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치매 예방 교실 왔다가 은행 업무 봐요".. 어르신 찾아가는 국민은행

김수정 기자 2022. 8. 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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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버스에 은행 시설 설치한 'KB 시니어 라운지'
한 달에 한 번 디지털 금융교육도 진행
점포·ATM 감소세 속 주목

“치매예방수업 듣고 손자, 손녀 용돈도 뽑겠구먼.”

지난 10일 서울 진관동에 위치한 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 이곳 출입문 앞에는 알록달록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노란색 소형 버스 쏠라티가 세워져 있었다. 복지관 안에서 치매 예방 수업 종료를 알리는 알람 방송이 울리자, 출입문에서 노인분들이 느긋느긋 걸어 나왔다.

복지관을 나서던 노인들은 못 보던 차량의 정체가 궁금한 듯 지나가던 발길을 멈췄다. 복지관 노인의 관심을 한 번에 받는 차량은 KB국민은행이 지난달 18일부터 운영을 시작한 고령층 대상 운영점포 ‘KB 시니어 라운지’다.

지난 10일 서울 진관동 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한 어르신이 'KB 시니어 라운지'를 살펴보고 있다. /김수정 기자

이날 KB 시니어 라운지의 첫 고객인 김향순(76)씨는 “평소라면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해 은행에 간다. 은행에 가서도 한 시간을 기다려야 업무를 볼 수 있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두세 시간 나갔다가 오면 진이 다 빠졌다”며 “복지관에 이동점포가 오니 여기서 바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게 돼 편리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만원권 지폐 200장을 오만원권으로 바꿔갔다.

국민은행은 KB 시니어 라운지를 요일을 정해 중랑구, 구로구, 은평구, 노원구, 강서구의 복지센터를 도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서울에서 가장 고령인구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대신 은행 점포에 방문하는 어르신들을 고려해 소액 현금 입출금, 통장 재발행, 연금 수령 등을 제공한다. 운영시간은 아침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다. 은행 업무뿐만 아니라 금융사기·보이스피싱 예방 교육도 진행한다.

내부 시설은 고령층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입구에는 버스 안에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넓은 발판이 설치돼 있다. 통장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거나 신분증을 두고 오는 일이 잦다는 점을 고려해 손바닥 정맥으로 본인 확인이 가능한 장비까지 갖췄다. 실제 이날 대부분 고객은 손바닥 출금 장치를 통해 은행 업무를 이용했다. 또 인근 지역 점포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하루 파견을 오는 방식이라 상담 등 원활한 업무 처리가 가능하다.

이용자들은 은행 점포뿐만 아니라 현금자동인출기(ATM)도 멀리 있어 은행 업무를 보기 어려웠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복지센터로 은행이 찾아오니 여간 편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날 10만 원을 출금한 백성현(80)씨는 “손자, 손녀 용돈을 뽑으러 왔다. 근처 기자촌에 사는데, 현금을 뽑으려면 구파발이나 연신내까지 나가야 한다. 관절이 좋지 않아 매번 거기까진 나가기 어렵다”며 “그런데 집 근처 복지관에 은행이 직접 와주니깐 돈 뽑기가 편해졌다”고 말했다. 은평노인종합복지관 반경 1km 안에는 국민은행 ATM 기계가 하나도 없다.

지난 10일 서울 진관동 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고령층 고객이 'KB 시니어 라운지'를 이용하고 있다. /김수정 기자

은행 업무를 보는 대신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온 문자 메시지가 보이스피싱인지 확인해달라거나, 스마트폰 은행 애플리케이션 구동 방법을 묻는 어르신들도 여럿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송금하는 방법을 물으러 온 이경순(73)씨는 “손녀딸이 이전에 알려줬는데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 청년한테 물으러 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변에 스마트폰 이용법에 대해 물어볼 곳이 없어 답답했다. 은행 사람들이 복지관에 이렇게 직접 와주니 고맙다”고 덧붙였다.

강금자 연신내종합금융센터 계장은 “하루 평균 15명에서 20명 정도의 고객이 KB 시니어 라운지를 찾아오신다. 은행 업무가 아니라 궁금한 점을 묻는 손님까지 합하면 50명 정도를 응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 계장은 “주 고객이 고령층인 만큼 점포 은행에 있을 때보다, 큰 목소리로 천천히 설명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KB 시니어 라운지로 KB국민은행을 이용하게 됐다는 고령층 고객도 있었다. 지난주에 이어 이날도 이동점포를 찾은 이모열(84)씨는 “원래는 다른 은행을 이용했는데 국민은행이 복지관까지 찾아와 지난번에 와서 계좌를 만들었다”며 “앞으로도 수요일마다 복지관에서 은행 업무를 처리할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KB 시니어 라운지'에서 강금자 연신내종합금융센터 계장이 업무를 보고 있다. /김수정 기자

국민은행이 이동식 점포를 시범운영하게 된 이유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은행 점포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점포 이용 빈도가 높은 고령층 대상 서비스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은행 점포 수는 총 6100곳이다. 1년 동안 311곳(4.7%)이 줄었다. 점포 감소 폭도 해마다 빨라지고 있다. 2016년 180곳, 2017년 312곳, 2018년 20곳, 2019년 57곳, 2020년 303곳이 각각 문을 닫았다. 올 상반기 폐쇄된 점포는 250곳에 달한다.

고수민 KB국민은행 채널지원부 대리는 “비대면 금융이 활성화되면서 금융취약계층 소외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며 “서울 지역에서 시니어 라운지를 운영한 뒤 수도권이나 지방에도 관련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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