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노마드] 나폴레옹의 후손은 왜 런던에 살고 있을까

손진석 기자 2022. 8. 15.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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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문화·인종·국적의 원천이 다양한 ‘하이브리드 인재’가 많습니다. 정치·종교의 핍박을 피한 이주민이나 후손이 국가의 명운을 가르기도 합니다. 국경을 초월해 족적을 남기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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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보수당 연례 당원대회. 현재 영국 총리이며 당시 런던 시장이었던 보리스 존슨이 연설 도중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프랑스 총리를 지낸) 알랭 쥐페 보르도 시장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9번째로 큰 도시인 보르도에서 23만여명을 대표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런던에는 25만명의 프랑스인이 있고 그래서 나는 지구상에서 6번째로 큰 프랑스 도시의 시장이라고 말했습니다.”

◇런던은 프랑스의 6번째 도시?

도발적이었던 존슨의 ‘런던이 프랑스의 6번째 도시’ 발언은 많은 프랑스인들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하지만 이건 프랑스에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숫자가 달라지기 때문에 정밀한 통계는 없습니다만, 런던과 런던 외곽을 통칭하는 ‘그레이터 런던’에는 수십만명의 프랑스인들이 살고 있다고 양국 언론들이 이야기합니다.

BBC에 따르면, 런던 주재 프랑스 영사관의 영사 업무 대상자가 약 30만명입니다. 일간 르몽드는 ‘런던이 프랑스의 6번째 도시’라는 점에 대해 팩트 체크를 한 적이 있는데요. 많은 프랑스인들이 런던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레이터 런던의 범위가 보통의 프랑스 도시들에 비해 훨씬 넓어서 ‘런던이 프랑스의 몇번째 도시인지’는 명확한 비교가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런던이 프랑스의 6번째 도시라는 건 보리스 존슨이 맨 처음 이야기한 게 아닙니다. 2008년 무렵부터 프랑스 언론이 거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학력과 소득 수준이 높은 젊은이들이 해외로 빠져 나가고, 특히 런던을 선호하는 현상을 우려하면서 꺼낸 포인트죠. 오늘은 프랑스인들이 대체 왜 런던에 그렇게 많이들 몰려가서 살고 있는지를 둘러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양국의 차이를 비롯해 유럽의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야깃거리입니다.

◇런던에 사는 36세 나폴레옹 가문 대표

런던의 프랑스인 중 가장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사람은 올해 36세의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이라는 사나이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장-크리스토프는 프랑스의 국가적 영웅으로서 원래 이름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이며, 후일 나폴레옹 1세로 추서된 나폴레옹 황제(1769~1821)의 후손입니다.

나폴레옹 가문 대표인 장-크리스트프 나폴레옹.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재학 시절이다./페이스북

장-크리스토프는 단순히 나폴레옹이라는 성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1997년 이후 나폴레옹 가문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 왕자’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하죠. 프랑스의 자존심인 국가적 영웅의 후손이 프랑스를 떠나 런던에 살고 있다는 건 상당한 아이러니죠. 게다가 장-크리스토프가 런던에 거주하는 건 그가 성인이 된 이후 스스로 선택한 결과입니다. 일부 프랑스인들은 이 사실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나폴레옹 황제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장-크리스토프는 나폴레옹 황제의 동생 제롬의 5대손입니다. 그는 1986년 지중해를 끼고 있는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생라파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1926년부터 1997년까지 프랑스 황실을 대표한 루이 나폴레옹입니다. 물론 나폴레옹 황실은 상징적인 의미로만 남아 있을뿐이긴 합니다.

루이 나폴레옹은 1997년 별세하면서 황실을 이어받을 가문 대표로 손자인 장-크리스토프를 지명했습니다. 장-크리스토프가 3살 때 그의 아버지 샤를 나폴레옹은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루이 나폴레옹의 뜻을 거역하고 재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문을 잇는 사람이 바로 할아버지에서 손자로 넘어가게 됐죠. 장-크리스토프에게는 누나가 있었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가부장적 전통에 의해 집안 대표에서는 제외됐습니다. 장-크리스토프는 같은 세대(한국 개념으로는 항렬) 중에 보나파르트라는 성을 갖고 태어난 유일한 남성이라고 합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2013년 런던 시장 시절 "런던은 프랑스의 6번째 도시"라고 공개적으로 말해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AP 연합뉴스

◇하버드대 MBA 따고 런던의 금융회사에서 일해

장-크리스토프는 파리 근교의 부촌인 뇌이쉬르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곳에 있는 사립학교인 생도미니크에서 중·고교 과정을 마쳤습니다. 프레파(프랑스식 고등교육기관인 그랑제콜 준비 과정)를 마치고 2006년 프랑스의 경영학 분야에서 가장 명문으로 인정받는 그랑제콜인 HEC(고등상업학교)에 들어갑니다.

