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집권당 대표의 내부 난사, '정치'가 실종된 여당 막장극

조선일보 2022. 8. 15.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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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 대표는 당 중앙윤리위원회에서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를 받은 이후 36일 만인 이날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22.8.13/뉴스1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당 윤리위 징계 36일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들을 맹비난했다.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을 “선거 과정 내내 저에 대해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대선 때 “양의 머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팔았다”고 했다. “대통령의 지도력 위기”라면서 윤 대통령과 독대해 나눈 얘기까지 공개했다. ‘윤핵관’으로 불리는 대통령 측근들에 대해선 “사람 하나 잡자고 집단 린치하고 당헌·당규까지 졸속 개정했다” “호가호위하며 절대반지에 눈이 돌아간 사람들”이라고 했다. 당을 향해선 “조직에 충성하는 국민의힘은 불태워 버려야 한다”고 했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승한 지 몇 달도 안 돼 여당 대표가 거친 표현을 쏟아내며 내부 투쟁에 나선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성 비위 의혹으로 당 윤리위 징계를 받은 뒤 비대위 출범으로 대표직에서 밀려났다.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징계가 이뤄진 점, 지도부 해체와 비대위 출범 과정에 논란이 적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억울했을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몸담았던 당과 대통령을 향해 화살을 마구 쏘는 것은 당대표 출신이 해선 안 될 일이다.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 감정풀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 사태는 이 전 대표의 성 비위 의혹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본인 책임도 크다. 대국민 사과가 진심이었다면 보다 정제된 말과 자중하는 태도를 보였어야 했다.

비대위 체제 후 가까스로 진정되는 듯했던 여권의 내홍이 이 대표의 폭탄 발언으로 극한 갈등과 혼란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 전 대표가 낸 비대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인용된다면 당대표가 2명이 되는 대혼돈의 상황이 온다. 경제·안보 복합 위기 속에서 책임 있는 국정 운영에 일조해야 할 사람이 감정에 치우쳐 극단적 정치투쟁에 매달리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용납되기 어렵다.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는 이런 내분이 두 달 넘게 악화되도록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번엔 대통령의 ‘내부 총질’ 문자가 공개되면서 갈등이 격화됐다.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표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감정을 풀었다면 이런 극단적 상황까진 가지 않았을 수 있다.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의 정무 기능이 사실상 정지돼 있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내부 소통이 되지 않으니 대표가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하는 막장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로 인한 국정 혼란은 결국 국민 피해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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