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백 2.5초, 극한을 달리다 [ESC]

한겨레 2022. 8. 13. 13: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ESC : 그걸 왜 해?]그걸 왜 해?: 스포츠 바이크
남현우 제공

빠라바라바라밤.

오토바이라고 말하는 순간 인상을 찡그릴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다. ‘철없을 때 하는 짓이야’, ‘위험해’, ‘내 친구가 예전에’로 이어지는 한 다리 건넌 경험담의 콤보. 그런데, 그렇게 위험한 걸 모두가 아는데, 어떻게 오토바이는 200년이 넘는 엔진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베엠베(BMW)라는 굴지의 자동차 기업은 사실 자동차보다 오토바이를 만들면서 지금에 이르렀고, 할리데이비슨은 그 역사가 120년에 이른다. 왜 사람들은 이 물건에 열광하는 걸까? 두 바퀴와 엔진. 이 단순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매력은 도대체 어떤 걸까?

‘그 나이에 무슨’이냐고?

이 이야기는 사회에 대한 불만 가득한 도로 위 폭주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낭만과 멋을 즐기며 유유히 도로를 누비는 할리데이비슨을 탄 투어러들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물건. 제로백 2.5초의 세계에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바이커들에 대한 이야기다.

바이커 남현우씨는 광고회사에 다니는 임원이다. 그런데 임원 하면 떠오르는 삶의 고단함, 산전수전 다 겪은 능수능란함, 처세, 이런 단어들과는 한참 거리가 먼 사람이다. 번뜩이다 못해 사나워 보이는 눈빛, 20대도 소화 못할 의상, 그리고 과연 이걸 사람이 제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그의 스포츠 바이크 때문이다. “40대 초반을 지나면서, 인생에서 힘든 시기가 왔어요. 무기력해졌습니다. 일은 힘들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마음의 병 같은 게 있었던 것도 같아요. 그때 아내가 제 손을 잡고 오토바이 매장으로 갔습니다. 아내는 제가 뭘 하든 미친 듯이 살아가는 모습이 좋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보기가 안타깝다고. 지금처럼 살지 말고, 다시 무언가에 미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고요. 감동했습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걸까? 거짓말 같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렇게, 40대 초반 타기 시작한 그의 오토바이는 경주용 스포츠 바이크다. “처음엔 컨트롤이 안 되더라고요. 이게 슈퍼 가면서 탈 물건은 아니니까. 예전부터 오랫동안 오토바이를 타왔더라도, 이런 덩치의 물건은 공부를 해야 해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스포츠 바이크는 사람의 반응속도나 한계보다 기계의 한계치가 훨씬 높은 물건들이다. 따라서 오토바이를 주인이 길들이는 게 아니라, 오토바이의 능력에 부끄럽지 않게 주인이 능력을 키워가면서 즐겨야 한단다. “바이크를 사긴 샀는데 무섭더라고요. 그때 오토바이를 판매한 딜러가 트랙을 경험해보라고 말했습니다.”

트랙, 혹은 서킷이라고 부르는 자동차 경기장은 속도 제한이 없고, 주변 차량도 없는 오로지 빠르게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도로. 전남 영암의 에프원(F1) 서킷이나 강원도 인제, 경기 용인에 있는 트랙이 유명하고, 그 외에도 전국에 꽤 많은 트랙들이 존재한다. 남씨는 트랙에서 “보통 사람들은 살면서 느낄 수 없는 감각”을 느낀다. “트랙에서의 라이딩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에 가까워요. 롤러코스터가 떨어질 때, 심장이 짜릿하고 오금이 저리는 느낌. 인간의 본능이 위험하다고 경고를 내리는 느낌입니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온몸의 감각을 도로에 집중하게 만들죠. 터널 뷰라고 부르는 용어가 있는데, 마치 터널 안에 들어선 것처럼 주변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길과 목표점만 보이는 초집중의 상태로 운전을 하죠.”

하지만 온몸의 감각을 집중해도 돌아오는 랩타임 기록은 초라했다고 한다. “나는 필사의 노력을 다했는데 랩타임 숫자는 내가 얼마나 몸을 사리며 이 도로 위를 달렸는지 아주 차갑게 보여주죠.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싶은 초라함과 기록을 깨고 말겠다는 도전 의식이 솟구쳐요. 그게 스포츠 바이크의 핵심이에요.”

하지만 도전 의식이 커질수록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자신의 랩타임 한계를 한 단계 높여가는 시기인 두번째 트랙 경험부터는 특히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 “내가 생각한 속도의 한계를 내 몸이 버티지 못하거나 계산 자체가 욕심인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서 안전장구가 필요한 거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을 무모하게 보는데, 무모한 사람들은 이 스포츠를 즐길 수 없어요. 한계를 알고, 그 선을 아주 조금 넘어보는 거죠. 그 짜릿함을 즐기는 거지, 무모해서 타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당신의 무료함의 랩타임은 줄어들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스포츠 바이크를 4년 정도 탔고, 타면서 새로운 목표들을 하나씩 세우고 이뤄나가고 있습니다. 9월엔 스위스를 가려고 해요. 영화나 광고에서 스포츠카나 스포츠 바이크들이 달리는 아주 멋진 도로가 알프스산맥에 있습니다. 그 도로를 달리러 가요. 어디 유명한 여행지나 무언가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그 도로를 달리기 위해서요.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저는 탑니다. 제가 일상의 무료함에 항복하기 전까지는.”

남현우 제공

객기는 금물, 불편하게 타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안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토바이가 인류사에서 끊임없이 손가락질받는 이유는 위험하기 때문 아니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영화 <비트>를 보면 티셔츠 한장 입은 정우성씨가 새하얀 오토바이를 타면서 손을 놓는 장면이 나와요. 저희 세대가 20대였을 때, 방황하는 젊음의 상징적인 이미지죠. 그런데 실제 이런 행동을 하면 혼자 다치는 걸로 끝나지 않아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위험해집니다. 제가 오토바이를 타면서 입는 옷은 굉장히 불편해요. 엄청 조이고, 딱딱한 보호장구 때문에 제대로 몸을 펼 수도 없어요. 한여름엔 거의 사우나를 하는 느낌입니다. 여름밤, 자유롭게 바람을 맞으면서 스피드를 즐기겠다, 이런 마음가짐은 이 취미랑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토바이는 원래 아주 불편하게 옷을 입고 타는 거라고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 딱 본인뿐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쳐다보기는 하죠. 그런데 쳐다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제발 객기 좀 부리지 마.’ 이걸 명심해야 합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불꽃이 하나씩은 있다. 누군가는 이루면서 살고, 또 누군가는 평생 이루지 못하고 살 뿐. 영화 <비트>를 보며, 자유를 꿈꿨던 반항아들은 이제 40대를 넘어, 50대를 향하고 있다. 그래서 한번쯤은 물어볼 때도 된 것 같다. “그때 그 시절, 세상 모든 것에 반항했던 당신 안의 반항아는 지금도 여전히 잘 살고 있나요?”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