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애 사퇴'가 남긴 질문..인구감소 시대 영유아 교육 어떻게

방준호 2022. 8. 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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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5살 초등입학' 논란]① 인구 감소 시대,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
② 영·유아 교육격차 해소할 공교육 방안은
③ 민감한 주제..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8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돌연 7월29일 교육부 업무 보고에 만 5살 초등학교 조기 입학 정책이 담겼다. 그리고 8월8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졸속 정책 추진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사이 열흘 동안 부모, 교사, 교육 학자들은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집회를 했다. 단체마다 성명을 발표해 반대를 표명하고, 토론회를 열어 그동안 영유아 교육을 둘러싼 연구 결과를 전했다. 부총리와 차관을 만나 항의했다. “아이들은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고 외쳤다. “조기 사교육을 조장할 것”이라고 염려했고,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정책 제안”에 분노했다.

시민들이 내놓은 우려·비판 속에는 △인구 감소 시대 아동의 교육과 돌봄 △생애 시작점의 교육 격차 △교육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 등 영유아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녹아있다. 불쑥 초등 입학 연령 하향을 꺼내 놓기에 앞서 정부가 숙고해야 했을 지점들이다. 부총리 사퇴 이후에도 그칠 수 없는 고민을 전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짚어봤다.

인구 감소 시대의 아이들

“아이들은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45개 유아·보육 단체가 긴급하게 결성한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 연대’가 지난 1일부터 시작한 집회에서 시민들은 ‘아이들의 놀 권리’를 중요한 구호로 외쳤다. 인구 감소 시대 아이들을 ‘사회적 쓸모’나 ‘효율’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정부에 대한 분노가 담겼다.

임미령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생활협동조합 이사장은 “아이들의 발달이나 행복 같은 관점이 빠진 채 나온 정책이라는 점에서 결국 인구 감소 시기 산업 인력을 양성하거나 초등학교의 남는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만 5살 아이들을 동원하는 정책으로 보였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이 충분하게 놀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진 터라 부모들의 분노가 더 컸다”고 말했다.

영유아 인구가 급격하게 줄고 있는 현실은 엄연하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중위기준)를 보면, 만 5살 인구는 2020년 44만1476명에서 2030년 24만5200명까지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다만 영유아 인구 감소를 대응해야 할 리스크나 자원 효율화의 명분으로만 삼기보다 양질의 공교육을 실현할 기회로 여겨야 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그동안 교육이 입시 경쟁 속에서 소수만 남기고 나머지를 방치하는 구조였다면, 인구 감소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개별적으로 살피는 교육과 보육이 가능해진 기회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정부 뜻대로 제대로 된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도 획일적인 학습보다 한 명 한 명의 발달 과정을 고려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춰야 했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생애 시작점의 격차

“조기 인지교육과 사교육을 조장하는 만 5세 초등입학을 강력 규탄한다.” 시작 닷새만인 지난 5일 시민 20만명 이상이 서명한 ‘만 5세 조기입학 반대 서명’의 설명 문장은 조기 사교육이 낳을 생애 시작기 격차를 가장 먼저 짚는다.

영유아기 교육 격차가 낳는 상대적 박탈감의 심각성은 여러 연구에서 드러난다. 육아정책연구소의 ‘KICCE 소비실태조사, 양육 비용 및 육아서비스 수요 연구(Ⅳ)’에서 2021년 기준 가구 소득 월 299만원 이하인 가구는 소득의 44.5%를 자녀 양육을 위해 지출 했는데, 이들은 면접 조사에서 “생활비를 줄여서라도 자녀에 대한 투자를 우선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소비를 줄여서라도 아이에게만은 격차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은 절박감이 드러난다. 2020년 기준 소득 하위 10% 가구는 월평균 총 양육비용으로 76만원을 쓴 반면, 상위 10% 가구는 160만1천원을 썼다.

영유아기의 격차 해소를 위해 시민들이 주목한 것은 정부가 내놓은 초등학교 조기 입학이 아닌 ‘공교육다운 국가 책임이 구현되는 영유아 교육 체계’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교육의 평등과 형평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공교육으로서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했다”고 말했다. 학습 위주 경쟁 교육의 시작점으로 여겨져 사교육을 조장하는 초등학교로의 조기 입학이 격차를 오히려 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는 공교육 전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옥희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정책위원은 “집단적인 환경에서 같은 곳을 향해서 경쟁하는 현재의 공교육을 넘어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을 살리는 교육이 공교육 안에서도 이뤄질 수 있어야 근본적으로 교육 격차 해소의 바탕이 마련된다”고 말했다.

절실해진 사회적 합의

지난 3일 장상윤 교육부 차관을 만난 학부모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정책 제안에 분노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공약에도, 국정과제에도 없이 업무보고로 툭 던져진 정책은 교육 정책에 있어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출범을 앞둔 사회적 합의 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에 기대가 쏠렸다.

다만 영유아 교육이 국교위에서 얼만큼 논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창현 연구위원은 “이전에 있었던 국가교육회의에서도 영유아 문제는 의제로 올리기조차 쉽지 않았다. 국교위 안에 유아교육위원회가 확실히 만들어지고 전문가들이 충분히 논의한 끝에 정책을 내놓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정부·여당이 21명 국교위 위원 가운데 과반 이상을 추천할 수 있어, 정부 정책을 합리화하는 역할에 그칠 거라는 우려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송경원 정책위원은 “국교위가 거수기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위원 구성부터 국민 여론에 귀 기울이고 정치적 편향을 띄지 않은 이들로 채워야 한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회적 합의와 숙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만큼 본래 취지대로 국교위가 운영되는 것이 한층 절실한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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