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내가 가장 응원하는 주인공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입력 2022. 8. 1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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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을 나열해 보겠다. 당신은 무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당신의 가족과 나라가 얼마나 가난한지. 당신이 번 돈 중 얼마를 원가족에게 송금하는지. 어떤 사람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반말로 말을 건다. 당신은 새 가족에 편입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이름을 잃는다. 당신은 낯선 기후와 낯선 음식에 적응해야 한다. 낯선 한국어에 적응하는 일에 비하면 그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짐을 푼 곳에서 당신의 모국어는 배제된다. 당신은 며느리가 되고 높은 확률로 엄마가 된다. 아이는 주로 한국어만을 배운다. 집 안에서든 집 밖에서든 당신 빼고 모두 한국어를 쓰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에 대해. 이 나라와 저 나라에 대해. 그리고 삶이라는 것에 대해. 더 잘 말해주고 싶은데 그러기가 어렵다. 주양육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건 당신의 커다란 슬픔 중 하나다. 당신은 노동한다. 집 안팎에서 장시간 고강도로 일하지만 당신이 가정의 경제권을 쥐거나 재산을 모을 확률은 희박하다. 당신은 둘 중 한 명꼴로 가정폭력을 겪는다. 폭력 뒤에 남편이 하는 말 중 하나는 이것이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당신은 이주여성이다. 이주를 결심할 때 이런 일상을 상상한 것은 아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결혼이주여성의 42.1%가 가정폭력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수치는 이주민이 아닌 여성의 가정폭력 경험보다 세 배나 많다. 국제결혼광고나 <다문화 고부열전> 따위의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당신에 관한 진실이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당신이 누구인지, 이주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진정으로 어떤 모습인지 배운 건 한 권의 책을 통해서다. 책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이주여성은 한 사람이 아니며 하나의 얼굴일 수 없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엇비슷한 모습으로 소개하고 소비해 왔다. 고분고분하거나, 어눌하지만 선하거나 지나치게 성실하거나, 아니면 도망치는 자의 모습이었다. 이들 중 대다수가 도망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구조 속에 산다. 제국주의와 가족주의와 가부장제가 뒤엉킨 그 뿌리 깊은 구조로부터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여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는 그런 이들의 목소리가 산과 논과 밭을 넘어 읍내와 도시와 국경 너머까지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책이다. 옥천신문의 기자였던 한인정 작가가 심층 취재하며 책을 썼고, 옥천에 위치한 포도밭출판사에서 펴냈다. 주인공은 옥천군이주여성협의회를 만들고 이끄는 이주여성 당사자들이다.

내가 이 책을 사랑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슬퍼서도 아니고 화가 나서도 아니고 연민이 들어서도 아니다. 나는 싸우는 이주여성들이 너무 멋있어서, 그들의 말을 받아적고 싶을 만큼 멋있어서 이 책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지만 제일 좋아하는 일화 하나만을 소개하겠다. 2022년 6월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옥천군에 사는 이주여성들이 모였다. 후보자들이 내놓은 정책 공약 중 이주여성을 위한 내용은 부재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사무실 하나 없었던 그들은 방 한편이나 깻잎하우스에 모여 자체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자신들의 권리를 공부하고 필요한 지원 목록을 작성하면서 기자회견을 준비한 것이다. 직접 마련한 기자회견장에 후보자들을 초대한 옥천의 이주여성들은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했다.

“당신들이 제시하는 ‘옥천의 밝은 미래’에 우리들의 삶은 있습니까? 우리 없이도 좋은 옥천 가능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요구는 이주민 관련 조례 제정, 이주민센터 설립, 이주민 복지정책 마련입니다. (…) 우리는 사회적 약자로서 함께 연대하며 지역의 문제를 바꿔나가는 주체로 서고자 합니다.” 이주민이 행복한 옥천을 공약한다면 우리가 당신을 지지하겠다고 그들은 선포한다. 그들의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그들을 외롭고 답답하게 했을 한국어로 말이다. 그들의 지성과 기개에 비해 후보자들의 대답은 궁색하고 모자란다. 이에 이주여성들은 반박한다. 우리 앞에서 출산율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누군가에게 소속된 존재로 취급하지 말라고. 며느리나 아내나 엄마의 역할로 축소하지 말라고. 그들은 자신을 일방적으로 가르쳤던 어제의 한국 사회와 작별을 고한다. 내일의 한국 사회에 자신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나는 안경을 벗고 울면서 이 기자회견 장면을 몇번이고 다시 읽는다. 사랑하는 드라마를 정주행하듯이. 싸우는 이주여성은 내가 두 주먹 불끈 쥐며 응원하는 주인공들이다. 그들의 연대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는 동시에 촘촘해지고 있다. 이주민의 삶이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 나라에 명징하게 떠오르는 것을 본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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