프랑스에서는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로 인시아드(INSEAD)가 명문으로 해외에는 알려져 있습니다. 대체로 한국에서도 인시아드가 HEC보다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인시아드는 전형적인 미국식 MBA스쿨이고, HEC는 프랑스식 그랑제콜 과정과 MBA 과정을 따로 운영해서 학제가 다릅니다. 프랑스인들 사이에서는 인시아드보다는 HEC의 인지도가 더 높습니다.

HEC를 졸업한 장-크리스토프는 프랑스에서 직장 생활을 하지 않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월가의 문을 두드립니다. 학업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프랑스를 떠난 겁니다. 애초에 자본시장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월가의 모건스탠리에서 애널리스트로서 2년간 첫 직장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2013년 런던으로 가서 미국계 사모펀드(PEF) 어드벤트인터내셔널의 런던사무소에서 일했습니다.

2019년 결혼한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과 그의 아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후손인 여성이다./조선일보 DB

2015년 장-크리스토프는 런던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에서 MBA를 땁니다. 그리고 나서는 역시나 프랑스로 돌아오지 않고 다시 런던행을 택합니다. 세계 3대 PEF의 하나인 블랙스톤의 영국 법인에 취업하게 된 것이죠. 이쯤 되면 장-크리스토프가 의도적으로 프랑스를 피하고 영미권 생활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MBA를 딴 2017년 이후 런던의 블랙스톤에서 쭉 근무한 장-크리스토프는 올해 4월 ‘레온 캐피탈’이라는 PEF를 런던에서 창업했습니다. 프랑스에는 돌아올 생각이 없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죠.

◇나폴레옹이 묻힌 앵발리드에서 성대한 결혼식

장-크리스토프는 프랑스를 떠난 지 11년이 됐습니다. 나폴레옹 가문의 대표로서 파리를 등지고 산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뒤통수가 따가워서 그런지 말로는 프랑스에 대한 애정을 표시합니다. 그는 자주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프랑스를 위해 헌신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고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2019년 결혼했습니다. 상대 여성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유럽에서 상당한 뉴스가 됐습니다. 나폴레옹 가문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결합은 나폴레옹 황제가 조제핀과 이혼하고 1810년 오스트리아 왕 프란츠 2세의 딸 마리 루이즈와 재혼한 이후 209년 만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죠.

장-크리스토프는 어린 시절 자랐던 파리 근교의 뇌이쉬르센 시청에서 혼인 신고를 했습니다. 프랑스 국적은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결혼식은 조상인 나폴레옹 황제의 유해가 안치된 파리의 명소 ‘앵발리드(주로 전쟁기념관으로 쓰입니다)’에서 성대하게 올렸습니다. 하지만 신혼 살림은 역시나 런던에 차렸습니다.

파리 시내 앵발리드 안에 있는 나폴레옹 황제의 무덤/나폴레옹재단

영국의 일간 더타임스는 “(나폴레옹 가문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결합으로) 유럽을 호령하던 프랑스의 전성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며 “프랑스에는 장-크리스토프에게 영국 왕실 사람들에 준하는 리더 역할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결혼식 당시 장-크리스토프는 일간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프랑스를 위해 헌신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 EU 통합의 가치를 지켜 하나 된 유럽을 지향한다”고 했다. 나폴레옹이 무력으로 하나 된 유럽을 꿈꿨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유럽 통합에 기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세금·규제 많고 일처리 느린 프랑스에 신물

그렇다면 왜 장-크리스토프를 비롯해 20만명이 넘는 프랑스인들은 런던에서 살고 있을까요. 런던은 파리에 비해 갖가지 규제가 적어 보다 자유로운 곳입니다. 파리가 유럽 본토 특유의 사회주의 기류가 남아 있는 반면 앵글로 색슨의 전통을 유지하는 런던은 자본에 대한 통제가 훨씬 적은 곳이죠.

대표적으로 영국은 외국인 부자들을 끌어당기기 위해 1799년부터 ‘송금주의 과세제(non-dom)’라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런던에 장기간 체류하는 외국인이 매년 일정한 액수의 소득세를 내면 해외에서 번 돈을 영국으로 들여오지 않는 한 세금을 더 이상 물리지 않는 제도죠. 러시아 재벌을 비롯해 많은 외국인 ‘큰손’들이 몰려들게 한 유인책입니다. 프랑인 부자들도 마찬가지죠.

