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악마의 시' 작가 루슈디에 대한 테러는 야만적 폭력

연합뉴스 2022. 8. 1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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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슬람 신성모독 논란을 일으킨 소설 '악마의 시'를 쓴 인도계 영국 작가인 살만 루슈디(75)가 테러를 당해 중태에 빠졌다. 루슈디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뉴욕주 셔터쿼 인스티튜션에서 강연하기 직전에 무대 위로 돌진한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목과 복부를 찔려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 루슈디의 수술 경과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쪽 눈을 잃을 것으로 보이며 팔 신경이 절단되고 간도 손상됐다고 외신은 전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하디 마타르(24)는 2급 살인미수와 흉기를 이용한 폭행 혐의로 다음 날 기소됐다. 루슈디는 1998년 출간한 '악마의 시'에서 선지자 무함마드를 불경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이슬람권의 거센 비난을 받아왔고 1989년 당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사실상 루슈디 처형 명령을 내렸다. 이번 범행의 동기는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개명한 열린 시대에 작가에 대한 전례 없는 테러를 접하면서 충격과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뉴욕주 셔터쿼 카운티의 제이슨 슈미트 지방검사장은 13일 법원에서 열린 기소 인정 여부 절차에서 "이번 사건은 루슈디를 겨냥해 사전에 계획된 이유 없는 공격"이라며 루슈디가 흉기에 10차례 찔렸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범인에 대한 보석을 불허해달라고 주장하면서 '파트와'(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율법 해석에 따라 내리는 일종의 포고령)가 동기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악마의 시' 출간 당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당시 이란 최고지도자가 무슬림들에게 루슈디의 살해를 촉구하는 '파트와'를 선포한 것을 지칭한 언급이다. 일부 이슬람 단체들에 의해 300만 달러 이상의 현상금이 내걸렸던 루슈디는 이후 신변에 위협을 받으며 오랜 세월 은신했다. 이번 범행은 2016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뉴욕시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의 기지개를 켜오던 루슈디가 내년 2월 새 소설 '빅토리 시티'의 출간을 앞두고 망명 작가와 예술가들의 피난처로서 미국의 역할을 주제로 한 대담을 가진 자리에서 발생한 것이다. 루슈디의 책을 번역한 이들에 대한 테러는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1991년 7월 일본 쓰쿠바대 교정에서 발생한 '악마의 시' 일본어판 번역가 이가라시 히토시 피살 사건이 대표적이다. 1993년 7월에는 튀르키예(터키) 소설가인 아지즈 네신이 소설 발췌 부분을 번역해 현지 신문에 실었다가 투숙하던 호텔 방화에 간신히 탈출했는가 하면, 그해 10월에는 노르웨이판 '악마의 시'를 낸 윌리엄 니가드가 노르웨이 오슬로 자택 근처에서 세 차례 피격당한 일이 있었다.

이번 사건은 2015년 1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만평의 소재로 삼았다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총기 테러로 편집장 등 12명이 살해된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야만적이고 무지몽매한 테러에 맞서 당시 유럽 전역에서는 '내가 샤를리다'라는 시민들의 규탄 시위가 이어졌었다. 물론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고 과도한 반(反) 이슬람주의는 자제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작가가 쓴 글에 포함된 합리적 비판이나 풍자에 신랄한 비난을 던질 수는 있을지언정 이것이 결코 인신 겁박과 테러의 명분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표현과 의견 개진의 자유를 폭력으로 응수해서는 안 된다고 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성명이나, 두려움 없는 사상의 공유가 자유롭고 열린 사회의 기본적인 요소라고 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언급은 모두 정당하고 시의적절하다. 작가의 작품은 고독한 노력과 지성의 소산이다. 이들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과 그 결실이 인류의 삶을 한층 풍성하고 평화롭게 만들며, 이를 보장하는 게 민주사회의 참된 모습일 것이다. 루슈디에 대한 테러는 민주사회의 기둥인 표현의 자유를 겁박한 범죄이자 비겁한 행위로 규탄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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