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어디에 보관? '원전 확대' 외치는 윤 정부의 숙제
원전 가동 40년, 사용후핵연료 이미 포화상태
지난 6월23일 국민의힘·원자력계 공청회
"윤 정부 원전 이용 확대, 포화시점 빨라져"
"폐기물 저장만한다는 전제 필요" 우려도
이미 9차례나 실패..공론화 '중립성·독립성' 필수
지난 6월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는 국민의힘 김영식·하태경 의원과 원자력학계·업계 관계자들이 모였다. 김영식 의원이 주최하고 국회미래정책연구회가 주관하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특별법안 공청회’가 열린 것이다. 친원전 그룹은 원전 가동 이후 생기는 물질을 ‘핵연료’라고 하지만, 반원전 그룹에서는 ‘핵폐기물’이라고 표현한다. 정부는 ‘사용후핵연료’로 부르고 있다.
윤설열 정부가 원전 중심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사용후핵연료는 논란의 중심에 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10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세미나실은 꽉 찼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원전을 둘러싼 논란 중 가장 ‘뜨거운 감자’로 꼽힌다.
올해 상반기 프랑스 지하처분연구시설 등을 둘러보고 온 김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원전 확대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978년 원전 가동 이후 40년 이상 누적되어 온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이다. 한국은 현재까지 사용후핵연료 정책이 미확정 상태로 임시저장만 하고 있는데 이제는 최종 정책 결정을 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 2031년 한빛 원전부터 임시저장시설 포화
현재 원전을 가동하는 나라는 총 31개국이다. 이 가운데 중간저장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나라가 22개 나라이고, 사용후핵연료 처분에 대한 명확한 관리정책을 수립한 나라도 22개국이다. 이들 나라 중 일부는 겹친다.
원전 24기를 가동 중인 한국은 폐기물을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에 그냥 두고 있다. 지난해 말 문재인 정부는 기존 원전에 사용후핵연료를 계속 임시저장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했다. 그러나 2031년 이후 순차적으로 저장시설은 포화되기 때문에 이 역시 미봉책이었다.
문제는 폐기물 중 알파선 방출 핵종이 g당 4000Bq(베크렐) 이상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도 임시저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와 관련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국무총리 산하 전담조직의 신설’을 국정과제로 설정해두고 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문주현 단국대 교수(에너지공학과)는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분석 등을 바탕으로 “2021년 3분기 기준 고리·한빛(2031년), 한울(2032년), 신월성(2044년) 원전의 포화시기가 다가오고 있고 윤 정부가 원전 이용량을 확대할 경우 포화시점도 2~3년 앞당겨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토론에서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할 부지 확보가 최우선 과제라는 주장이 나왔다. 윤종일 카이스트 교수 ( 원자력·양자공학과 ) 는 “최종처분장 부지 확보가 최우선 과제인 만큼 이를 해결하는 특별법 마련이 필요하다”며 “저장시설 확보 시기는 처분부지 확보·처분장 운영 시점과 연계해 일정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 다. 또 “유치 지역 주민 등과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부지 논의에 앞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지 않고 폐기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구정회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주기환경연구소장은 “아무리 급해도 부지를 구해서 직접 처분만 해야 하는 게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특별법을 제정하려면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없이) 폐기가 된 것을 전제로 한다는 문구가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이재학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고준위추진단장도 “일본은 사용후핵연료 처리와 방사성폐기물 처분을 분리해 별도의 법으로 관리하고 있다. 프랑스도 1991년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을 통해 폐기물 관리만을 별도로 법을 제정해 처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무기 생산 등으로 이용될 수 있는 재처리하는 방식의 폐기물 처리는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독일·프랑스는 논의 과정도 제도화, 한국은?
윤석열 정부도 폐기물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앞서 우선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고준위방사능폐기물 부지(방폐장) 선정 역사는 짧지 않다. 1986년 이후 굴업도를 포함해 9차례나 방폐장 건설 논의에 실패했고 그때마다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남겼다. 박근혜·문재인 정부가 각각 공론화위원회를 열어 답을 찾으려 했지만, 공론화 과정의 독립성·중립성 논란 등으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9일 국회입법조사처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공론화의 쟁점과 향후 과제’ 보고서를 통해 “공론화 단계별 진행 절차를 모두 입법화하고 있는 프랑스나 독일 사례를 활용해 공론화 활동 내용과 절차, 시한 등 과정 전반을 제도화하고 법제화해 공론화의 권위를 회복하고 실효성있는 공론화가 개최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은 ‘방사성 폐기물 관리법’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공론화위원 위촉권을 갖고 있어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위원회를 피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독일의 경우 시민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독립된 공익적 전문가와 시민 대표들로 구성된 국가시민사회위원회(NBG)를 법적 조직으로 설립해 선정 과정 전주기를 감시하고 정부에 의견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는 국가 공공토론위원회(CNPD) 위원 총 25명을 대통령 10명, 총리 10명, 상·하원장 2명, 국참사원 1명, 대법원 1명, 회계감사원 1명 등 각기 다른 국가기관에서 지명한다. 또한 위원회를 독립행정청으로 승격시켜 독립적 입지를 보장하고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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