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펠로시가 떠난 후
중국의 대만 보복 현실화
반도체 공급망·사드 등
美中 사이서 실리 찾아야
중국은 즉각 대화와 협력 채널 단절을 선언하며 미국에 반격했다. 양국 간의 국방부 실무회담, 해상 군사안보협의체 회의를 취소하고 기후변화 협상, 다국적 범죄·마약 퇴치 협력도 중단했다. 펠로시 의장과 직계친족은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후폭풍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앞으로 미·중 양국의 경쟁 속도와 강도는 높아질 것이고, 양국 관계가 영원히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이 경고한 대로 불에 타 죽거나,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는 쪽은 미국이 아닐 공산이 크다. 중국의 압력은 미국보다,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 낀 대만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만은 이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중국은 대만을 봉쇄하는 군사훈련에 나섰고 대만 상공에는 미사일까지 날아들었다. 대만을 둘러싼 실전합동훈련은 예정 기간을 넘겼고, 봉쇄훈련이 상시화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대만산 과일과 수산물, 가공식품 수입을 잠정 중단하고 대만에 수출하던 천연 모래도 끊겠다고 선언했다. 천연 모래에서는 반도체 원료가 추출된다.
하지만 중국은 모래를 제외하고는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부품을 제재 대상에 올리지 않았다. 대만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섣불리 제재에 나서는 것은 스스로에게 칼날을 겨누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결국 중국의 폭주를 막은 것은 TSMC로 대표되는 대만 반도체 산업인 셈이다.
'TSMC의 나라'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반도체는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갈등의 핵심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 대만을 참여시켜 반도체 공급망 동맹을 만든다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고, 중국은 한국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어 미·중 갈등의 불똥은 이미 우리에게도 튄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에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보조금을 지급하되, 해당 기업은 10년간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반도체과학법에도 서명했다. 미·중 디커플링의 상징인 이 법안은 미국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동시에 중국에도 공장을 가진 우리 기업들에 적지 않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도 한국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
대만을 제재하면서도 반도체를 포함시키지 않았듯 한국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중국이 직접적인 보복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를 직접 겨냥하진 않더라도 다른 형태의 보복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의 기술력, 장비, 특허와 인프라 없이는 반도체를 개발할 수 없고, 한국 반도체 매출의 60%를 중국이 차지하는 현실에서 어느 한쪽도 배척할 수 없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동맹에 참여하면서도, 중국과 협력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남았다. 10월 당대회를 앞둔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미국과의 관계도 훼손하지 않고, 경제적 실리를 취해야 하는 고차 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24일은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는 날이기도 하다.
펠로시는 대만과 한국 땅을 떠났지만, 외교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은아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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