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지은 시, 詩心은 없어도 여운은 있죠"

이진한 입력 2022. 8. 14. 18:12 수정 2022. 8. 1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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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 슬릿스코프 대표
김제민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AI시인 '시아'가 쓴 수십편 엮어
국내최초 AI 시집·시극 선보여
백과사전·뉴스로 한글 익히고
1만3천여편 시 읽혀 작법 습득
30초당 한편, 행·연 구분 척척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의 김제민 대표가 인공지능(AI) `시아`가 지은 작품 `시를 쓰는 이유` 앞에서 시아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2018년 결성한 미디어아트 그룹 슬릿스코프는 한국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예술활동에 가장 적극적인 단체 중 하나다. 미디어아티스트 김제민 서울예술대 교수와 AI 개발자 김근형 씨가 공동대표로 있는 이곳은 2020년 안무 전문 AI '마디(MADI)'를 선보이며 공연 예술 무대에 올랐다. 당시 마디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관찰해 데이터를 수집한 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안무를 만들었다. 이 춤은 안무가 신창호의 검수를 거쳐 국립현대무용단에 전해져 온라인으로 공연됐다. 국내 최초의 AI 창작 안무 공연이었다.

슬릿스코프는 최근 시를 쓰는 AI '시아(SIA)'를 기반으로 한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시아'가 창작한 시 53편을 엮은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출간했다. 정식 출간된 서적 중 국내 최초의 AI 시집이다. 이달 12~14일에는 '시아'가 쓴 시 20편으로 구성된 시극 '파포스'를 대학로에서 공연했다. 해당 공연 또한 AI가 각본을 쓴 시극 중 최초의 유료 공연이다. 김제민 대표에 따르면 시아는 2020년 시범 공연 형식으로 시극 공연을 한 차례 무대에 올렸다.

'시아'는 슬릿스코프가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사업을 통해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면서 태동했다. 민간 기업의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슬릿스코프가 시 창작에 필요한 세부 언어모델을 추가해 발전하는 방식이다. 현재의 '시아'는 카카오 AI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이 개발한 초거대 AI 언어모델 'KoGPT'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초거대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인간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는 차세대 AI를 뜻한다.

'시아'는 인터넷 백과사전과 뉴스 등을 읽으며 한국어를 공부한 뒤 1만3000여 편에 달하는 한국 근현대 시를 읽어 작법을 배웠다고 한다.

'시아'의 창작 과정은 슬릿스코프가 시상에 해당하는 단어 또는 간단한 문장을 제시하면서 시작한다. 작업자 설정에 따라 하나의 시상에 대해 한 편의 시가 나올 수도, 여러 편의 시가 나올 수도 있다. 작품이 나오는 데는 30초 안팎의 시간이 걸린다.

초기에는 시적 허용으로도 인정하기 어려운 문장이 많아 언어모델 자체를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했다고 한다. 시집을 낸 지금은 행과 연의 구분도 '시아'가 직접 결정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슬릿스코프는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시아'가 작성한 시 약 1만 편을 검수해 시집을 구성했다. 컴퓨터의 언어인 이진법에서 모티브를 받아 '공(1부)'과 '일(2부)'로 나눴다. 전자에는 슬릿스코프의 관심사가 일부 반영된 주관적인 시상들이, 후자에는 수학·물리학 등과 관련한 용어들이 제시됐다.

다만 '시심(詩心)'의 부재는 슬릿스코프도 부정하지 않는 '시아' 작품의 약점 중 하나다. '시아'의 문장을 단순한 알고리즘의 결과물 이상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의견이다. '파포스' 공연에서 미디어 디스플레이 장치를 주요 소품으로 삼고 낭독 기반으로 방식을 구성한 까닭이다.

무대를 연출한 김제민 대표는 "시극을 통해 비로소 '시아'가 작성한 문자 텍스트들에 의미가 부여된다고 생각했다. 배우 다섯 명을 캐스팅할 때 표현력에 초첨을 맞춘 까닭"이라며 "무대를 매개로 전해진 시의 의미를 찾고 감상하는 행위는 관객의 몫으로 돌렸다"고 설명했다.

슬릿스코프는 '파포스' 공연을 계기로 AI가 예술 분야에서 인간과 공동 창작자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방향성을 모색하겠다는 계획이다. 시심 없이 시를 작성해 시가 무엇인지 관객들에게 질문한 것처럼 예술 전반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도 부연했다. 또 AI 개발의 윤리에 대해서도 고민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제민 대표는 "'시아' 작업을 통해 인종차별주의자 논란에 휩싸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AI 채팅 봇 '테이'가 생각났다. AI는 어떤 의도로 무엇을 가르치느냐에 따라 생성되는 결과물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만큼 인간이 미처 보지 못하는 영역을 볼 수 있는 창작자로 개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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