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어지는 에너지 위기 그림자..탄력 받는 '자국 우선주의'

박상영 기자 2022. 8. 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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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수도 베를린에 있는 베를린 대성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에너지 절약 시책에 따라 어둠에 싸여 있다. AP연합뉴스.

최대 석탄 수출국인 인도네시아 정부는 올해 초 석탄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석탄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업체들이 수출에만 집중하고 내수 시장 공급 의무는 어기자 강경책을 내놓은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원관리에 고삐를 조이면서 국제 석탄 가격은 치솟았지만 국내 석탄 수급은 안정화됐다.

지난달 인도는 휘발유와 항공유에는 리터(ℓ)당 6루피, 경유에는 13루피의 수출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정유사에 해외 석유제품 수출분의 일정 비율은 국내에 공급해야 하는 의무도 부과했다. 자국 정유사가 비싼 가격으로 유럽에 판매하기 위해 수출을 늘리면서 국내 석유제품 공급이 부족해지자 내놓은 대책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6개월 넘게 지속되면서 ‘자국 우선주의’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폭염과 코로나19로 주춤했던 산업 활동 재개로 에너지 수요는 늘고 있지만 전쟁으로 공급은 차질을 빚는 현상이 지속되면서 세계 각국이 자원 수출 제한에 나선 것이다.

자원 부국이 빚장을 걸어 잠그면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에 정부는 에너지 수급난에 대비해 국내 원전 이용률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다만, 원전은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용률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에너지 절약을 위한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겨울을 기다리는 모스크바

14일 경향신문이 올해 상반기 연료원별 전력거래량을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LNG 발전 비중은 30.1%로 전년 동기(32.0%) 대비 1.9% 포인트 감소했다. 지난해 MMBtu(열량 단위)당 평균 18.5달러였던 LNG 가격이 올해 7월까지 평균 31.0달러로 오르면서 발전사들이 LNG 비중을 낮춘 것이다.

LNG 가격 고공행진은 올해 내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파이프라인을 통해 가스를 수입해왔던 유럽연합(EU)이 미국과 노르웨이로부터 LNG 수입을 늘린 영향이 크다. 올 상반기에만 미국으로부터 LNG 수입량은 지난해 하반기 대비 일 평균 12% 늘었다. 유럽이 상반기에 수입한 LNG의 47%가 미국산이다. EU 전체 가스 소비량의 약 20%를 차지했던 노르웨이 가스 수입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 늘어났다.

독일 루브민에 있는 노르트스트림1 발트해 천연가스관 육상 인입·중계 시설 뒤편으로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올겨울을 앞두고 러시아가 ‘자원 무기화’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LNG 가격 상승세는 더욱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이미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지난달 말 터빈 정비 문제를 이유로 유럽으로 이어지는 천연가스 송유관인 노르드스트림1 공급량을 전체 용량의 20% 수준까지 줄였다. EU는 수급난에 대비해 회원국들이 11월 1일까지 가스 저장고 용량의 최대 80%까지 채워야 한다는 규정을 채택했지만 지난달 기준, 가스 저장률은 평균 62% 수준에 그치고 있다.

유럽 내 LNG 수급 불균형이 세계 시장으로 파급되면 글로벌 LNG 가격도 더 오를 수 있다. 실제 화주들이 위약금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 등에서 높은 가스 가격을 지급하는 유럽으로 우회하고 있다고 코트라는 소개했다. 컨설팅 기업인 유라시아 그룹도 “유럽이 신흥 시장 가격 인상을 견인하고 있으며 이미 남아시아 에너지 부족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겨울철 LNG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겨울철 시작 전인 11월에 가스공사의 LNG 재고가 저장시설의 약 90%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지난 4월부터 현물 구매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확보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지난해 LNG 수입 규모가 세계 3위로 LNG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LNG 가격 상승은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물가 상승세를 부추길 수 있다.