런던이 외국인 갑부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세계적인 금융 도시로 자리매김을 한 반면, 파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갑갑한 프랑스식 관료주의, 자본을 터부시하는 일각의 사회주의 전통, 느려터진 행정 처리, 높은 소득세율 등에 환멸을 느낀 프랑스 엘리트 청년들이 고국을 꽤 등졌습니다.

특히, 금융이나 자본시장 분야의 규모나 여건은 런던과 파리가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파리는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국제 공통어인 영어를 쓰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라는 것도 두 도시의 국제 경쟁력을 가르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런던의 부촌에 있는 ‘샤를 드골’이라는 프랑스 학교

파리에 비해 런던은 훨씬 주거 비용이 비싼데요. 그 차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있는 프랑스인들이 런던으로 가죠. 런던에 사는 프랑스인이라면 대체로 상류층이라고 봐야 합니다. 런던의 부촌(富村) 사우스켄싱턴에는 ‘샤를 드골’이라는 프랑스 학교가 있습니다. 런던에 사는 부유한 프랑스인들이 자식들을 이 학교에 보냅니다.

런던의 프랑스학교인 샤를드골학교./르피가로

저는 2019년 여름 유럽 최대 자산운용사인 아문디의 로랑 기예 런던법인장을 만난 적 있습니다. HEC 졸업생인 기예씨는 프랑스인이고, 그의 며느리는 한국계 프랑스 교포 2세입니다. 기예씨는 “금융에서 파리가 런던을 따라잡으려면 갈 길이 멀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금은 파리에 돌아와서 아문디의 해외부문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교민의 수재 아들도 런던에서 산다

런던과 파리가 상당히 가깝다는 것도 ‘런던의 프랑스인’이 많은 배경으로 작용합니다. 만약 런던이 뉴욕처럼 파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주에 앞서 고민을 많이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런던과 파리는 서로 접근하기 쉽습니다. 고속열차인 유로스타를 타면 두 도시를 시내에서 시내로 2시간 30분이면 이동합니다.

그래서 주중에 런던에서 일하고 파리에서 주말 생활을 즐기는 이들도 꽤 있습니다. 그 반대의 생활 패턴을 가진 이들도 있습니다. 월요일 아침과 금요일 오후에 유로스타 예약이 많이 밀리죠.

런던과 파리를 연결하는 고속열차 유로스타. 2시간 30분에 두 도시를 이동할 수 있게 해준다./로이터 연합뉴스

프랑스 교민 사회에서는 나상원 전 한인회장의 두 아들이 수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두 아들은 프랑스에서 쭉 교육을 받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런던입니다. 장남 나호연(37)씨는 프랑스 3대 상경계 그랑제콜의 하나인 ESCP를 나와 런던의 KPMG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2020년부터는 글로벌 경영컨설팅기업 알바레즈앤드마살의 전무로 일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 나호영(35)씨는 프랑스 이공계 최고의 그랑제콜인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나와 역시 런던에서 살고 있습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를 거쳐 PEF인 타워브룩캐피털에서 투자총괄 임원으로 재직중입니다.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대학까지 마친 나호연·호영씨 형제가 런던에 넘어가 일하는 이유도 금융 시장이 발달하고 규제가 적어 기회가 더 많은 곳을 선택한 결과라고 아버지 나상원씨는 이야기합니다.

◇“런던은 유럽과 미국의 장점을 모두 갖췄다”

저는 2019년 9월 장-크리스토프처럼 프랑스인이지만 미국 유학을 마친 뒤 런던에 사는 젊은 사업가를 에펠탑이 내려다보이는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한 적 있습니다. 샤를-앙리 퓌오라는 35세 사나이입니다. 그는 e커머스 분야에서 여러 차례 인수 및 합병(M&A)을 성사시켜 젊은 나이에 큰 돈을 벌었습니다. 페르팀이라는 투자회사를 런던과 파리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를 만났을 때 주고 받았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살아온 이력을 이야기해달라

“어릴 적 파리에서 쭉 자랐다.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갔다. 좀 더 넓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꿨다. 나는 공부를 꽤 했고 프랑스에서도 성공할만한 바탕이 있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으로 그랑제콜을 가는 코스를 지양하고 싶었다. 부모도 적극 응원해줬다. 뉴욕에 가서 컬럼비아대 학사를 마쳤고, 같은 학교에서 MBA를 땄다. 월가의 금융회사에 취업해 꽤 괜찮은 연봉을 받았다. 그리고 유럽으로 돌아올 때 파리 대신 런던을 택해 창업을 했다. 파리에도 사무실을 두고 있다.”

