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환장" 들으며 병나게 일해도..월 200만원은 참, 멀었다

한겨레 입력 2022. 8. 13. 18:40 수정 2022. 8. 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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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
퇴직 카드상담사 은수씨
하루 500콜 성과 필요한 상담사
다른 도급사와 실적 실시간 비교
15분간 점심 먹고 쉼없이 일해도
인센티브·점수 깎여 수입 제자리
게티이미지뱅크

마지막 카드사에서 5년을 채우고 예순이 되어 정년퇴직한 그해. 은수(가명)씨는 왼쪽 귀에 보청기를 하고 오른 손목을 수술했다. 소음난청과 척골충돌증후군 탓이다. 외국계 보험사에서 텔레마케팅으로 보험 상품을 판 게 마흔 무렵. 그때부터 보험·카드사에서 아웃바운드 상담사로 20여년을 일했다.

실시간 경쟁에 내몰리는 상담사

“콜센터에서 일하면 종일 귀가 아려. 점점 청력이 떨어지고 이명도 심해서 검진했더니 소음난청이래. 헤드셋 볼륨을 최대한 키워 퇴직까지 버텼지. 손도 그래. 상담하면서 계속 정보를 불러오니까, 한 고객당 마우스를 스물몇번씩 누르거든. 몇 손가락만 집중해서 무리하게 쓰니까 병나지. 다들 손 아파서 쩔쩔매. 수시로 손을 털고, 파스 붙이고, 손목보호대 차고, 세로형 마우스도 써보고, 왼손으로도 해보고, 진통제 먹고, 토요일이면 침 맞으러 가고…. 직업과 연관되겠지만 아프다고 누가 회사에 이의 제기하나? 혼자 감당하지.”

일 특성상 눈·목·어깨·허리·소화기·혈액순환·정신건강·감정 등에도 문제가 생기는데, 자신도 그랬지만 은수씨는 이때껏 산업재해 신청하는 동료를 본 적이 없다. 1년마다 계약 갱신하며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여러 카드 회사를 빙빙 도는” 도급사 상담사에게 법과 권리, 노동조합은 먼 데 얘기다. 그나마 카드사가 4대 보험 되고 주 5일 근무에 평일 아닌 주말 이틀 쉰다는 게 크고 유일한 이점인데, 원청사는 이걸 미끼로 상담사에게서 영업이익을 최대로 뽑아낼 구조를 만들었다. 이 직업의 ‘불안’과 ‘불안정’도 미리 설계했을까. 상담사가 자기 처우를 생각할 틈이 전혀 없다.

“원청은 카드 발급이며 교체, 부가서비스 업무를 조각조각 잘라서 네댓 군데 도급사에 나눠줘. 돈을 놓고 실시간으로 경쟁시켜. 고객불만 민원에 감점 몇점, 프로모션 판매 미달에 감점 몇점, 관리·감독하는 목록이 얼마나 많겠어. 일정 점수 아래면 티오(TO)가 생겨도 충원하지 못해. 그럼 도급사는 고용창출장려금을 못 받아. 심하면 원청은 일감을 끊어 폐업시켜. 매니저, 팀장, 교육강사, 다 불안정한 직업이지. 그 스트레스를 맨 아래 상담사가 받지.”

이 구조는, 원청이 거느린 여러 도급사의 실적 상황을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띄워 상담사를 압박한다. 성과 낮은 이는 팀별·도급사별 실적을 떨어뜨린 죄인이 된다. 관리자는 조회마다 타사 대비 자사 실적이 낮다며 ‘실직’ 공포를 자아내고, 곧 퇴근하는데 실적이 모자란다며 20분 연장을 때린다. 30분부터 연장수당을 줘, 연이틀 공짜 노동에 사흘째에 30분 연장하는 식이었다는데, 아무도 안 하겠다 말하지 못했다.

“같은 사무실 사람도 경쟁자고, 다른 회사 모르는 사람도 경쟁자야. 20년간 그랬어. 내가 알지도 못하는 다른 회사의 실적과 큐에이(QA)라고 통화품질 점수, 이런 걸 실시간으로 봐. 우리가 뒤처지면 ‘지금 뭣들 해요!’ 관리자가 막 소리 질러. ‘워킹’이라 해서 관리자가 돌아다녀. 카드 발급을 누구는 20초에 끝냈는데 너는 왜 30초냐고 따져.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거지. 상담원들 스스로 그래. 콜공장 공순이라고, 우리는 콜공장 다닌다고.”

