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의 '부동산 처분' 취소시키려면..대법 "양도세 등 세금 빼고 따져라"[판결돋보기]
빚을 진 사람이 재산을 빚을 갚는데 쓰지 않고 다른 곳에 처분했다면, 또 그로 인해 빚보다 재산이 더 적어졌다면? 그래서 돈을 갚을 수가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면?
채무자가 고의로 재산을 줄여서 채권자가 빌려준 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없게 만드는 행위를 법률용어로는 ‘사해(詐害)행위’라고 한다. 법은 이 경우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채무자의 재산처분 행위를 취소할 권리(채권자취소권)를 준다.
채무자가 만약 제3자와 부동산 매도계약을 체결했을 경우, 채권자가 이 계약을 취소시킬 수 있는지를 따지려면 계약으로 달라진 채무자 재산과 받아내야 할 빚을 비교해야 한다. 그런데 부동산 매매에 부과되는 양도소득세 등 세금을 ‘빚’에 포함시켜야 하는지가 그간 쟁점이 돼 왔다. 대법원은 최근 ‘세금은 빚에 포함시키지 말고 따져야 한다’는 판단을 처음으로 내놨다. 세금은 부동산 계약 무렵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매매대금이 지불될 때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은 지난달 14일 신용보증기금이 A씨 등을 상대로 낸 사해행위 취소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신용보증기금은 2007년 B씨와 신용보증약정을 체결했고, 2017년 약정에 따라 B씨의 대출금 1억7000여원을 대신 갚았다. 그리고 곧바로 B씨에 구상권을 청구했다.
그런데 문제는 B씨가 그 무렵 A씨 등을 포함한 제3자들에게 자신의 부동산을 팔아넘기는 매매계약을 했다는 점이다. 신용보증기금은 B씨가 빚을 진 상태에서 재산을 제3자에게 처분했고, 그 결과 빚보다 재산이 더 적어져 빚을 갚지 못하게 됐다면서, B씨와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한 A씨 등을 상대로 매매계약을 취소해달라는 ‘사해행위 취소 소송’을 냈다.
재판 결과 A씨를 제외한 다른 2명의 매수자들에 대한 청구는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A씨에 대해서는 1·2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엇갈렸다. 원심에서는 부동산 매매에 부과될 양도소득세를 B씨의 빚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이를 파기했다.
A씨와 B씨가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할 당시 B씨의 재산은 약 8억1000만원이었고, 빚은 7억9500만원이었다. 이 상태에선 빚보다 재산이 많지만, 1, 2심은 해당 매매계약으로 인해 B씨에 부과될 양도소득세 2100만원도 일종의 빚(조세채무)으로 판단했다. 즉 빚(7억9500만원+2100만원)이 재산( 8억1000만원)보다 많은 상태가 되니 해당 계약은 ‘사해행위’이고, 그래서 채권자(신용보증기금)가 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해당 계약 당시에는 아직 조세채무가 발생되기 전이었다고 판단했다. 양도소득세를 납부할 의무는 매매계약 시점이 아닌 거래대금이 지불된 시점에 발생한다고 판단한 기존의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즉 계약만 하고 대금은 오가기 전이니 세금 납부 의무가 발생하기 전이고, 그래서 빚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해행위로 주장되는 토지나 건물의 양도 자체에 부과된 세금은 그 행위 당시의 소극재산(빚)으로 고려할 수 없다는 점을 판시한 첫 판결”이라고 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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