부르면서 소문은 더욱 부풀어 올랐다.

이후 이 일과 관련된 인물과 자손들은 비명횡사했거나 대부분 불행에 가까운 일을 상당히 겪었다.

가수는 제목 따라간다고 했던가. 평소 베일에 가려진 삶을 살아온 나훈아도 풍문 탓에 고초를 겪은 일이 여러 차례 있다. 특히 2008년 야쿠자·여배우와 엮인 낭설이 떠도는 바람에 기자회견까지 열며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다.

중국 역술서 ‘초씨역림(蕉氏易林)’에 이런 말이 있다. ‘대분망천 불견성진, 고소실대 복도장외(載盆望天 不見星辰, 顧小失大 福逃牆外)’ 머리에 동이를 얹고 하늘을 바라보고자 하면 별을 볼 수 없고 작은 것을 돌아보다 큰 것을 잃으니 복이 담 밖으로 달아난다는 뜻이다. 1987년 정국이 혼란할 때 유명 역술가 류충엽이 당시 대통령 부부에게 전한 점사였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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