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무역수지 적자는 위기 징후일까

2022. 8. 1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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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무역수지 적자 전환은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 속에
내수 안정 지향한 결과
국가경쟁력 지표 오해나
위기 징후로 단정 섣불러
무역수지가 4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7월까지의 적자 규모 150억달러는 '사상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안 그래도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복합 위기'라는 용어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무역수지의 적자 전환은 뭔가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위기감을 증폭시킨다. 정말 심각한 상황일까?

'무역수지' 적자는 관세청이 수출입 장부를 정리한 결과, 수출한 금액보다 수입한 금액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세청은 수출 금액에 운임과 보험료를 포함하지 않는 반면 수입 금액에는 이를 포함시키고 있어 수입 금액을 상대적으로 과대 계상한다. 한 달 정도 시차가 있지만 한국은행은 수출입 금액 모두에서 운임과 보험료를 제외한 '상품수지'를 발표하는데, 이 통계에 의하면 한국 경제는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매월 흑자를 지속하고 있다. 굳이 통계 집계 방식까지 설명한 이유는, 적자 여부 그 자체에 지나치게 매몰될 필요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1달러라도 흑자를 내면 괜찮은 경제가 1달러의 적자로 반전된다고 갑자기 큰 문제에 봉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국제수지에 민감한 이유를 헤아려볼 수는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독립 이후 반세기 동안 국제수지 적자 및 외채 위기에 시달려 왔으며, 마침내 1997년에는 외환이 고갈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위기 이후 20여 년간 꾸준히 경상수지 흑자를 축적한 이제는, 한국 경제가 국가적 외채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무역수지'가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한 금년 상반기에도 서비스수지를 포함한 경상수지는 (상반기) 국내총생산(GDP)의 2.5∼3.0%인 250억달러 내외의 적지 않은 흑자를 유지하고 있어 외환 수급상 애로를 우려할 상황도 아니다.

무역수지의 적자 반전을 걱정하는 또 하나의 배경은 무역수지가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함축적 지표라는 인식이다. 즉, 무역수지의 축소는 한국 수출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는 우려다. 그러나 실제 무역수지의 단기 등락은 수출보다 수입에 의해 좌우되었던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단적인 예로 한국 역사상 GDP 대비 가장 큰 흑자를 기록했던 해는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이다. 상품 수출이 4% 감소했으나, 내수가 폭락하면서 수입이 무려 37%나 급감한 결과다. 작금의 무역수지 축소도 대부분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수입 급증에 기인한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 대비 60% 이상 급등한 유가만으로도 금년 상반기 무역수지 감소의 75%에 해당하는 210억달러가 설명된다.

무역수지나 경상수지는 국가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다. 국제 수지는 수출입의 차이로 집계되지만, 그 진정한 함의는 나라 전체의 소득과 내수(=소비+투자)의 격차를 나타내는 지표라는 점을 이해하는 데에서 찾아진다. 가정경제로 치자면 소득보다 지출이 적을 경우가 흑자, 반대의 경우가 적자다. 평소에 흑자를 내던 가정이 갑작스레 발생한 홍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교육비나 식료품비 지출을 급격히 줄이는 대신 흑자 규모를 축소시키는 것이 이상한 선택은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통제권 밖에 있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때, 무역수지 흑자를 유지하기 위해 내수를 위축시키는 것보다는 무역수지가 충격을 흡수해 내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국내 고용 등 여러 차원에서 바람직한 선택일 수 있다. 수십 년간 누적된 흑자는 우리에게 그런 선택의 여지를 확보해 주고 있는 것이다.

물가 상승, 가계부채, 공급망 교란 등 난제가 산적해 있는 현 상황에서, 정책 대응의 우선순위를 적절히 설정하기 위해서는 관련 지표들의 복합적 의미를 잘 챙겨볼 필요가 있다.

[조동철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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