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감사원과 전현희의 딜레마
감사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 대한 본 감사에 착수한 지 14일째 접어들었습니다. 피감기관 수장인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2주간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비판하는 글을 본인 명의의 SNS 계정에 잇따라 게재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14일)까지 게재된 관련 글은 모두 9개에 달합니다. "권익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게 해달라", "감사원의 고래사냥에 전현희가 표적이 됐다", "망신주기식 감사로 수치감과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권익위 유권해석은 법령과 원칙에 기한 엄격한 해석이다" 등의 내용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권익위 내부 고발자의 고발 의도와 관련해 "승진을 원한다"라며 정치적 추정(해석)을 덧대기도 했습니다. 감사원을 비판하는 글을 언제든 추가로 게재할 수 있어 보입니다. 피감기관장이 나서 감사원의 감사에 맞불을 놓으며 역습을 위한 방어 겸 반격 전선을 견고히 구축하고 있습니다.
전현희 특별감사…무엇을 확인하고 있나?
권익위는 지난 2020년 9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2020. 01. 02 ~ 2021. 01. 27)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와 추 장관의 직무가 이해 충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렸습니다. 당시 추 장관 아들 군 휴가 특혜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지휘 라인에 김관정‧이종근 검사 등 이른바 '추미애 사단'이 배치돼 비판이 일기도 했는데, 전현희 위원장은 당시 검찰로부터 "장관에게 수사 내용을 보고하거나 지휘받지 않았다"라는 입장을 전달받아 이같이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이후 추 전 장관과 추 전 장관 아들을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전현희 위원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임 당시(2019. 09. 09 ~ 2019. 10. 14) 부인 정경심 씨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이러한 논리를 적용하면 이해 충돌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직무 관련성이 있어서 업무 배제 처분도 가능하다는 의견을 낸 박은정 전임 위원장과는 상반된 의견을 냈습니다.
권익위 내부고발자들은 이러한 유권해석의 결론을 사실상 미리 정해 놓고 판단 과정에 부당한 영향력이 있었다는 취지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은 이들의 제보를 토대로 의혹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유권해석 과정에서 어떤 판례를 준용했는지 어떤 법리를 적용했는지 어떤 데이터를 활용했는지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한 감사원 관계자는 "당시에도 국회에서 충분히 의혹이 제기됐었고 내부 제보까지 들어왔는데 감사를 안 할 수도 없다. 들여다 보고 결론으로 말하겠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3년 전, 여‧야 합의로 이뤄진 원전 감사 때도 감사원은 산업부 등이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불리한 자료를 제외하거나 삭제하는 등 사실상 결론을 정해 놓고 평가를 왜곡한 부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과정에 따라 결론이 바뀔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둬야 하는데 원치 않는 결론이 나오면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죽을래?'라고 힘을 행사하며 결론을 강요하다 보니 산업부 공무원들의 위법 부당한 행위들이 이어졌습니다. (참고로 탈원전 방향은 보기에 따라서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감사원은 정책의 당부(當否 : 옳고 그름)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게 아니라 그러한 판단 과정에 공무원들이 법규를 어긴 부분을 중점적으로 감사했습니다.)
전현희의 딜레마 : 내부고발자
"선관위는 (직무감찰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변명의 여지없이 잘못한 것이지만…."
노정희 선관위원장 시절 선관위가 잘못은 했지만 중앙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직무감찰은 과하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권익위의 반발은 산업부나 선관위와 비교했을 때 반발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나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감사원에 직접 항의를 했습니다. 전현희 위원장은 이에 더해 여론에 적극 호소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마음을 담아 여론에 호소하는 것도 정당한 방어권 행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나 전현희 위원장 입장에서는 이 위기가 정치인으로서의 몸집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본인에 관한 불리한 의혹이라 하더라도 이름이 여러 차례 언급되는 게 중요하다. 정치인에게는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좋은 이슈든 나쁜 이슈든 굳이 가릴 이유가 없다는 취지입니다.
감사원의 딜레마 : 중립성
그런데 이런 말이 무색하게도 지난달 29일 최재해 감사원장이 국회 업무보고에서 '감사원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 한다'라고 실언을 하며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습니다. 김도읍 위원장조차 귀를 의심케 한다고 반응했습니다. 감사원법 상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라고 돼 있습니다. '대통령 소속 기구'라는 문구는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대통령에 소속하되'라는 문구에 방점을 둔다면 감사원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후퇴하게 됩니다. 최재해 원장도 누구보다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지난해 11월 15일 취임하면서 "중립성이 핵심 가치"라고까지 했습니다.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면, 언행에 보다 신중했어야 합니다. 감사가 진행 중일 때 지휘부는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해야 합니다. 뱉어버린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특히나 국회에서 한 실언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앞으로 진행될 감사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부담은 고스란히 현장에서 뛰는 일선 감사관들의 몫이 됩니다.
배준우 기자gat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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