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 경영 포기한 이재용 뉴삼성..'이사회 중심' 개편 밑그림

이승훈,정유정 2022. 8. 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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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지배구조 어떻게 바뀌나
포드·발렌베리 가문처럼
전문경영인 전면에 내세우고
오너일가는 이사회 통해 경영
보험업法 개정안은 위험요인
법통과땐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대거 팔아야
외국자본 공격 가능성 커져

◆ 이재용의 뉴 삼성 ②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광복절 복권으로 '경영 족쇄'가 풀리게 되면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20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있었던 준법의무 위반 행위와 관련해 사과하면서 '4세 경영 포기'를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개편안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 복권을 통해 삼성에서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 내에서 지배구조는 기업집단의 거버넌스라는 사전적 의미와 함께 소유 구조 문제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현 소유 구조에 대한 개편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지배구조 문제와 관련해 현재 삼성에서는 컨설팅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용역을 준 상황이다. BCG 용역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삼성이 한국 재벌의 특성과 장점을 살리면서 이사회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쪽으로 의견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주요 부문별로 위원회(협의회)를 구성해 경영진이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안할 것으로 전해졌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부회장이 세습 경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만큼 삼성가가 이사회에 참여해 전문경영인을 감독하는 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조 교수는 일가족이 재단을 통해 경영에 참여하는 사례로 스웨덴 발렌베리와 미국 포드 등을 들었다.

창업자 가족이 160여 년간 5대째 경영권을 이어가고 있는 발렌베리 가문은 '인베스터'라는 투자회사를 통해 그룹을 지배한다. 가문이 직접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베스터가 이사회 구성원으로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 대신 복수의결권 제도를 채택해서 지분보다 훨씬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스웨덴 대표 통신회사인 에릭슨은 인베스터가 5% 지분을 갖고 있지만 의결권은 19%를 행사하고 있다.

발렌베리는 삼성이 오랜 기간 '롤모델'로 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03년에는 고 이건희 선대회장이 발렌베리 재단을 방문한 적이 있고, 발렌베리 가문 경영진도 2012년과 2019년 한국을 찾을 때마다 이 부회장과 면담을 하는 등 꾸준히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미국 포드는 창업주 헨리 포드를 포함해 현재까지 13명이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는데, 이 중 포드 가족은 3명에 그친다. 짐 팔리 현 CEO를 포함한 나머지 10명은 전문경영인이다. 현재 포드 가문인 빌 포드가 이사회 의장을 맡으며 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또 창업주 가족 80여 명은 복수의결권 제도를 활용해 2% 남짓한 지분으로 의결권의 40%를 행사하고 있다.

기업에 따라 알맞은 경영 방식이 다른 만큼 적법하게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다면 오너의 경영 참여를 부정적으로 봐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상법 전문가인 김화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서 '소유와 경영'에서 "가족은 전문경영인보다 훨씬 장기적 관점에서 일하기 때문에 혁신과 변화에 대한 절박함과 동력이 더 크다"며 "후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본인의 대에서 회사가 쇠락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전문경영인은 회사 안팎의 이해관계 집단이 행사하는 압력에 취약해 내외의 자원 배분 기능 조절에 실패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삼성 지배구조 논의의 다른 한 축으로는 소유 구조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현재 삼성그룹 소유 구조는 오너 일가가 31.31% 지분으로 삼성물산을 지배하고, 이어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형태로 돼 있다. 삼성전자 최대주주는 8.51% 지분을 가진 삼성생명이고, 삼성물산도 5.01% 지분을 갖고 있다. 오너 일가 지분은 5.45%에 그친다.

외부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오너 일가가 삼성전자 지분을 탄탄히 가져가는 것이 필요한데, 여기에 걸림돌이 되는 게 현재 야당에서 추진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소위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이 개정안의 핵심은 자산 평가 방식이다. 현재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보유할 수 있는 계열사 주식 한도를 총자산의 3%로 규정하고 있다. 보험업 감독 규정에서 총자산과 자기자본에 대해서는 시가, 주식·채권 보유 금액은 취득원가로 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에 추진되는 법 개정안은 주식 또는 채권 보유 금액을 시가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지난 12일 종가 기준으로 볼 때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치는 30조원을 넘는다. 이 개정안대로라면 삼성생명은 자산의 3%인 9조8400억원을 초과하는 20조7510억원 규모의 삼성전자 지분을 시장에서 처분해야 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지배구조 전문가는 "의결권 제한과 달리 삼성전자 지분을 대량으로 팔도록 하는 것은 비가역적인 조치"라며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 일가 지배력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외국 자본이 공격해오면 방어 수단 없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생명이 논란의 핵심이 되면서 금융 계열사만 떼어 중간 금융지주사를 설립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생명 최대주주가 삼성물산(19.34%)이어서 다양한 방식을 통한 지분 스왑 가능성이 거론되는 분위기다.

여기에 이 회장 사후에 삼성생명 지분 6.92%를 갖게 된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행보도 주목된다.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상속세 납부를 위해 본인 지분을 절반가량 매각했지만 이부진 사장은 지분에 변동이 없는 상황이다.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추가적인 계열사 매각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2014년 삼성그룹이 석유화학 부문인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 방산 부문인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를 한화그룹에 매각한 것처럼 전자 외에 비주력사 매각이 거론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삼성중공업은 지난 2분기까지 19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내면서 합병설과 매각설이 꾸준히 불거진 바 있다.

[이승훈 기자 /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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