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83] 병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2022. 8. 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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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제 나라를 부끄러워하는 것.

지나간 사랑을 한탄하는 것.

부정하기를 너무 좋아하는 것.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술잔 들고 술 깬 후의

슬픔을 미리 생각하는 것.

-사토 하루오(1892~1964)

(유정 옮김)

그림=이철원

어떤 일본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 정서가 비슷해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시인들과는 다른 마음의 결,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쓸쓸함이 마음 바닥을 건드린다. 패배한 자의 슬픔이라고 할까? 동아시아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개인의 좌절감. 제 나라를 부끄러워하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부정하기를 좋아하나 현실을 바꿀 힘은 없고, 지나간 사랑을 한탄하는…그러나 하루오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쟁취한 사람이다.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아내를 연모해 일본 문단을 시끄럽게 했고 기어이 그녀와 결혼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사토 하루오의 ‘병’에 나처럼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 왜 병일까?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를 사랑하는 서구 사회에서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술잔을 들고 술 깬 후의 슬픔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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