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하리' 옥주현의 피날레 4분 [리뷰]

2022. 8. 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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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타하리' 세번째 시즌
마타하리의 삶과 사랑에 집중
마지막 넘버의 감정 표현 압권
'마타하리' 옥주현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무대 한가운데 선 그를 향해 모멸의 시선이 쏟아졌다. 운명은 되돌릴 수 없었다. 시대는 희생양을 요구했고, 희생양이 돼야 했던 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순응도, 체념도 아닌 저항이었다. 손가락질 하는 세상을 향한 또 다른 저항이자 자신의 무결함을 증명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래서 핏빛 드레스를 입고 꼿꼿하고 당당하게 세상 앞에 섰다. 그 때 나온 넘버는 ‘마지막 순간(One last time)’이었다.

뮤지컬 ‘마타하리’(8월 15일까지, 샤롯데씨어터)의 피날레는 묘하게 옥주현과 오버랩됐다. 지난 몇 달 사이 뮤지컬 업계를 뜨겁게 달군 논란의 주인공. 이른바 ‘옥장판’ 논란이 들끓던 순간에도 옥주현은 물러섬 없이 ‘마타하리’ 무대에 올랐다.

마타하리(1876~1917)는 여전히 ‘미지의 존재’다. ‘여성 스파이’의 대명사였고, 시대를 유혹한 팜프파탈이었다. 이 이름 역시 ‘여명의 눈동자’라는 뜻을 가진 인도네시아어다. 본명은 마가레타 거트루이다 젤러. 1917년 10월,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다 이중간첩 혐의로 총살당한 것이 그의 삶이었다.

'마타하리' 옥주현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무대는 드러난 결과 이면으로 들어간다. 미래에도 여전히 분분한 마타하리의 혐의에 대해 ‘대중의 분노를 돌리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설에 무게를 싣는 것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 과정엔 팜므파탈이나 스파이가 아닌, 한 사람이자 여성으로의 마타하리의 삶과 사랑이 담겼다.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올린 ‘마타하리’는 인물간의 서사를 강화하기 위해 스토리를 세 번이나 변경했다. 작품에선 마타하리의 내면을 보여주는 마가레타를 무용수로 등장시켜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처절한 고통과 상처로 점철된 과거의 삶을 벗고, 희대의 무희이자 팜므파탈로의 삶을 찾은 마타하리. 보편적이지 않은 강렬한 캐릭터(‘레베카’ 댄버스 부인, ‘위키드’ 엘파바)를 만나 특장점을 보여줬던 옥주현은 ‘마타하리’를 통해 힘을 뺀 연기를 보여줬다. 평범한 한 사람으로의 마타하리를 보여주기 위한 시도다. 연약한 내면과 사랑에 전부를 건 어느 시대의 여성이 그에게 투영됐다. 하지만 팜므파탈의 외피를 벗고, 사랑과 시대 요구에 휘둘리는 여성의 모습이 2022년의 여성 관객에겐 그리 설득력을 안기진 못했다. 마타하리는 그가 사랑하는 한 남자(아르망)의 안위를 놓고 요구받은 스파이 임무 앞에 휘둘리고, 끝끝내 사랑에 헌신하며 자신의 삶을 던진다. 지금의 여성상과 이들의 주체적 삶이 이해하기에, 100여년 전 마타하리의 삶은 수동적이고 나약한 여성을 요구하는 한 시대에 갇혀있다.

'마타하리' 옥주현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다만 옥주현이 연기하는 ‘마타하리’ 속 피날레는 단연 압권이었다. 지난 몇 달간 겪은 옥주현의 상황과 맞물렸기에 마지막 노래와 연기는 오히려 그 자신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일련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 곡은 옥주현의 폭발적 가창력과 감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곡이었다. ‘마타하리’의 모든 넘버를 작곡한 세계적인 뮤지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은 “옥주현은 전 세계적으로 몇 손가락 안에 꽂을 수 있는 뮤지컬 배우”라며 “‘마타하리’의 마지막 4분의 넘버는 옥주현을 위해 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분 동안 옥주현은 힘차고 우아하면서도 가사 하나하나 해석해 영혼을 담아 노래한다.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이고, 손에 꼽을 수 있는 월드클래스의 실력이다”라며 감탄했다.

이 작품 속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무대였다. 마타하리의 집은 그에게 안식을 주면서도, 내면에 담긴 외로움을 표현했다. 색감은 화려하지만, 어디에도 정착하기 어려운 이방인의 내면을 보여주듯 금세 떠날 수 있는 단출한 구성이었다. 인상적인 무대는 영상과 조명을 통해 1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으로 관객을 끌고가는 장면, 3층 높이의 세트가 교차하며 파리에 남은 여인들과 전쟁 속 군인들이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었다. 특히 마타하리가 사형대에 오를 때 하늘 빛깔이 달라지는 모습은 무대예술의 극치를 보여줬다. 다만 공연이 한창이던 지난달 22일 무대 장치가 쓰러져 배우가 공연 중 추락한 사고는 이번 시즌 ‘마타하리’의 오점이 됐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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