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잠잠해지자 하늘길 수요 대폭발.. 운항 차질 속출 [세계는 지금]

이병훈 2022. 8. 1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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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항공대란'에 몸살
美 여름 내내 항공편 지연·취소 잇따라
캐나다선 항공기 절반 이상 '지각 출발'
코로나發 인력 감축 후 수요 대응 실패
佛·伊 공항 노조 파업에 여행객 발 동동
조종사 면허 재취득·충원에 시간 걸려
정년 연장 등 추진에도 조기 해결 난망
운항 편수 줄이고 항공료는 대폭 인상
4대 항공사 매출 코로나 前 수준 회복
업계 합병 활발해 운임 추가인상 여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의 완화 조짐이 보이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여행객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세계 곳곳에서 항공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 공항에선 주말마다 항공편 결항, 지연사례가 쏟아지고, 공항 체크인카운터나 보안검색대 앞에는 엄청난 대기행렬이 늘어서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당분간 이런 상황의 해소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위기로 인력을 대규모로 잘라버렸던 항공사와 공항이 다시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항공여행이 대혼란(chaos)에 빠져 있지만, 불행히도 빠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워싱턴포스트·WP)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독립기념일(7월4일) 연휴로 승객이 폭증해 항공대란이 발생한 지난 6월28일(현지시간) 뉴욕 퀸스 존 F 케네디국제공항 카운터 앞에 여행자들이 피곤한 표정으로 긴 줄을 서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대규모 결항·지연 반복…여행자 골탕

미국은 여름 휴가철과 연휴를 맞아 반복되는 대규모 항공편 지연과 취소 사태가 일상화하고 있다.

12일 항공편 추적 웹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FlightAware)에 따르면 미국에서 6, 7일 이틀 동안 항공편 총 1569편이 결항했다. 이틀간 지연된 항공편은 무려 1만3645편에 이른다. 독립기념일(7월4일) 연휴(보통 6월 말∼7월 초)인 지난달 1∼4일 항공편 취소 1600편 이상, 지연 1만7000편 이상의 대규모 운항 차질을 겪었음에도 항공업계가 후속 대응에 실패하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여름 내내 항공대란을 겪고 있는 업계가 아예 대처능력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CNN은 “올해 여름 내내 미국에서는 항공사의 인력 부족과 항공관제 지연, 악천후 등으로 인해 항공편 취소와 지연이 발생했다”며 “(항공 운항의) 최악의 날”이라고 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항공대란이 만성화하는 조짐을 보이면서 여행객은 혼란에 빠졌다.
플라이트어웨어에 따르면 지난 2개월 동안 미국 항공사 항공편 중 2.2%(약 2만6000편)가 결항했고, 22%(26만편)는 지연됐다.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국제공항은 6월1일∼7월12일 항공편의 무려 52.9%가 지각 출발해 전 세계 주요 공항 중 최악의 지연율을 기록했다. 항공편 40%가 지연된 런던 히드로공항은 다음 달까지 출발 승객수를 하루 10만명으로 제한하는 고육책을 내놓았다.

◆대규모 인력 감축 후 수요 폭증하자 대응 실패

항공대란의 주범은 폭증한 여객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는 항공업계의 일손 부족이다.

미국 교통안전청에 따르면 공식 독립기념일 연휴 첫날인 지난달 1일 공항 검색대를 통과한 사람은 총 249만명이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독립기념일 연휴 첫날 여행객 수(218만명)를 훌쩍 뛰어넘은 규모다. 이에 코로나19로 직원, 화물처리 인력, 보안요원을 대폭 감축했던 공항이 감당하지 못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려던 시민이 공항에서 장시간 고통을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인력난에 물가상승에 따른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발생하면서 항공대란이 가중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공항과 이탈리아 로마 레오나르도다빈치공항 등의 노조가 파업에 나서 수많은 승객 발이 묶인 바 있다. 파급력이 큰 조종사 파업도 이어지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사(SAS) 조종사 노조는 지난달 15일간 파업을 진행했으며, 독일 루프트한자 조종사의 파업 가능성도 커지는 상황이다.

