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작업은 엄두도 못 내..정부 보상 제대로 해줄지 불안"['물폭탄' 그 후]

박하얀 기자 2022. 8. 1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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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한 강남 구룡마을 판자촌 이재민들
어디부터 손대야 하나 14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인근 농지에 폭우로 쓸려 온 토사가 쌓여 있다(왼쪽 사진). 지난 8일부터 시작된 폭우로 수해를 입은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주민이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권도현 기자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감감무소식…기약 없이 임시숙소 전전
취약계층 피해 집중돼 경제적 부담…‘재난의 불평등’ 드러나

서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이라 불리는 구룡마을. 지난 8일 폭우가 쏟아진 뒤 엿새가 흐른 14일 오전 이 마을에 들어서자 높이 쌓아둔 쓰레기 더미가 보였다. 빽빽이 모여 있는 판잣집들은 세차게 내린 비에 맥없이 주저앉았거나 골조를 앙상하게 드러낸 모습이었다.

기록적인 폭우 이후 일주일이 다 되어가지만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아직도 큰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개천을 따라 구룡마을 안쪽 주택가로 들어서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판잣집들이 이어졌다. 김모씨(65)는 흙을 쌓아둔 포대와 쓰레기가 뒤엉켜 있는 자신의 집을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었다. 야간에 목욕탕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는 지난 9일 아침에야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흙탕물을 뒤집어쓴 벽지가 당시 집에 들어찬 빗물의 수위를 짐작하게 했다.

그는 “행거에 걸어둔 옷가지만 건져내고 모두 잃었다”고 했다. 쓸 만한 것이라곤 솥단지 2개와 탁자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13일까지는 구청이 운영하는 이재민 임시 주거시설에 머물렀지만, 지금은 구룡마을 사무실 한쪽에서 생활하고 있다. 딸의 집에서 몸을 씻고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온다고 했다.

김씨는 “여야 국회의원들 다 한입으로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한다더니 아직 조치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구룡마을에서는 강남구청 직원들이 재난신고서를 제출한 집들을 찾아 피해 현황을 조사하고 있었다. 김씨가 “우리 집은 아직 조사 안 했다”며 발을 동동 구르자, 직원은 “신고하셨으면 곧 올 것”이라며 발길을 옮겼다.

구룡마을 개천에 인접한 정모씨(79)의 집도 큰 타격을 입었다. 8일 잠을 청하려던 정씨와 부인은 가슴팍까지 물이 들어차자 오후 11시쯤 집을 탈출했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잠옷 차림으로 가까스로 대피했다.

“가구가 (출입구를) 막았는데 아주 구사일생으로 도망 나왔습니다.” 정씨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비스듬히 기울어진 상태인 그의 집에는 장롱, 냉장고, 가재도구 등이 산처럼 쌓여 있어 발을 들일 수조차 없었다. 전날 이재민 임시 주거시설에서 퇴소한 그는 현재 구청의 지원을 받아 인근 숙박시설에 머물고 있다.

수해를 크게 입은 서울 관악구 등 다른 지역 주민들도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과 경제적 부담을 호소했다.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사는 김모씨(51)는 8일 밤 집을 탈출했다. 김씨와 남편, 딸 등 세 식구는 집을 나온 날 밤은 건물 위층 ‘주인집’에서 보냈지만, 다음날부터는 인근 모텔에서 묵었다. 동주민센터에 이재민 임시 생활공간이 마련됐지만, 매트리스 하나에 담요 한 장뿐인 것을 보고 모텔을 택했다. ‘3박4일’ 숙박료로 20만원 넘게 들었다. 한 달 수입 170만원으로 홀로 생계를 책임지는 김씨에게는 ‘거금’이다.

김씨는 더는 바깥 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 전날 집에 돌아와 급한 대로 물기가 있는 바닥과 젖은 물건들을 드라이어로 말렸다. 그는 “냄새가 심한 상황”이라면서도 “집에서 잠을 청해보려 한다”고 했다.

이날 오전 11시 기준 거주지를 떠나 대피한 사람은 수도권과 강원, 충청, 전북 등 7개 시·도 55개 시·군·구에서 7480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이재민은 1107가구·1901명이다.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 거주자이다.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발달장애인 언니를 돌보던 일가족의 사망 등 이번 폭우로 드러난 ‘재난의 불평등’이 피해 복구 과정에서도 경제적 부담 등 여러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자연재해가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개선할 수 있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답답한 마음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도움을 요청한 이재민과 그를 돕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 운동도 눈길을 끌고 있다.

신대방동 반지하 주택에서 사는 차종관씨(27)는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집이 침수돼 모든 살림살이를 잃은 채 길바닥에 내몰렸다. 재산 피해액을 추산해보니 700만원대에 이른다”며 “아직 정부의 지원 계획은 없다. 지원이 나온다 해도 극히 작은 규모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며 후원을 요청했다. 전날 기준 119명으로부터 960만원이 답지했다.

차씨는 개인 피해 복구에 필요한 700만원 이외 200만원은 수해를 복구하는 데 기부했다고 밝혔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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