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심도 터널이 대도시 구할까
11년 전 7곳 계획…1곳 설치
예산 소모 커 과잉대응 논쟁
건물 늘고 기상 변동성 커져
재개발 때도 치수 고려하고
도쿄처럼 지하 활용 필요성
지난 8~9일 서울에 이틀간 524㎜가 내린 폭우는 분명 이례적이지만, 빈번해진 현상이기도 하다. 기후위기로 발생하게 될 재난의 크기에 대한 경고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존재했다. 대심도 빗물저장시설, 대심도 배수터널은 심각해진 재난을 겪을 때마다 등장했던 대안이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5년 내 강남역·도림천·광화문 일대에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이 건설된다. 시간당 110㎜ 폭우를 감당할 규모인 강남역은 3500억원, 100㎜ 폭우에 대비하는 도림천은 3000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간다.
이들 지역은 상습 침수 위험 지역으로 2011년에도 지하 30~40m 깊이의 대심도 배수터널이 논의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신월·신대방역(도림천)·강남역·사당역·삼각지역·길동과 광화문 등 7곳에서 한강의 본류 혹은 지류까지 이어지는 지하 빗물 터널 건설을 계획했지만 실제 실행된 곳은 신월뿐이다. 물난리 직후에는 기후변화에 대비해 ‘치수를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로 대책이 마련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토목사업’으로 ‘과잉대응’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서울은 1962년 전체 면적의 7.8% 수준이던 불투수층이 2010년 47.7%, 2015년 49%까지 증가했다. 도시화로 아스팔트와 건축물이 빼곡하게 들어선 도심에서 물길을 찾지 못한 빗물이 침수를 유발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여기에 기상 변동성은 갈수록 커졌다. 비의 양은 늘어나고 빗물이 흐를 공간은 줄어 집중호우는 때마다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을 불렀다.
대형 토목공사보다는 녹화작업 등을 통해 물이 흡수되지 못하는 불투수층을 없애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최근 강수는 이런 수준으로 대응할 수 없는 ‘재해’로 악화됐다. 최근 재난의 강도는 강남 등 고도로 도시화된 곳에서 더 거세다는 특징도 있다. 이의훈 충북대 토목공학부 교수는 “배수시스템 확대 등을 이야기하면 ‘폭우가 그만큼 자주 오는지’를 되묻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배수능력 확보에 집중하지 않는 사이 도시화 면적이 큰 강남의 부하가 가중됐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에 맞선 대도시의 물순환은 치수·방재를 비롯한 도시 전반의 재설계가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재개발과 건축 등 개발이 이뤄질 때부터 빗물 경로를 고려해 토지 이용 계획을 세우고, 도로과 공원 등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 사업에서 투수성을 높이는 마감, 빗물 저장시설, 옥상녹화 등을 적용하도록 인센티브로 유도할 수도 있다.
김이형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개발 사업은 불투수 면적을 넓힌다”며 “치수 등에 영향이 적은 설계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가 광화문 침수 이후 물순환회복 및 저영향개발 기본 조례도 만들었지만, 법적 근거는 없어 권고사항에 그친다”며 “고층 건물과 지하공간 등이 확대되는 환경에 맞는 방재대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극한 날씨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는 서울을 비롯한 모든 대도시의 숙명이다. 지상에 공간 확보가 어려운 환경이 대심도 지하수방 혹은 지하하천 시설을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지하공간을 개발하는 데 대한 안전 문제, 공사 예산·기간에 대한 압박이 크지만 도시 침수를 막기 위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도쿄 인근 사이타마시에서 가스카베시까지 이어지는 16번 국도 지하 50m 깊이에 지름 10.6m 크기의 ‘수도권외곽방수로’를 2006년 완성했다. 또 도쿄 도심 수해를 막기 위해 지하 43m 지점에 지름이 12.5m, 길이 4.5㎞ 규모의 거대한 터널 형태의 ‘간다천·환상7호선 지하조절지’를 건설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클랑강 범람 피해를 막기 위한 대심도 ‘SMART 터널’은 홍수조절 기능과 교통체증도 해결하기 위한 도로 기능이 결합된 총 12.7㎞ 길이의 복합 터널이다.
이의훈 교수는 “대심도 빗물터널뿐 아니라 도심 주차장 등을 비가 많이 올 때 저류시설로 활용하는 사례가 도쿄와 오사카 등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심도 시설은 여러 지역을 지나는 경우도 있고, 민원도 많다는 특징도 있다”며 “규모와 비용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해 지자체 간 협력하는 방식 등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보미·김원진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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