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악마의 시' 번역했다가 공격 받은 이들..루슈디 피습과 '닮은 꼴'
지난 12일(현지시간) 벌어진 작가 살만 루슈디 피습 사건을 계기로 그의 소설 ‘악마의 시’ 번역자들에 대한 공격 사례도 재조명되고 있다.
‘악마의 시’를 일본어판으로 옮긴 번역가 이가라시 히토시 피살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는 1991년 7월 일본 도쿄 북동부 소재 쓰쿠바대학에서 강연을 마치고 연구실을 뜨던 중 칼에 찔려 사망했다. 경찰은 이가라시의 목, 얼굴, 손 부근에서 자상이 발견됐으며 그의 가방이 찢겨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의 최고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악마의 시’를 쓴 루슈디를 이슬람 신성모독 혐의로 살해하라는 파트와(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내린 일종의 포고령)를 공표한 이후 이 소설을 일본어판으로 번역했다. 이 때문에 종교적 이유가 범행 동기가 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본어판 출판사 신센샤가 이슬람 무장세력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고, 이가라시 역시 한동안 경호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일본 경찰은 ‘악마의 시’ 번역과 피습의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피습 용의자를 한 명도 검거하지 못했고 결국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되면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았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가라시 사망을 둘러싼 추측 중 가장 유명한 설명은 1998년 잡지 데일리신조에서 나왔다. 조사관들이 쓰쿠바대학의 한 방글라데시 학생을 용의자로 파악했으나, 일본과 이슬람 국가 간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윗선의 압력으로 무마됐다는 내용이다.
‘악마의 시’ 이탈리아판 번역가 에토레 가프리올로는 이가라시 피습 수일 전 자신의 아파트에서 칼에 찔렸다. 1993년엔 터키 소설가 아지즈 네신은 지역 신문에 ‘악마의 시’ 번역문을 발표한 이후 머물던 호텔에 화재가 발생해 가까스로 도피했다. 이 사건으로 37명이 숨졌으며 이후 터키 법정은 공격에 가담한 33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노르웨이판 ‘악마의 시’ 발행인 윌리엄 니가드는 1993년 겨울 오슬로 자택 인근에서 3발의 총상을 입고 살아났다. 2018년 노르웨이 경찰은 공소시효 만료를 이틀 앞두고 이 사건을 기소했다. 다만 용의자의 신상은 밝히지 않았다. 니가드의 변호인이 인터뷰에서 “이란 출신의 전 외교관을 포함해 2명이 기소됐다”고 밝혔다고 NYT는 전했다.
한편 미국 검찰은 13일 루슈디를 흉기로 찌른 혐의로 하디 마타르(24)를 2급 살인미수와 2급 폭행으로 13일 기소했다. 마타르는 12일 뉴욕주 서부 셔텨쿼에서 강연을 위해 무대에 오른 루슈디를 약 10차례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힌 뒤 현장에서 체포됐다. 검찰은 이번 공격이 루슈디를 노린 계획 범죄라고 보고 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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