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트라우마'로 떠난다는 이웃.. 저는 갈 곳이 없어요"

박정훈 입력 2022. 8. 13. 11: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팟인터뷰] 서울 신대방역 주택가 침수 피해로 공개 도움 요청한 차종관 비서관

[박정훈 기자]

 서울 신대방역 인근 주택가 반지하 집에 살다가 이번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차종관씨가 SNS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 차종관
 
"수해로 집을 잃었습니다. 도움을 청합니다."

지난 8일, 서울 지역에 내린 폭우에 차종관(28)씨의 반지하 집이 물에 잠겼다. 그가 사는 신대방역 인근 주택가는 도림천 인근에서도 침수 피해가 가장 많았던 곳이다. 당시 휴가 차 제주도에 갔던 차씨는, "집이 침수됐다"는 집주인의 전화를 받고 다급히 서울로 올라왔다.

그가 집 안에서 마주한 풍경은 상상에도 없던 모습이었다. 말끔했던 방은 흙탕물로 가득 차 있었고, 차곡차곡 정리해놓은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복구는 막막했고 당장 갈 곳은 없었다. 올해 초 대학교를 졸업한 뒤, 지난 5월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갓 취업을 한 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일명 '옵션'으로 포함되어있던 가전제품을 제외하고도 피해액은 700만 원대에 이른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제 힘으로 살림살이를 복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아둔 재산이 없다. 후원을 부탁한다"는 글을 올렸다. 다행히 십시일반 마음이 모이고 있지만, 차씨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함께 수해 피해를 입은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바로 이 집을 떠나겠다고 했다. 하지만 차씨는 이 집을 떠나지 못 한다. 이사할 여력도 없을 뿐더러, 다른 지역에서는 '전세 5000만 원'이라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집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폭우 대책으로 제시한 '반지하 일몰제'에 대해서도, 그는 "반지하가 없어지면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빨리 정부의 지원 대책이 마련되기를, 공공임대주택이 많이 생겨서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5년 동안 고시원 생활, 겨우 마련한 전셋집이...
 
 침수 전 차종관씨가 살던 집의 모습.
ⓒ 차종관
 
 서울 신대방역 인근 주택가에 사는 차종관씨는 이번 폭우로 집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 차종관
 
- 신대방역 반지하 다가구주택으로 들어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특별한 연고가 없는 지역 같은데?

"2017년부터 독립을 해서, 5년 동안은 학교가 있는 용인시 죽전동에서 고시원을 옮겨다니며 살았다. 그러다가 샤워 공간과 화장실이 함께 있는, '집 다운 집'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원룸을 구하다가 지금 집을 선택하게 됐다. 신대방에 오게 된 것은 이 집이 있어서였다. 사실 연남동이나 연희동을 가고 싶었지만, 거기는 신대방보다 3~4배가 비쌌다. 

여기는 역에서 도보 1분 거리인데, 지난해 12월 입주 당시 신축 풀옵션이었다. 무엇보다 전세금이 5000만 원이었다. 단점이 반지하라는 것밖에 없었고, 그것도 크게 상관없다고 느껴질 만큼 햇볕도 비교적 잘 들어왔다. 보자마자 계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출을 받아 5000만 원을 구했다."

- 고시원과 비교하면 이곳의 주거 환경은 어땠나?

"훨씬 좋았다. 감사할 정도였다. 5~6평 정도인데 손님들도 부를 수 있고, 제가 원하는 안락한 활동을 이곳에서 다 할 수 있었다. 습기 차고 곰팡이 피는 것도 있지만 그거야 관리할 수 있는 부분 아닌가."

- 수해 피해를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 있나?

"전혀 예상 못했다. 신대방 옆에 개천(도림천)도 항상 수위가 낮았고 물이 말라있을 때가 많았다. 침수가 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 당시 제주도 휴가 중이었다고 들었다. 

"집주인이 전화해서 알게 됐다. 대피하라고 말하려고 갔는데 제가 없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저는 어느정도 심각한지도 몰랐는데, 집주인이 성인 머리 높이까지 차올랐다고 하더라. 다음날(9일) 아침에 바로 비행기로 올라왔다."

