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파티 끝났다"의 이면..기재부의 '이상한 셈법'

박종오 2022. 8. 1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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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부채액만 콕 짚어 "청사 팔아라"
공공기관 대표 건전성 지표 '부채비율' 개선세
정작 재무건전성 개혁 핵심인 전기요금엔 함구
부채는 '절대액', 세금은 '비율' 강조..통계 입맛따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과하게 넓은 사무공간을 축소하고 호화로운 청사도 과감히 매각해 비용을 절감할 필요가 있다”며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국내 상장사인 ‘ㄱ’기업은 지난해 말 부채가 약 122조원으로 2016년(69조원)에 견줘 50조원 넘게 늘었다. 빚이 5년 만에 76% 급증한 셈이다. ㄱ사는 지금 당장 사옥 매각 등 긴급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이 회사 부채가 늘어난 건 사업 성장에 따라 자금 조달액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ㄱ사는 ‘삼성전자’다.

이처럼 시장에선 기업의 유동성 상태와 재무 건전성을 따질 때 ‘부채 절대액’이 아닌 ‘부채 비율’을 살피는 게 보편적이다. 부채를 주주들이 보유한 자본(부채를 제외한 순자산)으로 나눠, 부채가 자본의 2∼3배가 넘으면 재무 구조가 안정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 금융 당국이 부실 금융회사를 판단하는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BIS 비율)’도 이와 비슷하다.

삼성전자는 부채 절대액이 빠르게 늘었지만, 부채 비율은 지난 2016년 말 35.9%에서 지난해 말 39.9%로 거의 변화가 없다. 본업에서 큰 이익을 남기며 부채 비율의 분모인 자본도 빠르게 불어 나서다. 투자자들이 빚 12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를 ‘재무가 탄탄한 기업’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부채비율 좋아졌는데…코드맞춘 통계만 인용

이런 상식이 정부 쪽에선 통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21일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 부채가 지난 5년간 급증해 작년 말 기준 583조원에 이른다”면서 공공기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며 거들었다. ‘부채 절대액’ 증가를 명분으로 삼아 공공부문 조직과 인력 칼질을 예고한 셈이다.

기재부가 윤 대통령에게 제공한 통계를 보면 국내 전체 공공기관 350곳의 부채는 2016년 말 499조원에서 지난해 말 583조원으로 17%(84조원) 늘어났다.

그러나 여기엔 기재부가 ‘숨긴 숫자’가 있다. 전체 공공기관 부채 비율은 지난 2017년 157.2%에서 하락세를 보이며 지난해 말 151%로 내려왔다. 이익과 자기자본이 늘며 재무 건전성은 오히려 나아진 것이다.

특히 기재부의 ‘태세 전환’이 눈에 띈다. 기재부 쪽은 불과 넉 달 전인 지난 2월 펴낸 보도자료에선 “주요 10개 공기업의 대표적인 재무 건전성 지표인 부채 비율이 2021년 상반기 197%로 2017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2017년 이후 매년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재무 건전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부채 비율은 쏙 빼고 부채 절대액만 들어 새 정부 코드를 맞추는 모양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현실을 말하지 않고 자꾸 입맛에 맞는 통계만 가지고 오는 이유가 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재무건전성 핵심 ‘한전 전기요금’엔 입닫아

지난 5년간 공공기관의 부채 절대액 증가를 이끈 건 자산 2조원 이상인 시장형 공기업, 그중에서도 한국전력공사다. 한전 부채는 2016년 말 105조원에서 지난해 말 146조원으로 5년 새 41조원 늘었다. 이 기간 전체 공공기관 부채 증가액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그간 코로나19 지원 등을 이유로 전력 판매가격인 전기 요금을 동결하며 대규모 적자를 안은 결과다.

한전 사정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 여파로 발전용 연료비와 발전사로부터 사 오는 전력 구매비가 치솟으며 올해 2분기(4∼6월)에만 영업적자 6조5천억원을 기록했다. 증권가는 올해 한전 적자가 20조∼30조원을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류제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지난 12일 펴낸 보고서에서 “(출자 지분과 부동산 매각, 해외 사업 구조조정, 긴축 경영 등) 한전의 6조원 규모 자구안 시행에도 현재 수익 구조에서는 재무 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며 “올해 하반기 전기 요금 인상 없이는 큰 반전을 찾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유재선 하나증권 연구원도 “한전의 자기자본 감소 추이와 회사채(한전채) 발행 한도 등을 감안하면 빠른 시일 안에 특별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전 적자가 자산 매각 등 허리띠 졸라매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전남 나주시 빛가람혁신도시 한국전력 본사. 연합뉴스

시장에선 공공기관 재무 건전성 개혁의 핵심도 결국 정부의 전기 요금 인상 결정에 달렸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추경호 부총리 등 기재부 쪽은 이런 사정엔 입을 다물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한전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가진 부채가 전체 공공기관 부채의 절반가량”이라며 “한전을 어떻게 하느냐가 전체 공공기관 건전성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맞다”고 했다.

■감세 논란 일자 이번엔 감세 ‘비율’ 강조

기재부의 통계 수치 이용이 주먹구구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재부 쪽은 지난달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 ‘대기업·고소득자 감세’라는 비판이 일자 “(기존에 내던 세금 대비) 감세액 비율은 중소기업·저소득층이 더 높다”며 반박하고 있다. 공공기관 건전성을 말할 땐 ‘절대액’을 들고나오더니 세금 논의에선 절대액 대신 ‘비율’을 강조하는 셈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2일 강원 강릉시 세인트존스 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제학회 정책 심포지엄에서 새 정부 경제 정책 방향을 소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추경호 부총리는 앞서 지난 5월 취임하며 기재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경제 정책을 책임지는 공무원으로서 좋은 면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결기, 아픈 부분까지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를 바란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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