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향과 변태 사이 그 어딘가…배우 박해일 정주행[박세희 기자의 주말엔 정주행]

박세희 기자 2022. 8. 1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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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 뭘 해야할지 모르시겠다고요? 문화일보 박세희 기자의 ‘사심’ 가득 담은 이번 주 정주행 배우는 박해일입니다.

사실 말이 필요 없는 배우죠. 저를 포함해 많은 여성들이 박해일 배우를 이상형으로 꼽습니다. 전형적인 미남형은 아니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순수한 소년같은 외모에 차분해 보이는 성격이 그의 매력입니다. 심지어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만약 여자였다면 박해일을 졸졸 쫓아다녔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죠.

최근작 ‘헤어질 결심’, ‘한산:용의 출현’으로 다시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은 그. 문득 그의 리즈시절이 다시 보고 싶어진 저는 우선 국화꽃 향기부터 틀었습니다.

◆국화꽃향기

많이 아시겠지만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인하’는 대학 신입생 때 만나 짝사랑한 ‘희재’(장진영 분)를 이후 라디오 PD가 돼서도 줄곧 사랑하고, 약혼자와 부모를 사고로 잃은 후 세상과 벽을 쌓은 후 살아가는 희재에게 라디오 프로그램 사연을 통해 다가갑니다. 마침내 둘은 결혼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희재는 임신과 함께 암에 걸리고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죠.

울고 싶을 때 봐야 하는 영화이자 요즘은 정말 보기 힘든 정통 멜로 영화입니다. 무려 19년 전 영화다 보니 많은 부분이 촌스럽지만 옛날의 마로니에 공원이나 대학가의 풍경, 풋풋한 섬마을 봉사 등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켠이 따뜻해져 옵니다.

박해일 배우는 이 작품에서 그야말로 모든 ‘누나’들이 꿈꾸는 ‘연하남’을 연기합니다. 하얗고 말간 얼굴로 “왜 날 사랑하니”라는 희재의 물음에 “당신이니까요”라고 답하는 그는 주변에 있을 것 같지만 절대 없는, 그런 남자입니다.

‘국화꽃향기’ 속 박해일 배우는 참 앳된 모습입니다. 어린 박해일 배우와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된 고(故) 장진영 배우의 젊은 시절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아려옵니다. 이젠 되돌아오지 않을 풋풋했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도 함께요.

◆연애의 목적

박해일 배우는 ‘연애의 목적’으로 이전과 180도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교생 실습을 나온 최홍(강혜정 분)과의 잠자리에 집착하는 ‘양아치 변태남’이랄까요. 개봉 당시 박해일 배우의 능글맞은 연기에 충격받았던 기억이 생생한데요.

고등학교 영어교사 ‘이유림’은 호시탐탐 ‘최홍’에게 수작을 겁니다. “같이 자고 싶다”고 졸라대는 유림에게 홍도 마음을 열게 되고 ‘연애’에 진입하지만 그들의 연애설은 학교에서 도마에 오르며 둘의 관계도 파탄을 맞습니다. 그리고 1년 후, 그들은 다시 만나는데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홍은 1년 전의 유림과 흡사하게 유림을 꼬십니다.

영화 초반의 자극적인 대사들은 그 때도, 지금도 다소 충격적입니다. “젖었어요?” “지금 서서 못 일어나요” “난 다른 조개를 먹고 싶은데” 등.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 몰입해 다시 보다 보니 이 영화, 그저 야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유림과 홍이 점차 서로를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지고, 홍의 깊은 상처를 결국은 유림이 치유해주는 것에 초점을 두고 보니 영화의 다른 면이 보이더군요.

이 영화 제목처럼, 연애의 ‘목적’이 뭘까요? 유림은 집요하게 닫힌 홍의 마음을 뚫고 들어갔고, 자신은 붕괴됐지만 홍의 불면증은 치유됐습니다. ‘사랑’보다는 ‘사람’에 집중해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보기를 추천합니다. 박해일 배우의 능글맞은 연기,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살인의 추억

두 말이 필요없는 명작이죠. 박해일 배우는 최근 인터뷰에서도 “아직도 길을 다니다 보면 ‘살인의 추억, 범인이죠?’라고 물어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럴 정도로 박해일 배우는 이 작품에서 우리 뇌리에 깊이 박힌 연기를 했습니다.

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 박현규 역이었는데요. 미소년같은 얼굴에 형사들의 윽박에도 굽힘 없는 꼿꼿한 자세와 눈빛, 선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악함도 함께 보이는 묘한 캐릭터였습니다. 손가락으로 얼굴을 긁으며 순진해 보이기도, 어딘가 꿍꿍이를 감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묘한 얼굴로 등장한 그. 이른바 ‘선한 얼굴의 악인’ 캐릭터가 박해일 배우로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 속 배우 박해일의 모습을 ‘비누향이 나는 변태’라고 표현했는데요, 박해일 배우만의 유일무이한 모순적인 매력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최근 ‘헤어질 결심’과 ‘한산:용의 출현’으로 연이어 관객들을 찾으면서 저 역시 두 차례 박해일 배우와 인터뷰를 가졌는데요, “인간 박해일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예전에 어느 선배가 이런 얘길 했습니다. ‘변태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어느 작품에선 이런 역할을 하고 다음 작품에선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하고. 나이대가 어리거나 많은 역할을 하고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고 하다 변태가 되어 간다고. 뭐라고 단정짓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전 그 선배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참 ‘박해일다운’ 대답이라는 느낌입니다. 인간 박해일 안에는 순애보 ‘인하’, 능글능글한 ‘유림’, ‘헤어질 결심’의 꼿꼿한 ‘해준’ 등 다양한 면이 차곡차곡 쌓여 있겠지요? 아직 그가 40대인 게 다행입니다. 앞으로 그가 해낼 수많은 다양한 배역들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박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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