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오른다는 말 믿고 샀는데".. 갭투자자들의 눈물
“전셋값이 무조건 오를 수 밖에 없다더니 전문가라는 사람들 말 하나 믿을 게 없어요. 2금융권까지 대출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입니다.”(갭투자자 A씨)
“1년 전만해도 이럴 줄 몰랐어요. 유튜버들이 8월부턴 전셋값이 오르면서 갭투자하기 좋은 시절이라고 했었거든요.”(갭투자자 B씨)
전셋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갭투자(전세보증금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집을 매매하는 것)에 나선 이들이 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전셋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투자를 감행했는데 예상만큼 오르지 않아 잔금을 치르기 어려워진 것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등 대출 규제가 많아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도 쉽지 않다.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시세보다 많이 받는 대신 대출이자를 지원해주는 임대인도 등장했다고 한다.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세가격이 맥을 못추고 하락하면서 무리해서 주택을 구매한 사람들의 자금 조달 부담은 매우 커진 상태다. 임대차 2법(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을 도입한 지 2년이 되는 8월 말부터 전셋값이 또 한번 크게 오를 것이란 전망을 믿고 집을 산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들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0.48% 하락했다. 전국 아파트 평균 전셋값도 0.3% 내렸다. 전셋값은 전체적으로 올 2월부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8월이 되면서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전세금은 여전히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잔금일에 맞춰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이들은 공인중개업소에서 필요 자금을 빌리거나 임차인에게 대출이자를 대주면서 전세를 놓는 실정이다. 임차인이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유지하거나 올려주는 대신 금융비용은 집주인이 부담하는 것이다.
지방이나 수도권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서울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도 사정이 비슷하다. 서초구 반포 일대가 대표적인 경우다. 서초구는 강남 3구 중 유일하게 토지거래허가제에서 제외되면서 전세를 승계하며 집을 사는 ‘갭 투자’가 쉬웠다. 이 때문에 전셋값 상승을 점치면서 갭 투자에 나선 이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30억원 짜리 주택에 기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이 12억원인 경우 18억원의 자금 계획을 세워 집을 사는 것이다. 18억원에는 임대료 상승분을 수억원씩으로 계산한 경우가 많다.
당시만해도 전용면적 59㎡의 래미안 퍼스티지의 전세호가가 최고 17억원까지 올랐고 실제로 16억원대 후반에 거래되기도 했다. 최근 같은 면적의 래미안 퍼스티지의 전세 호가는 15억원 수준이다.
반포 인근 S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 만기에 전셋값을 올려 받아 자금을 해결할 것을 염두에 두고 집을 산 사람들이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전세가격이 기대에 못 미치니 빌린 돈을 일부 상환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전세 계약까지 믿고 맡겨달라며 중개한 사람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반포 일대의 전셋값이 예상만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금리가 대폭 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기준금리를 크게 올리면서 한국은행도 금리를 올려 현재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고 7%대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반포 르엘(596가구)이 입주를 앞둔 것도 이 지역 전세가격이 조정을 받는 이유다.
서울 송파구 대단지인 헬리오시티의 전셋값도 고점을 지나 소폭 하락하고 있다.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59㎡는 10억3000만원대에 거래되다가 최근 8억8000만원(호가)까지 하락했다. 헬리오시티 인근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에 전셋값이 더 오를 줄 알고 집을 매수한 사람은 대출을 받으려고 여러 군데에 전화를 돌리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최근 준공승인이 난 수도권 신축 아파트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계약금과 중도금 일부만 치루고 전세로 나머지 중도금과 잔금을 해결하려던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5년간 집값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분양가와 신축 준공 후 전세가격이 같아진 사례가 반복되자 자기자본을 크게 들이지 않고 집을 사려는 사람이 늘었는데 이제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매교역 푸르지오SK뷰(3600가구)가 대표적이다. 7월 말부터 입주가 진행 중인 이 단지의 전셋값 호가는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전용면적 84㎡의 전셋값은 3억원 수준으로 하락했다. 입주 직전 호가는 4억~4억5000만원. 지난 2020년 분양 당시 가격은 3.3㎡당 1800만원으로 책정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매가 대부분을 전세보증금을 채울 수 있을만큼 호가가 높았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일부는 임차인에게 전세자금대출 이자를 지원해주는 조건으로 전세를 체결하고 있다. 20~30대 중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섰던 이들이 잔금 처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오는 고육지책이다. 임차인 대부분이 전세자금대출을 받기 때문에 대출을 더 받게 하는 대신 이자를 지원해주는 것.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자금조달계획서를 작성할 때 대부분을 임차보증금으로 적어내야 하는 상황인 20대 젊은층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면서 “다주택자인 경우엔 대출도 쉽지 않다보니 꼼수가 등장한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작년 하반기가 임대차 2법 통과 이후 전세가격 왜곡이 가장 심했던 때였는데 최근 몇년간 정책 실기에 따라 집값과 전셋값이 크게 오른 것을 믿고 무리하게 투자했던 이들이 발목을 잡혔다고 분석했다.
박합수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금리가 오르면 시장 상황이 달라진다는 점을 간과한 사람들이 문제”라면서 “늘 오르기만 하는 자산은 없다. 집값이나 전셋값이 끝없이 오르지는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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