"반지하 살지 않았더라면" 후회도... 그래도 당장 떠날 순 없어
 
 서울 신대방역 인근 주택가에 사는 차종관씨는 이번 폭우로 집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 차종관
 
- 처음 침수된 집 보고 어떤 기분 들었나?

"'와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허탈해서 웃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서러웠다. '집은 안전한 곳'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그 집에 물이 차서 모든 살림살이가 날아가지 않았나. '반지하 살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결국 돈 문제 때문에 이런 걸(반지하 주거)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무덤덤해졌다. 그냥 돈을 벌어서 반지하를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더라."

- 주변 반지하 집도 대부분 침수됐나?

"일단 제가 사는 건물에는 1인 가구 세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저 말고 두 분은 집에 계셨다. 갑자기 창문에서 물이 쏟아지니까 대피하느라고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질 못했다고 그러더라. 두 분은 이번 사건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집을 뺄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주변 상황이 어떤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집 밖에 짐들이 나와 있다. 저는 그나마 1인이니까 괜찮은데, 4인가구 분들은 정말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통째로 날아가서 타격이 심각하다고 들었다. 군포에 있는 제 친구도 4인가구로 반지하에 살고 있는데 집에서 짐을 살린 게 없다고 하더라."

- 대략 피해액이 700만 원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방에 있던 물건 중에 그나마 쓸 수 있는 물건이 있나? 

"'옵션'에 포함된 가전 말고 개인 물품 피해액만 그 정도다. 옷은 하얀색이 아닌 경우는 일단 세탁소에 맡기긴 했다. 그런데 입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밀봉 되어있던 캔이나 유리그릇 정도가 그나마 쓸 수 있을 것 같다. 소장품, 전자기기, 가구, 책은 다 못 쓰게 됐다."

- 집 청소는 다 했나?

"집주인이 업체를 불러서 청소는 말끔히 된 상태다. 그런데 집을 수리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려서, 그 시간 동안 갈 곳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모텔, 혹은 친구나 애인 집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 지급 집에서는 계속 살 생각인가?

"계속 살 거다. 서울에서는 이 가격으로 다른 곳에서 집을 구할 수가 없다. 이사할 수 있는 여력도 없다. 수해 피해를 입었지만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의 집인 것은 변함이 없다." 

"반지하 없애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 아냐... '선택 옵션'만 줄이는 셈"
 
 서울 신대방역 인근 주택가에 사는 차종관씨는 이번 폭우로 집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 차종관
 
- 소셜미디어에는 왜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나? 

"먼저 저는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세 곳에서 대출을 받았다. 대출을 더 받을 수가 없다. 그리고 살림살이도 아무것도 없으니까 정말 주변의 지원을 받아서라도 살아남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한편으로는 언론에 저와 같이 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문제의식을 알리고, 환기하고 싶기도 했다."

- 서울시가 폭우 대책으로 '주거용 지하·반지하 퇴출(반지하 일몰제)' 방안을 들고 나왔다. 어떻게 생각하나?

"저의 경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집은 반지하밖에 없었다. 반지하가 없어지면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반지하를 없애면 수해 피해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집값 조정,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병행되지 않으면 기존에 서울 지역의 반지하집에 살던 사람들이 서울 밖으로 쫓겨나게 될 뿐이다. 무조건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말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해경 없애겠다'라고 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 현재 의원실에서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폭우 등 기후위기 현상에 따른 피해 방지나 주거 기본권 보장을 위해 정치권에 제안할 만한 정책이 있을까?

"일단 저는 사람이 살기 괜찮은 환경의 집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임대주택도 겨우 '당첨돼서' 가는 게 아니라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괜찮은 집을 구하는 일도 '로또'가 되어야 하는 일이 비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도 특별재난지역 지정이 안 되고 있다. 이번에 수해 피해를 본 많은 사람이 정부의 무능을 이야기하고 있을 정도로 재난에 대한 피해보상 대책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삶의 의지를 잃을 정도로 피해를 보신 분들에게 긴급 경제 지원과 심리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한 순간에 집을 잃은 고통을 다독일 수 있는 방안을 정부가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