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리 광복군' 17위, 대전현충원 모셨다.. 건국이래 최대 합동안장

김동희 기자 2022. 8. 1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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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다 순국한 광복군 선열 17명이 광복 77년 만에 영면에 들어갔다.

국가보훈처는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수유리 광복군 합동묘소에 안장돼 있는 선열 17위 영현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안장했다.

광복군 17위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7묘역에 조성된 '수유리 한국광복군 합동 묘역'에 개별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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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한국 광복군 17위의 합동 안장식이 열리고 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다 순국한 광복군 선열 17명이 이날 광복 77년 만에 영면에 들어갔다. 사진=김동희 기자

조국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다 순국한 광복군 선열 17명이 광복 77년 만에 영면에 들어갔다. 17명의 독립운동가 합동 안장은 건국 이래 최대 규모다.

국가보훈처는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수유리 광복군 합동묘소에 안장돼 있는 선열 17위 영현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안장했다.

앞서 애국선열 17위의 영현은 지난 11일 광복군 합동묘소 개장 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임시 안치된 채 국민 추모 기간을 지냈다.

이날 오전 유해가 임시 안장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합동 봉송식이 거행됐으며, 이후 선열 17위 영현은 국방부 의장대와 경찰 호위 속에 영현별 봉송차 1대씩 총 17대로 나눠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동했다.

합동 안장식은 개식 선언, 영현 입장, 국기에 대한 경례, 영현에 대한 경례, 추모사, 헌화 및 분향, 조총발사와 묵념, 하관 및 취토, 폐식 선언 순으로 진행됐다.

광복군 17위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7묘역에 조성된 '수유리 한국광복군 합동 묘역'에 개별 안장됐다.

참배단에는 17위의 이름과 공적, 수유리 한국광복군 묘비에 각인되어 있던 비문이 함께 새겨졌다.

수유리 광복군 17위가 더해지면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광복군은 총 360위로 늘었다.

윤종진 국가보훈처 차장은 추모사에서 "광복군 17분의 선열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순국하시고 후손도 없어 그간 서울 수유동 북한산 기슭에 안장돼 계셨다"며 "정부는 그동안 국회 차원의 관리와 예우를 해줬으나 모자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외 아직 발굴하지 못한 독립운동의 역사와 기록들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며 "국립묘지뿐만 아니라 국가유공자 합동묘역 후손이 없는 전몰군경 묘소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편 수유리 합동묘소는 광복 후 애국선열을 위한 별도의 국립묘지가 없어 조계사 등에 임시 안치된 독립 운동가를 수유리에 안장하면서 1961년 조성된 곳이다.

대부분의 선열이 미혼일 때 전사해 후손이 없어 그동안 국립묘지로 이장이 이뤄지지 않았다.

14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국학원 천신무예단이 무후 광복군을 위해 천신위령 공연를 올리고 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다 순국한 광복군 선열 17명이 이날 광복 77년 만에 영면에 들어갔다. 사진=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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