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의 미리미리] 대통령실 카드뉴스를 분석하는 법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2022. 8. 1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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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이란 미디어 메시지를 분해, 분석, 적용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미디어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 미디어를 만든 사람이 있다. 미디어 생산자들은 미디어에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는다. 미디어 메시지는 밖으로 명백히 드러나 있을 경우도 있지만 숨어있는 경우도 있다. 미디어 생산자들은 미디어 소비자로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주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들이 강조하고 싶은 면을 강조한다. 절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해 주지 않는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보여주지 않는 것까지 찾아볼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관점 그리고 시간과 에너지가 들더라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확인하는 실천 의지가 필요하다.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다.

기업들 같은 경우에는 우리에게 그 기업의 물건을 사게 하기 위해서 광고를 만들거나 그 기업의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서 광고를 만든다. 정치인들 같은 경우에는 자신이 일을 잘하고 있다고 알리며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정당을 지지해 달라(투표장에 나와서 찍어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메시지를 만든다. 지난 9일 대통령실에서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우산을 쓰고 쪼그려 앉아서 사고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9일 폭우로 일가족이 참변을 당한 신림동 참사현장을 방문한 모습을 대통령실이 카드뉴스로 제작해 홈페이지와 SNS에 게재했다가 비판을 받고 지웠다. 사진=대통령실

대통령실에서는 이 카드뉴스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침수된 지역을 직접 방문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며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일을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을 보인다. 사람들이 감동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정반대의 효과가 일어났다. 시민들은 분노했다.

언론들을 통해서 대통령실에서 공개한 사진의 전후 상황이 알려졌다. 대통령은 침수피해 현장에서 피해자에게 '사망하신 분은 장애인이었다'는 설명을 듣곤 '근데 여기 계신 분들은 왜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라고 말했다. 폭우 상황에서 반지하에 물이 어떻게 차오를 수 있는지, 대피를 어렵게 하는 요인들은 무엇이 있는지 등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폭우라는 재난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지만 경제력, 주거환경, 지역, 장애 등에 따라 겪게 되는 상황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이해가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게다가 '서초동에 내가 사는 아파트가 전체적으로는 좀 언덕에 있는 아파트인데도, 거기가 1층에 물이 들어와 가지고 침수될 정도'였다며 '제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벌써 다른 아파트들이,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은 벌써 침수가 시작되더라고요'라고 말해 퇴근을 하며 이미 서울시 곳곳에 침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대로 퇴근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리기도 했다. 인명피해가 생긴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이 죽은 곳을 배경으로 “홍보물”을 만든 것은 공감능력의 결여를 고스란히 보여준 셈이 됐다.

폭우로 인한 홍수, 홍수로 인한 침수 피해는 올해 처음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정치인들은 꼭 사고가 난 이후에야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할까?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까? 대통령실이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신속한 복구, 피해 지원, 주거 취약지역 집중 점검, 취약계층에 대한 확실한 주거 안전 지원대책'은 무엇인가? 카드뉴스는 많은 비판을 받고 삭제됐지만 우리는 계속 지켜보며 약속이 지켜지도록 요구해야 한다.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과 생명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역할이다.

그 자리에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있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에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문제는 '반지하를 어떻게 없앨 것인가'이다. 서울시는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당장 내쫓을 수는 없으니 10~20년 동안 천천히 진행하겠다고 한다. 내년과 내후년 앞으로는 점점 더 많은 폭우, 폭염 등의 기후재난을 예상해야 한다고 하는데, 10~20년이 참 멀게 느껴진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지상으로 이주하면 지원금을 주는 등의 방식을 사용한다고 한다. 과연 이 문제는 세입자와 건물주의 의지에 맡기는 방법 밖에는 없을까? 자본의 논리에서만 주거를 이야기하는 사회에서 주거권은 막연하다. 가난한 자가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밀려남으로써 반지하 거주를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누구나 마땅히 안전한 주거환경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정책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자본의 논리를 넘어선 공존의 원리를 상상해야 한다.

작년 7월 더불어민주당의 대선주자 중 한 명이었던 이낙연 전 대표도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없애겠다는 공약을 발표했었다. 주거면적에 대한 최소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뜻이었다. 주거면적이나 주거환경에 대한 기준만 높여 놓으면 그에 만족하지 못하는 공간들은 자동적으로 사라지게 될까?

▲ 2021년 7월27일 오후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거 정책 관련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반지하를 없애겠다'거나 '지.옥.고를 없애겠다'는 사람은 있는데, 왜 '빈곤을 없애겠다'는 사람을 없을까? '왜 반지하에 살 수밖에 없는가?' 자본주의와 서울중심주의 같은 사회구조에 대한 고민이 빠졌기 때문에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듯한 모양세'의 정책이 나오는 것이다.

집은 인권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민생을 위한다며 착취를 지속하는 경제인을 사면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기대는 것이 아닌 자본주의의 해악을 통제하고 공존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국가의 역할을 재정립해야한다. 주거권은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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