경제에도 부담이다. 천연가스는 산업용 전력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수급 차질이 현실화될 경우 유럽 경제는 물론, 전 세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첫 4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무역적자 폭도 더 확대될 가능성 크다. 8월에도 10일까지 76억77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하면서 5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이어갈 전망이다.

‘검은 연기’ 다시 늘어나나

LNG 가격이 오르면서 다시 석탄발전으로 눈을 돌리는 국가도 점차 늘고 있다. 탈석탄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독일은 지난 7월 천연가스 공급 위기가 심화될 경우, 이미 폐지하기로 한 석탄 화력 발전소를 일시적으로 재가동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채택했다. 2030년까지 폐쇄 예정인 일부 석탄 화력 수명 연장도 검토키로 했다.

중국도 석탄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중국이 올 상반기 생산한 석탄 규모는 21억9000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0% 증가했다.

국내도 석탄발전 비중이 하반기에는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유연탄 가격이 급등하면서 올 상반기 석탄발전 비중은 32.4%로 지난해 같은 기간(33.0%)보다 0.6% 포인트 줄었지만 LNG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므로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석탄 가동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업계에서는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4개월간은 의무적으로 시행했던 석탄발전 상한제가 유예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겨울철 석탄발전 출력을 80%까지 제한하는 상한제를 시행해왔다.

다만, 높은 석탄 가격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석탄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난해 t당 138.4달러였던 유연탄 가격은 지난 7월 평균 333.3달러까지 오른 상태다.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자국 우선주의’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이미 노르웨이는 EU에 수력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의 수출 제한을 검토하고 있고 호주도 LNG 수출량을 줄이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지난 6월 미국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의 5분의 1을 담당하는 터미널에서 발생한 화재도 수출 제한의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당시, 러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미국산 LNG 수입을 늘리는 유럽으로 인해 가스 구매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화재까지 일어나면서 천연가스 가격은 큰 폭으로 올랐다. 그러나 수출길이 막히면서 미국 국내 LNG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화재로 인한 수출 제한이 국내 물가 안정에는 도움이 된 것이다.

상반기 원전 비중 늘었지만 한전 적자 막지 못해
서울의 한 주택가 전력량계. 연합뉴스.

정부는 에너지 수급난에 대비해 원전 이용률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실제 예방정비 등을 이유로 낮아졌던 원전 이용률은 대폭 상승했다. 설비용량 대비 발전량인 원전 이용률은 올해 상반기 기준, 82.4%로 박근혜 정부 임기(2013∼2016년) 평균(81.4%)보다 높다. 특히, 6월(84.3%)과 7월(84.4%)에는 80% 중반대를 기록하는 등 점점 오르는 추세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부터 “그동안 정치적, 이념적으로 치우친 의사결정으로 이용률이 저하됐다”며 이용률을 높여야 한다고 독려해왔다. 이에 따라 전력거래 시장에서 원전 비중은 30.6%로 지난해 같은 기간(28.4%)보다 2.2%포인트 상승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원전 비중이 증가했지만 한국전력은 올해 상반기에만 사상 최대 규모인 14조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최근 한전의 적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연료비 가격이 뛴 영향이 큰 만큼 원전을 늘리더라도 한전 적자 해소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원전 이용률을 높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정비 기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이용률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그만큼 원전이 중단되는 사고 확률도 높아진다. 전력업계 관계는 “전력수요가 몰리는 여름철과 겨울철을 대비해 봄과 가을에는 원전도 정비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며 “이용률만 마냥 높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에너지 소비 절약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헝가리와 폴란드를 제외한 EU 회원국은 8월부터 내년 3월까지 5년간의 평균 소비량 대비 가스 소비를 15% 줄이기로 합의한 상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독일은 관광명소 야외조명을 끄고 공공건물의 난방온도를 최고 19도로 제한하는 등 에너지 절약 정책을 시행 중”이라며 “국내는 아직 여유가 있지만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예상되는 만큼 적극적인 절약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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