런던에 사는 프랑스인 젊은 사업가 샤를 앙리 퓌오./손진석 기자

-왜 파리로 오지 않고 런던을 택했나

“나한테 있어서 미국은 자유로운 곳이고 유럽은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런던은 유럽과 미국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다. 내가 가장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런던이다. 런던에서 이방인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곳도 유럽의 일부다. 런던에는 프랑스인 커뮤니티가 잘 형성돼 있다. 저녁에 친구들과 불어로 떠들면서 맥주를 마실 수 있고, 주말에 역시 동네에서 프랑스 친구들과 브런치를 즐긴다.”

-경제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파리가 런던보다 덜 매력적인가

“그렇다. 나는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프랑스는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앞서갈 수 없다. 주식시장, PEF, 투자은행 부문과 관련해서는 런던과 파리는 비교할 수 없다. 프랑스는 정체된 사회 분위기가 매력을 반감시킨다.”

-프랑스인으로서 런던에 사는 재미가 어떤 것인가

“1년을 쪼개보면 5개월은 런던, 3개월은 파리, 나머지 4개월은 출장이나 휴가로 세계 각지에 머무른다. 파리에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 나는 유로스타를 타고 있을 때가 많다. 파리 근교의 파티에 초대받으면 비행기를 타고 근처 공항으로 바로 이동할 때도 있다. 사업을 위해서나 여가 생활을 위해 내가 원하는 걸 가장 편리하게 이용하거나 움직일 수 있는 곳이 런던이다. 가끔 친구들이 부르면 바로 뉴욕으로 날아간다.”

-앞으로도 계속 런던에 거주할 생각인가

“내 아내도 프랑스인이다. 아내는 나만큼 영어에 능숙하지 않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굳이 파리로 돌아와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런던의 자유스러움이 좋다. 곧 아이가 태어나는데, 런던의 프랑스 학교에 보내고 대학도 영국이나 미국으로 보낼 생각이다.”

◇브렉시트 이후 런던의 위상 주춤

그러나 세상사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습니다. 런던의 위상이 예전만큼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가 가결되고, 그에 따라 2020년 2월부터 완전한 브렉시트가 이뤄지면서 영국의 가치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스스로 유럽 본토로부터 떨어져 나간 영국은 독자적인 외교·경제 정책을 가동하고 있지만 국가 경쟁력이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런던은 실제로 브렉시트에 따른 타격이 없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일례로 2019년 런던에 있던 유럽의약청(EMA) 본부는 브렉시트 때문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옮겼습니다. EMA에 근무하는 900여명의 고급 인력이 암스테르담으로 이사갔을뿐 아니라, 매년 전 세계 의약 전문가 3만명이 EMA를 찾아오는 경제적 효과를 몽땅 네덜란드에 뺏겼습니다. 이외에도 적지 않은 글로벌 기업들이 런던의 인력의 일부를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등으로 재배치시킨 사례가 많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전한 유럽의약청(EMA) 본부. 원래 런던에 있었지만 브렉시트로 2019년 암스테르담으로 이전했다./EMA

◇마크롱 개혁 효과로 파리의 위상 높아져

런던의 위상이 다소 위축된 반면 파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조금씩 개혁을 해본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런던이 프랑스의 6번째 도시라는 말이 안 나오게 하겠다”고 다짐했죠.

마크롱이 창업을 독려하는 정책을 펴면서 프랑스에서는 스타트업들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창업과 관련한 행정 절차도 예전보다는 빨라졌구요. 파리의 젊은이들 중에서는 영어를 편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취임 초기인 2017년 6월 파리 시내에 있는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캠퍼스인 '스타시옹 에프(Station F)'를 찾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20 minutes

마크롱은 직접 투자 유치를 위해 발벗고 뛰었습니다. 이를테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파리에 대체투자 본부를 두기로 결정했는데요. 이런 의사 결정 과정에서 마크롱이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을 엘리제궁으로 초청해 공을 들인 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글·페이스북·삼성전자는 AI(인공지능) 연구센터를 파리에서 가동 중이거나 설립할 예정인데요. 이 회사들의 경영진이나 고위 임원을 마크롱이 직접 만나 투자를 요청했습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마크롱은 2018년 3월 손영권 당시 최고전략책임자(CSO·사장)를 엘리제궁에서 일대일 면담했습니다.