하루 500콜. 통화가 아니라 영업 성과를 내야 하는 이 일은, 고객의 무지에 이쪽의 정보 선점을 더해 고객이 연회비가 비싼 카드로 바꾸고 수수료 높은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유도한다. “기업은 소비자한테도 근로자한테도 10원도 손해 보지 않더라”는데, 은수씨는 말로 현혹하는 이 일이 양심과 마음에 걸려 갈등하면서도, 15분 만에 밥을 먹고 45분 남은 점심시간에 콜을 돌렸다. “저 언니 미쳤어, 돈에 환장했어”라는 소리를 듣고 따돌림당하면서. 상담사의 월급은 늘 제자리니까. 최저임금이 오르면 그만큼 인센티브를 깎으니까. 관리자는 통화녹음을 뒤져 얼마든지 감점을 만드니까.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정도”로 종일 말해야 몇만원 더 가져가니까. 그래야 세 식구 사니까. 회사는 달마다 등수를 매겨 사무실 문 밖 게시판에 공고했다. 비교 평가와 압박을 못 견뎌 콜센터에는 매달 20~30명씩 들어오고 나갔다.

“구조적으로 버틸 수가 없어. 젊은 상담사들이 일요일 저녁부터 가슴이 덜덜 떨리고 회사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힌대. 콜 하는데 할 말이 생각 안 나고 반론해야 하는데 머리가 하얘진다고. 나이 먹은 사람은 관리자가 아예 그래. ‘언니! 그 나이에 어디 갈 데 있어요? 받아주는 데도 없는데, 일 이렇게 할 거예요?’ 밖에 가 울고 와서 다시 일해. 정년퇴직도 마지막 회사에서 생겼어. 와, 이 바닥에 정년퇴직? 언니들 정년퇴직하는 거 보면서 나도 참고 버텼지.”

30년 노동에 근로빈곤계층으로

은수씨의 노동은 사실 마흔 이전부터다. 결혼 전 직장생활은 빼고, 은수씨는 서른 초반에 이혼해 3살, 5살 두 아이와 세상에 나서면서 온갖 일을 했다. 도금공장에서 지독한 냄새를 맡았고, 천둥 치며 비 오는 밤에 오늘은 가지 말라는 아이들을 두고 빵 공장에 들어가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전전긍긍하며 식당, 가정집, 백화점, 호텔, 공장을 돌며 일을 찾았다.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루 10시간, 12시간 육체노동을 견디지 못할 즈음, 텔레마케터가 됐다. 사무직처럼 앉아서 말만 하면 된대서 열심히 했는데 점점 귀가 멀고, 손목이 아팠다. 회사 요구대로 은수씨는 정말 말 잘하는 상담사가 됐는데, 싱싱한 제철 과일과 채소 대신 늘 흠나고 풀 죽은 것으로 시장바구니를 채워야 했다. 200만원만 벌면 저금하면서 아이들과 살겠다 싶었는데 그 돈은 참 요원했다.

콜센터 정년퇴직 뒤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던 은수씨는 다행히 한 공단 자회사에 환경미화원 정규직으로 들어갔다. 자신 있었다. 30년 일한 노동자에게 세상은 나아졌을까?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내가 근로빈곤계층이라는 걸 알아. 내가 정한 건 아니지만 사회에서 규정한 테두리에 내가 들어간다는 거, 내 노동력의 환산이 그 정도에서 멈춘다는 것도 이해해. 그 이상 바랄 생각도 없었어. 그래서 평생 내가 받는 거에서 벗어나 소비한 적이 없어. 극도로 절제하고 최소한의 생존에만 집중하면서 살았지. 근데 내가 공단 정규직 직원에게 ‘아줌마하고 나는 소속이 달라요! 나는 공단 소속이잖아요! 위계질서 몰라요?’라는 말을 들었어. 그 사람 논리라면 나한테 위계질서를 따지면 안 되지. 소속도 업무도 다르니까. 청소직이 공단 자회사 정규직이라는 건 허울이고, 실제는 하청 비정규직인 거야. 나는 가슴 아픈 게 ‘너하고 난 달라, 나는 정규직이야’라는 의식으로 상대를 폄하하는 게, 사회적인 합의가 없다면 이럴 수가 없다는 거지. 일반인 의식이 이렇게 무섭게 자리잡을 수가 없다는 거지. 사람이 사람에게 베푸는 최소한의 어떤 예의, 그런 게 이제 깡그리 무너지고 너무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거지.”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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