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매일 달리기, 내 뇌만 속이면 누구든 할 수 있어요

한겨레 입력 2022. 8. 13. 12:05 수정 2022. 8. 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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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상황 지겨워 시작한 일과
샤워하러 가는 길에 동네 뛰러 갑니다
출장을 가서도 매일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 출장 당시 달리던 모습.

“인간의 뇌는 꽤 쉽게 속일 수 있다.”

우연히 집어 든 행동경제학 책을 통해 ‘유혹 묶음’(Temptation Bundling)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꾸준한 습관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에게 조삼모사를 행할 수 있다. 하고 싶지만 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면? 즐거움을 주는 일과 하기 어려운 일을 한데 묶으면 된다. 매일 헬스장에 가는 게 어려운가? 그렇다면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마다 요즘 푹 빠져 있는 티브이(TV)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된다. 생각보다 단순한 우리의 뇌는 어느덧 운동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티브이 프로그램이 안겨주는 즐거움을 기억한다. 고통이 즐거움으로 변하는 마법이 일어난다.

끝없는 팬데믹, 나를 속여야 했다

이 개념을 접한 건 바야흐로 2020년 3월. 한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아직 1만명을 넘기지 않았고(2022년 8월 현재 한국의 누적 확진자는 약 2054만명이다), 코로나19를 ‘팬데믹’이라고 부르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시기였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자가격리를 마치고 난 뒤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재택근무가 시작되었고, 업무와 일상의 시간과 공간이 점점 뒤섞이면서 종일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몸은 침대에 누워 있지만 온라인상의 나는 이미 출근해 일하고 있다거나, 책상에 앉아 바쁘게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부스스한 얼굴에 잠옷 차림인 날이 늘어났다. 나는 마치 수용소에 갇힌 사람처럼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긴 하루 속에 살아가는 것 같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때 내겐 정말로 뭔가가 필요했다. 코로나19 감염을 피하려 집 안에만 머무르다가 갑갑증에 걸려 정신의학과부터 찾게 될 게 분명했다.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는 습관을 붙인 가벼운 명상만으로는 부족했다. 일렁이는 마음을 흘려보낸 뒤 눈을 뜨면 여전히 집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점점 어려워졌다. 출퇴근 시간이 1분으로 줄어들면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인터넷 쇼핑으로 산 물건을 뜯은 포장지와 배달 음식에 딸려 온 일회용기만 쌓여가는 자발적 감금이 될 줄이야. 어떻게든 집 밖으로 스스로를 내보낼 구실을 만들어야 했다.

매일 달리기 초창기 어느 날. 신발이 작아 보인다.

“그래서, 매일 달리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떻게든 매일 달린 지 800일을 훌쩍 넘긴 지금도 종종 받는 질문이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은 대체로 하나로 수렴한다.

“인간의 뇌를 속이는 게… 생각보다 쉽더라고요.”

비밀은 행동경제학에 있다. 2020년 3월 어느 날 달리기에 나섰던 것도, 출장 중 숙소에서 새벽에 일어나 이 글을 쓰다 30여분간 달리기를 하고 온 것도 모두 같은 원리다. 달리기를 하려고 굳이 애쓰거나 의지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그저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싶은데 침대에서 욕실까지 가는 길에 달리기가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언뜻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 같지만,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박수가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흘리게 되는 땀 덕분에 이후의 샤워는 더 개운해질 수밖에 없으니, 분명 내 몸은 달리기를 하러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긴 하지만 궁극적 목적지는 샤워기가 있는 욕실이다. 일종의 변형된 ‘유혹 묶음’을 통해 스스로를 속이는 셈이다.

이를테면 첫 달리기를 한 날이 그랬다. 새벽까지 일을 한 뒤 느지막이 일어나 제대로 씻지도 않고 컴퓨터부터 켜려던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머리에 새집을 지은 채 업무 이메일부터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게 과연 나에게 좋은 일일까? 맺음도 끊음도 없는 ‘영원한 하루’로 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 일 아닐까? 당장 말쑥하게 차려입고 출근할 일은 없지만, 스스로를 가꾸고 옷이라도 갈아입고 일하는 게 더 건강한 생활 아닐까?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면, 몸을 집 밖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도록 뭔가를 해보면 어떨까?

그리하여, 마침내 시작도 끝도 없이 흐리멍덩해진 ‘영원한 하루’를 벗어나보기로 했다. 그리고 ‘유혹 묶음’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스스로를 한번 속여보자고 마음먹었다. 샤워를 하기 위해 가로질러 이동해야 할 건? 거실이 아니라 집 앞에 있는 언덕이었다. 욕실에 가려면 옷을 벗어야 할까? 벗기는 해야 하지만, 샤워를 하려면 먼저 운동복부터 입어야 했다. 마침 신발장 한편에 몇년 전에 사놓고 몇번 신지도 않은 멋진 러닝화가 보였고, 서랍장 구석엔 언젠가 ‘올해는 나도 운동해야지’라며 호기롭게 산 뒤 역시나 몇번 입지 않은 운동복이 있었다.

운동 기록에 용이한 스마트 워치.

‘영원한 하루’를 벗어나는 길

물론, 쉽지는 않았다. 일단 신발에 발을 넣는 것부터 어려웠다. 몇년 사이 발이 커지기라도 한 건지, 신발에 발이 꽉 끼는 것 같았다. 필라테스 할 때 입으려 했던 타이츠 역시 마찬가지. 분명 살 때는 몸에 맞는 사이즈였는데, 한달 넘게 외출을 삼가는 사이 허리둘레와 몸통이 굵어진 게 분명했다. 날씨도 걱정이었다. 3월이긴 했지만 밖은 여전히 조금 쌀쌀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간 날씨가 추우면 두껍고 무거운 옷을 입을 생각만 했지 가볍게 입고 달리기를 할 생각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 탓이었다. 우선은 긴팔 운동복에 바람막이를 하나 겹쳐 입고,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샤워하러 가는 길에 달리기가 포함되어 있다며 스스로에게 던져본 단순한 속임수가 이렇게 잘 통할 줄이야. 다음날 비슷한 시간에 또 한번 달리기를 하게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몇개월 뒤엔 여름철 폭우를 뚫고 달리고, 겨울엔 눈보라 속에 뛸 거라는 것도 예상치 못했다.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매일 달리기를 하게 될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글·사진 박재용 큐레이터 겸 통·번역가, 인스타그램 @one_day_one_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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