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눈물' 삼킨 이준석..'尹 정부 출범 100일' 앞두고 與 내홍 절정
"노회한 정치인" vs. "먼저 온 미래"..엇갈린 당내 여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직접 나선 '분노의 기자회견' 여파가 거세다.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그룹을 대놓고 저격하면서다. 당장 집권 여당과 대통령에 대해 이 대표가 내린 현실 진단을 놓고 여당 내부와 지지층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20%대 지지율로 윤 대통령 리더십이 고전하는 상황에서 여권 내 '집안 싸움'이 재점화되자 당내에서는 '보수 공멸'에 대한 위기감마저 감돈다.
'분루' 삼킨 李대표...'윤핵관'에 "끝까지 싸우겠다" 전면전 선포
이 대표가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은 여권 전체를 향한 '융단폭격급' 공세로 평가된다. 그는 62분간 진행된 회견에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국민의힘을 넘어서 이제 조직에 충성하는 국민의힘도 불태워버려야 한다", "이 당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고, 죽은 당에 표를 줄 국민은 없다" 등 거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과정에 대해서도 "사람 하나 잡자고 '집단 린치'에 이어 당헌·당규까지 졸속 개정하는 자기모순 속에서 희화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눈엣가시 같은 자신을 찍어내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또 권성동 원내대표와 장제원ㆍ이철규 의원을 '윤핵관', 정진석 국회부의장과 김정재ㆍ박수영 의원을 '윤핵관 호소인'이라고 실명으로 거론하면서 "이 정권이 위기인 것은 윤핵관이 바라는 것과 대통령이 바라는 것, 그리고 많은 당원과 국민이 바라는 것이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직격했다. 또 이들을 향해 "총선 승리에 일조하기 위해 모두 서울 강북지역 또는 수도권 열세 지역에 출마를 선언하라"고 압박했다. 윤핵관과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다.
회견 도중 눈물을 보였던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을 향해서도 격앙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윤 대통령이) 대선과 지방선거를 겪는 과정에서 누차 저를 '그 XX'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며 "저에 대해서 '이XX, 저XX'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서 당대표로 뛰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 상황에 대해 "당의 위기가 아니라 대통령의 지도력 위기"라고 직격한 뒤, "대통령과 원내대표가 씹어돌렸던 저에게 어떤 해명이나 사과도 하지 않았다"며 억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또 고사성어 '양두구육(羊頭狗肉ㆍ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에 빗대 "(선거 과정에서) 저야말로 양의 머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팔았다"고 말해 윤 대통령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불러왔다.
쪼개진 당내 여론...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與
당내 여론은 극명하게 갈렸다. '친이준석계' 의원들은 즉각 이 대표를 옹호하고 나섰다. 김웅 의원은 "그럼에도 우리는 전진할 것"이라며 "자랑스럽고 짠한 국민의힘 우리 대표"라고 응원했다. 김병욱 의원은 "권위주의적 권력구조에 기생하는 여의도의 기성 정치권을 정밀 폭격했다"며 "이 대표는 여의도에 먼저 온 미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여당 지지층 내에서도 윤핵관의 호가호위와 윤 대통령의 리더십 부족을 원인으로 꼽은 이 대표의 위기 진단에 "수긍할 만한 부분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 중진 의원은 전화통화에서 "성급하게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잃은 현 상황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정치보복의 희생자임을 부각시키면서도 이 모든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자신의 성상납 및 증거인멸 의혹에 대해선 반성하는 모습이 없다는 점은 한계로 거론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 대표를 향해 "왜 그런 욕을 먹었는지도 생각해 보라"고 일침을 놨다. 윤 대통령을 공개 지지한 신평 변호사는 "과도한 자기애와 자아몰입으로 현실을 잊어버리고 '전도된 현실'에 매달린다는 점에서 닮았다"며 이 대표를 '남자 추미애'라고 빗댔다.
당 지도부와 윤핵관 측은 일단 직접 대응을 자제했다. 다만 윤핵관으로 지목된 이철규 의원은 "오로지 남탓과 거짓말만 했다. 이준석은 아주 사악한 사람"이라고 반발했다. 차기 당권주자들도 비판대열에 합류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이 대표는 청년 정치인이 아니라 노회한 정치꾼의 길을 가고 있음을 확신했다"고 했다. 지난 대선 당시 원내대표로 이 대표와 '투톱'을 이뤘던 김기현 의원은 "저는 개고기를 판 적도 없고, 양의 얼굴 탈을 쓰지도 않았다"라고 말했다.
尹 대통령 '결자해지' 나설까
현재로선 이 대표 주장대로 윤핵관이 2선으로 물러설 가능성은 매우 낮다. 주호영 비대위원장이 중재에 나선다고 갈등이 풀릴 거 같지도 않다. 문제는 집권 세력이 대통령 측근과 여당 대표 진영으로 갈려 이전투구를 벌이는 현 상황이 지속되면 여권이 공멸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여권 내부에선 '내부 총질' 문자로 사태 악화의 원인을 제공한 윤 대통령이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나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당 분란에 윤 대통령 책임이 아예 없다고 할 순 없다"며 "무대응 기조로 침묵만 할 게 아니라 직접 나서 어느 방향이든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민순 기자 s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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