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 인권운동가 첫 증언 이후 31년.."역사적 정의는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이유진 기자 2022. 8. 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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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청계천에서 열린 ‘제10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나비 문화제’에서 시민들이 시민참여 부스에서 문화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14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인 서울 청계천 광통교 일대에 파란 지붕의 부스 20개가 들어섰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과 평화나비네트워크 등 시민단체와 대학생 단체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정의연이 마련한 한 부스에서는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왔다는 이종인씨(42), 정혜정(41) 부부의 ‘나비 팔찌’ 만들기가 한창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나비 모양의 부자재를 활용한 팔찌였다. 정씨는 “기림일 행사에 참여하러 일부러 청계천을 찾았다”며 “피해 할머니들이 몇 분 생존하시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총 240명이지만, 이날 기준 피해 생존자는 11명에 불과하다.

14일 서울 청계천에서 열린 ‘제10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나비 문화제’에서 시민들이 시민참여 부스에서 문화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기림일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1991년 8월14일을 기념해 제정했다. 2012년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처음 지정됐으며,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 알리고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2017년 기림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오후 5시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정의연 주최로 ‘제10차 위안부 기림일 나비문화제’가 열렸다. 고령의 피해 생존자들은 영상을 통해 인사말을 전했다. 이옥선 할머니는 “이것들(일본 정부)이 사죄하기 전에는 용서하지 말라. 용서하지 말고 끝까지 사죄할 때까지 (역사를) 말해달라”고 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를 공부해서 (한·일) 양국 간의 바른 역사를 알고 해결해서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9년 별세한 고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영상도 공개됐다. 김 할머니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젊은이들이 할 일은 이 나라에 열심히 살아서 나라 잘 되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전쟁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이 돼서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살아가는 것이 ‘평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청년·대학생·청소년 역사의 증언단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무대에 올라 “31년 전 살아있는 증거가 돼 우리 앞에 나타난 여성인권운동가가 된 김학순, 그 의미를 기억하고 계승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남겨졌다”며 “그러나 역사적 정의는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일본 정부는 진실을 마주하기는커녕 조직적으로 범죄 사실을 부정하고 책임 인정을 회피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의 과오를 직시하긴커녕 합의 정신을 운운하며 화해치유재단의 부활을 시도하고 굴종·자해 외교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극우 역사 부정세력은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에 맞장구치며 피해자를 모독하고 수요시위와 평화의 소녀상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다”며 “참담한 현실에도 김학순의 염원을 기억하는 우리는 가해자가 수치심을 느끼는 세상,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가 무시되지 않는 세상, 여성 인권이 존중 받는 세상,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계속 행동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울산 대공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이희숙 한국 고살풀이춤 보존회 회장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살풀이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가족부도 이날 오전 ‘진실의 기억, 자유와 인권을 노래하다’를 주제로 정부 기념식을 진행했다. 피해자의 역사적 증언이 확산돼 전 세계인의 자유와 인권, 평화로 이어지기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여가부는 설명했다.

행사는 위안부 피해자와 그들과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주제 영상 상영과 위안부 피해자에 바치는 헌시 낭독과 합창 순서로 진행됐다. 헌시는 시인 신영이 이용수 할머니의 ‘내 이름은 위안부가 아닌 대한민국의 딸 이용수’라는 말을 듣고 창작했다. 합창곡은 2021년 청소년작품공모전 수상작 2곡(소녀의 사람, 소녀의 꿈)을 연결해 편곡했다.

경기 광명과 시흥·포천, 강원 속초·원주, 부산과 대구·울산·경남 등에서도 지자체 주최로 기림의 날 기념식 및 다양한 추모·문화행사가 열렸다. 기림의날 특별누리집(https://www.theday814.com)에서는 전국 기림의 날 행사 정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일상 사진과 예술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온라인 사진, 응원 메시지 남기기 등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코너가 마련됐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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