◆단기간 해결 어려워 항공대란 계속될 듯

항공대란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항공사와 공항 등이 인력 충원 절차를 밟더라도 조종사 면허재취득이나 직무 훈련에 시간이 걸린다.

일부 항공사는 조종사 채용 조건을 완화하거나 조종사 훈련 시간 단축, 조종사 정년 연장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상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리서치회사 시밀러웹의 짐 코리도어 수석 매니저는 CNN에 “많은 조종사가 은퇴했으며,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쉽지 않다”며 “항공사가 수요를 맞출 만큼 인력을 충원하려면 1년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X)의 웨스트게이트 터미널 안에서 승객들이 짐을 들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걸어 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에 따라 소위 ‘효율 경영’에만 골몰해온 항공업계에 대해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WP에 따르면 미국 항공사들은 2020∼2021년 정부지원금 540억달러(70조4700억원)를 받았다. 업계는 정부지원금을 받아놓고도 인력 감축을 한 뒤엔 여행수요 회복시기 예측에 실패해 인력충원 시점을 놓치면서 항공대란을 불러왔다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WP는 “미국 연방 데이터에 따르면 1∼5월 항공편의 지연, 결항의 가장 큰 원인은 항공사”라며 “그러나 항공사는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美 항공사 ‘고가운임 전략’ 고수… 승객들 울상

미국 주요 항공사 실적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수준까지 회복됐다. 수익성 개선의 가장 큰 비결은 비싼 운임이다. 항공사들은 당분간 고가운임 전략을 이어갈 방침이어서 소비자의 항공료 부담은 계속될 전망이다.

12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미국 항공여행의 80%를 담당하는 4대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델타항공,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이익은 지난 2분기(4∼6월) 총 28억달러(약 3조6540억원)를 기록했다. 매출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이던 2019년 2분기보다 10% 증가한 460억달러(60조300억원)를 기록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한 공항에 아메리칸 항공의 보잉 787-8 항공기가 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는 과거보다 적은 숫자의 좌석 티켓을 비싸게 받아 일군 실적이다. 4대 항공사의 좌석이 3년 전보다 약 13% 감소했으며, 1마일(약 1.6㎞)당 승객 지급 금액은 19.3% 증가했다. 각 항공사가 코로나19로 인해 항공편을 감축했고, 줄어든 편수만큼 운임은 올린 셈이다. CNN은 “항공사는 좋지만, 승객에게는 최악”이라고 했다.

3분기(7∼9월) 이후에도 적은 항공편수와 높은 운임에 힘입은 회복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아메리칸항공은 3분기 항공편수가 대유행 이전보다 8∼10% 적지만, 높은 운임에 힘입어 수익은 12%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나이티드항공은 내년에도 2019년 대비 항공편수 8%대 감축과 연료를 제외한 운임의 16~17% 상승을 전망했다. 델타항공은 “비용 증가에 따라 운임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며 3분기 매출이 2019년보다 1~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CNN은 “항공사들은 그간 비교적 높은 가격의 비즈니스 좌석이나 국제선 위주로 운임을 올려 왔다”며 “최근에는 미국 국내선의 운임도 올리면서 승객에게 더욱 타격을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승객 불만은 폭발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교통부에 대한 민원은 팬더믹 이전보다 3배 이상 치솟았다. 교통부는 이에 국내선은 3시간 이상, 국제선은 6시간 이상 지연되면 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새 규정을 마련했으나 항공요금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 7월 4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국제공항에서 여행자들이 항공편을 확인하고 있다. 마이애미=AP연합뉴스
항공사 합병이 활발해지면서 이용객의 선택폭 감소는 물론 추가 운임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의 미국 4대 항공사도 20여년간 10개 항공사가 합병되면서 탄생했다. 지난달에는 미국 내 1위 저비용항공사(LCC) 제트블루항공이 초저가 운임으로 유명한 LCC 스피릿항공을 38억달러(4조9590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병으로 탄생하는 항공사는 미국 5위 규모다. 또 다른 큰손의 등장에 소비자는 항공료 상승을 우려하는 실정이다.

항공업계 전문가는 “합병이 승인될 경우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가격 파괴적인 경쟁자가 사라지는 효과로 요금이 오를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병훈 기자 bh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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