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체육관 다녔던 루슈디 공격범.."인생 최악의 날 모습이었다"

이가영 기자 2022. 8. 1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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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악마의 시' 작가 살만 루슈디(75)를 흉기로 공격한 용의자 하디 마타르(24). /AP 연합뉴스

이슬람 신성모독 논란을 일으킨 소설 ‘악마의 시’ 작가 살만 루슈디(75)에게 흉기를 휘두른 용의자가 레바논 출신의 이민자 하디 마타르(24)로 밝혀졌다. 이란의 핵협상팀은 “이상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루슈디 흉기 테러 용의자, 무죄 주장

13일(현지시각) 미국 CNN에 따르면 마타르는 2급 살인미수와 흉기를 이용한 2급 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마타르는 전날 오전 뉴욕주 서부 셔터쿼에서 강연을 위해 무대에 오른 루슈디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과 복부를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힌 뒤 현장에서 체포됐다. 미국 검찰은 루슈디가 10차례 칼에 찔렸다고 밝혔다. 루슈디는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여전히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루슈디의 대변인은 그가 한쪽 눈을 실명할 것으로 보이며 팔 신경이 절단되고 간도 손상됐다고 전했다.

마타르의 국선변호인에 따르면 그는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은 마타르가 매우 협조적이었다고 했지만 무죄를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변호인은 “아직 사건이 초기 단계이고, 사람들은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냥 추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레바논 출신 이민자의 아들, 항상 혼자였다”

12일(현지시각) 살만 루슈디가 강연 전 피습당한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마타르는 레바논 출신의 이민자로 밝혀졌다. 알리 테프 야룬 시장은 “마타르의 가족은 레바논 남부 야룬 출신”이라고 말했다. 마타르의 부모가 미국에 이민을 간 후 마타르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마타르는 뉴저지주의 복싱 체육관에 자주 다녔다. 회원들은 그가 조용하고 대부분 혼자 지냈다고 증언했다. 복싱 클럽 소유주 데스몬드 보일은 CNN에 “‘인생 최악의 날’이라는 표정을 알고 있느냐”며 “마타르는 매일 그런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체육관 회원 로베르토는 마타르가 일주일에 서너 번 체육관을 방문했으나 혼자였다고 했다. 로베르토는 “이곳은 가족적인 환경이어서 모두를 참여시키려고 노력한다”며 “하지만 마타르는 거의 혼자였다. 매우 조용한 아이였다”고 했다.

마타르의 범행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루슈디가 오랜 기간 신변의 위협을 받아온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NBC 방송은 현지 경찰을 인용해 마타르의 소셜미디어에 이슬람 시아파 극단주의 사상에 동조하고 이란 혁명수비대(IRGC)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란 핵협상팀 “미묘한 시점에 사건 발생”

살만 루슈디 흉기 테러 후 현장에서 체포된 하디 마타르. /AP 연합뉴스

IRGC는 이란 정규군과 함께 양대 조직을 형성하고 있는 최정예 부대로, 이란의 이슬람 체제를 수호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한다. 최근 이란 핵합의 복원을 위한 협상의 주요 의제 중 하나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이란 경제 제재를 복원하자 이란은 이에 맞서 핵무기 개발에 다가서고 있다. 이란과 미국은 IRGC를 ‘외국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제재를 철회하는 문제를 놓고 대치했다.

이란 핵협상팀은 마타르와 IRGC의 연관성이 제기되자 “이상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모하마드 마란디 이란 핵협상팀 고문은 이날 트위터에 “이슬람을 향해 증오와 경멸을 끝없이 쏟아낸 작가를 위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라며 루슈디를 깎아내렸다. 그러면서 “핵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미묘한 시점에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이란이 암살하려 했다는 미국의 발표와 루슈디 피습이 잇따라 발생한 건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마타르가 이란 정부와 관련 있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루슈디는 1988년 발표한 소설 ‘악마의 시’에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초기 아랍인들에게 이슬람을 전파하려고 잠시나마 이슬람 유일신 신앙을 포기할지 고민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무슬림 사회는 무함마드를 유약하게 표현했다고 반발했고, 당시 이란 최고지도자는 ‘악마의 시’ 출판에 관여한 누구든지 살해하라는 ‘파트와’를 선포했다. 파트와는 종교 지도자가 내리는 일종의 포고령이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루슈디는 항상 무장 경호원을 대동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실제로 ‘악마의 시’를 번역한 일본인 번역가와 노르웨이판 출판 담당자가 피습을 당해 사망했다. 이탈리아어 번역가도 흉기에 공격당했으나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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