마크롱이 부유세를 대폭 줄이면서 스위스 등 인근 국가로 이주했던 프랑스 부호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는 것도 파리에 생기가 도는 요인입니다. 2018년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브렉시트로) 파리의 매력이 더 커질 것으로 내다보는 중동 부자들이 개선문, 에펠탑과 가까운 파리 16구의 고급 주택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2018년 3월 엘리제궁에서 손영권 당시 삼성전자 최고전략책임자(사장)와 면담하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렉스프레스

◇런던과 파리 용호상박 경쟁 계속될 듯

도시의 위상을 놓고 힘겨루기 중인 런던과 파리 사이의 판세를 보면 오랫동안 런던이 앞섰다가 요즘은 파리가 많이 따라잡았고, 미래는 어떻게 될 지 쉽게 어느 한쪽에 베팅하기가 쉽지 않다고 봅니다.

2018년 글로벌 회계법인 언스트영이 502개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투자 매력지수 조사’에서 외국인이 투자하기에 가장 좋은 유럽 도시로 응답자의 37%가 파리를 꼽아 34%가 지목한 런던을 제쳤습니다. 2003년부터 실시된 이 조사에서 파리와 런던의 선호도가 역전한 것은 이때가 처음입니다. 2014년만 하더라도 런던이 54%, 파리가 29%였지만 순식간에 뒤집혔죠.

그런데 올해 언스트영의 같은 조사에서는 다시 런던이 34%로 1위이고 파리는 28%로 2위였습니다. 런던이 다시 앞서 가지만 파리가 프랑크푸르트(21%), 브뤼셀(15%), 암스테르담(12%)보다 훨씬 매력도가 높게 나온 건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대목입니다.

◇수퍼리치 숫자로 파리가 런던을 추월

부자들도 과거보다는 파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습니다. 글로벌 리서치회사 ‘웰스―X’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3000만달러(약 390억원) 이상의 순자산을 가진 수퍼리치가 파리에 3950명 사는 것으로 조사돼 3830명인 런던보다 많았습니다. 이 조사가 실시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부자가 제일 많은 유럽 도시’가 런던에서 파리로 바뀐 것입니다.

지난해 나온 ‘웰스-X’의 2020년 기준 조사에서는 런던이 굴욕을 느껴야 했습니다. 수퍼리치 숫자로 파리가 3765명으로 유럽 1위, 세계 7위에 올랐습니다. 런던은 세계 12위로 처졌습니다. 웰스-X는 런던의 수퍼리치 숫자를 밝히지 않았지만 10위인 미국 댈러스(3120명)보다 적다는 게 분명합니다. 웰스-X는 “팬데믹 여파로 수퍼 리치가 전년도 대비 파리가 13.7% 줄었지만 런던은 그보다 더 많은 17%가 감소했다”며 “런던은 브렉시트와 연계된 평판의 손상을 겪고 있다”고 했습니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 '웰스-X'가 2020년 기준으로 발표한 도시 별 재산 3000만달러 이상인 수퍼리치 숫자.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파리가 7위로 톱10에 포함됐다. 런던은 12위로 처졌다./자료=웰스-X

그렇다고 하더라도 런던의 경쟁력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런던은 화려한 금융 중심 도시로 200년 이상 기반을 닦았습니다. 또한 파리와 달리 영어를 쓰는 도시라는 장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프랑스가 워낙 굼뜬 나라여서 근본적으로 역동적인 나라로 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프랑스는 거대한 관료 체제인데요. 프랑스의 공무원은 최근 25년 사이에만 100만명이 추가돼 모두 560만명에 달합니다. 전체 인구 6740만명의 8.3%에 이릅니다. 우리나라가 인구 5160만명에 공공 분야 종사자가 162만명(공무원 120만명+공공기관 종사자 42만명) 정도인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많습니다.

◇프랑스에 넘어와 사는 영국인도 15만명

영국에 가서 사는 프랑스인들이 있듯이 반대로 프랑스에 와서 사는 영국인들도 있습니다. 프랑스 내 영국인은 약 15만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파리를 중심으로 직장 일로 넘어와서 사는 영국인들이 꽤 있습니다.

또한 은퇴한 영국 고령자 중에서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나 브르타뉴 지방에 와서 사는 사람들이 제법 있죠. 날씨가 영국보다 훨씬 좋기 때문에 영국과 가까운 프랑스 지역에 넘어와서 영국의 연금을 받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고령자들은 의료 시스템이 프랑스가 영국보다는 비교 우위라는 점을 고려하기도 합니다.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에 의존하는 영국의 NHS(국가보건서비스)보다는 별도의 독립된 건강보험기금이 가동되는 프랑스 공공 의료 시스템이 좀 더 낫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영국에 사는 프랑스인 중에서는 몸이 아플 때 프랑스로 넘어와서 치료받고 다시 영국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제법 있습니다.

지금까지 ‘런던에 사는 프랑스인’ 이야기를 들려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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