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서울 44배 ‘미래 도시’ 만드는 빈 살만, 자유 증진은 미지수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2022. 8. 15.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흡사 심시티(Simcity)를 연상시킨다. 1989년 미국의 맥시스사가 출시한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이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네옴(Neom) 신도시 이야기다. 1조달러를 들여 만드는 이 도시는 ‘새로운 미래’라는 이름 뜻처럼 마치 SF의 판타지 공간 같다. 170킬로미터에 달하는 선형 거울 장벽도시 ‘라인’(The Line)의 세부 계획은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잘 믿기지 않는다. 타당성과 재원도 의문이지만 2030년까지 과연 이 도시가 완성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허황된 사업이라 치부할 수는 없다. 빈살만 왕세자가 사활을 걸고 달려드는 야심작이기 때문이다.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왕세자는 건국 이후 처음으로 3세대 군주가 된다. 건국의 국부 압둘아지즈 국왕 별세 후, 사우디 왕실은 지난 50년간 그의 아들들 6명이 형제 계승으로 왕좌를 이었다. 세대를 갈음하지 못한 왕실은 노쇠해졌다. 드디어 국부의 손자 세대가 권력을 눈앞에 둔 것이다. 그리고 국내외에 그동안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특이한 미래 도시를 공약했다.

왕세자는 미래의 군주로서 새 비전과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지 않을 것이다. 왕위 계승자의 자리에 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터다. 갑자기 미래 권력으로 부상한 왕세자에 대한 왕실 내부의 질시는 늘 부담이었다. 안팎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특히 외교 안보 정책의 부침(浮沈)이 컸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중국·러시아와 가까워지는 행보는 파격적이지만 뭔가 불안하다. 최대 정유 시설과 리야드 근교 유전이 이란산 드론 공격으로 반파되었을 때 충격도 컸다. 예멘 내전 개입 때문에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미국의 셰일 혁명 이후 요동치는 유가의 등락을 지켜보면서 심경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새로운 미래 수입원을 찾아내야 했다.

왕실 내부를 다잡고, 대외 정책의 혼란으로 인한 비판을 넘어서기 위해 왕세자가 국가 개발 프로젝트 추진에 나선 이유다. 특히 서부에 주력하고 있다. 서북부 아카바만 근처에 위치한 네옴 신도시, 현재 지지부진한 제다 근교 킹압둘라 경제도시, 예멘 접경 아시르 주의 녹색 사막 프로젝트 등을 남북으로 이었다. 무엇보다 네옴의 위치가 눈길을 끈다. 요르단 페트라, 이스라엘 에일랏, 이집트의 샤름 알셰이크 등 인근 국가의 주요 관광 거점과 잇닿아 있다. 아브라함 협정 이후 아랍으로 파고드는 이스라엘과의 협력 포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서부의 상징성은 동부 유전 지대와 대비된다. 막대한 오일 달러가 가져다 준 사우디의 부(富)는 주로 동부에서 나왔다. 탄소중립 시대로 전환하기까지는 사우디 동부의 석유가 여전히 중요하다. 원전 개발 예정지도 동부 해안 지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부 지역 관광·문화·예술 등을 진작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왕세자의 관심은 서부의 열린 바다 홍해 연안을 축으로 하는 ‘석유 시대 이후’의 그림에 있는 듯하다.

이 모든 프로젝트는 비전 2030으로 수렴된다. 8년 후 네옴 신도시의 완공과 더불어, 엑스포 유치를 통해 자신의 통치 시대를 확고히 하려는 왕세자의 집념이 만만찮다. 2032년은 건국 100주년이다. 새로운 백년을 맞는 젊은 국왕을 상상하면서 왕세자는 일종의 기념비를 세우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왕세자의 미래는 어떨까? 낙관론과 신중론이 갈린다. 낙관론자들은 지지 계층과 그의 개혁 의지에 주목한다. 본래 왕실 내 유력자가 아니었던 왕세자는 왕실 밖 대중, 특히 젊은 세대 및 여성들과 연대했다. 그간 소외되었던 여성, 그리고 전체 인구의 70%인 30대 이하 젊은 세대는 왕세자의 개혁 프로그램을 지지하고 있다. 여성 운전 허용과 대중 콘서트 허용 등은 왕세자 개혁 의지의 한 상징이다. 새 지도자가 사우디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보인다. 그동안 두바이나 도하에 밀렸지만 이제야 사우디가 대국으로서 위신을 세울 것이라는 기대감도 섞였다.

낙관론은 한국의 기회로도 연결된다. 최근 한동안 폭등했던 유가로 사우디의 국부도 그만큼 늘어났다. 위기 타개를 위해 왕세자는 개발 속도전에 나섰다. 네옴을 중심으로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발주를 준비하고 있다. 원전 개발과 방산 협력도 적극 추진할 모양새다. 우리에겐 기회다. 사우디발 제2 중동 붐을 기대하는 소리가 들린다. 정부도 본격적으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마치 1973년 오일 쇼크로 인한 유가 급등기 산유국의 토목 건설 진출로 중동 붐을 맞았던 모습과 비슷하다.

그러나 회의론도 간과할 수 없다. 거버넌스의 취약성, 즉 왕세자가 모든 것을 혼자 주도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다. 아직은 나름 조심스럽게 운신하지만 일단 왕위에 오르면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나 시리아의 아사드 역시 집권 초기에는 온건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잔혹한 독재자로 변모했다. 일부에서는 왕세자가 ‘아라비아의 사담’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현재의 개혁 행보는 결국 권력을 잡기 위한 일시적, 도구적 계산이라 의심하는 것이다. 실제로 왕세자는 언론인 피살 사건이나 왕실 인사들 전격 검속과 호텔 억류 사건에서 보듯 때론 거칠다. 그렇다 보니 참모들이 조언하기 힘들다. 독단은 위험하고 장기적으로 정권의 위협이 된다.

현재로서는 왕세자가 어느 길을 갈지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왕족과 귀족만이 아닌 일반 국민 대중을 배려하고 경청하는 계몽 군주의 길이 왕실과 사우디의 국익과 직결되는 것이다. 공포통치와 독재의 말로(末路)가 어떻게 귀결되었는지는 역사 속에서 이미 입증되었다. ‘새로운 미래 도시 네옴’의 화려한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빈살만이 이끌어갈 ‘새로운 미래 왕국 사우디’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자유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